[Opinion] 소설 '검은 집'에서 사이코패스를 다루는 방법 [도서]

글 입력 2020.06.2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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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르문학을 자주 읽지 않는다. 그건 딱히 내가 순문학에 애착이 있다거나 장르문학을 배척해서가 아닌, 그저 잘 몰라서 그런 것 같다. 물론 나는 『실마릴리온』을 몇 번이고 정독한 아마추어 톨키니스트이자, 셜록 홈즈 시리즈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셜로키언이기도 하지만 장르문학을 접해 온 ‘깊이’가 아니라 ‘넓이’로만 따진다면 그 폭이 굉장히 좁다는 뜻이다.

 

그런 나도 여름이 다가오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장르문학에 손이 가곤 한다. 잘 모르는 분야이기 때문에 뭐가 재밌고 내 취향에 맞는지 사실은 아직도 파악하지 못했기에, 당장 유명한 작품 위주로 고르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던 책이 바로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이었다. 나는 귀신 나오는 이야기는 후환이 두려워 별로 선호하지 않기에, 사이코패스를 다뤘다는 이 책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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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굉장히 잘 쓰여진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장르 문학, 호러, 일본 소설, 어느 것에도 익숙하지 않는 내게도 거부감 없이 읽히는 담백한 문체에다 상황과 심리 묘사의 적절한 분배가 돋보인다. 마치 영화를 보듯이 막힘없는 독서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만족할 만하다.

 

이야기는 보험 회사에서 보전 업무(보험 판매를 위한 영업이 아닌, 보험금 지급 문제를 다루는 업무)에 몸담고 있는 직원 신지를 주인공으로 움직인다. 어느 날 수상한 고객의 자택을 방문하게 된 신지는 바로 그 ‘검은 집’에서 목매달아 죽은 아이의 시체와 마주한다.

 

그는 고객(고모다)이 아이의 죽음을 이용해 보험금을 타내려는 속셈임을 간파하고 개인적인 수사를 시작하지만 실체에 다가갈수록 그에게는 직간접적인 살해 협박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는 ‘검은 집’에 숨겨진 끔찍한 사건들에 대해 알아가고, 생명의 위협에 시달리게 된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언급은 소설 중반부쯤, 신지의 연인인 심리학도 메구미의 은사 노리코 교수를 찾아갔을 때 등장한다. 2020년 현재, 사이코패스(Psychopath)라는 용어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미 많은 매체에서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의 잔악무도한 사건들이 자주 보도된 바 있고, 사이코패스를 소재로 한 작품 역시 셀 수도 없이 많이 쏟아져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은 집』이 출판될 무렵인 1997년에는 상황이 달랐다. 아직 대중들에게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은 익숙한 것이 아니었고, 이 사실은 작품 속 인물들이 이러한 인격 장애 개념을 받아들이는 일에 혼란을 겪는 묘사를 통해 잘 드러난다. 주인공 신지가 심리학 교수 노리코가 사이코패스 개념을 설명하는 장면에서 그는 이 개념을 낯설어한다. 이미 우리에게는 익숙해진 소재가 이 이야기에서는 생소한 것이라는 점 탓인지, 흔한 사이코패스 스토리와는 달리 이 이야기에서는 이러한 개념 자체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인간성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작중에서 주인공 신지의 연인인 메구미는 심리학도이지만 사이코패스 개념을 부정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심지어는 이야기의 말미에서 범인의 잔학 행위를 목격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이런 입장을 거두지 않는다.

 

이 부분은 소설 내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와 어느 정도 맞닿아 있기도 하다. 즉 메구미는 사이코패스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러한 선천적인 이유만으로 개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신지 역시 메구미의 말에, 사이코패스인 범인과 격투 끝에 살해했던 당시 사람을 죽였다는 자책감보다는 마치 바퀴벌레를 죽인 듯한 감정을 느꼈던 것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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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이코패스를 단순히 소설의 공포적 요소를 배가하기 위한 도구로만 이용한 것이 아닌, 보다 철학적인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책 『트라우마 사전』에서도 인물의 트라우마를 다루는 일에 대해서 조심스러운 태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듯이, 인물의 인격을 구성할 때에 그저 ‘사이코패스다’라는 표현으로 무성의하게 퉁치고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익숙한 데다 많이 소비된 개념이라는 이유로 성급하게 낙인을 찍거나, 반대로 범죄의 무게를 가볍게 만드는 방향으로 서사를 정당화시키는 일은 피해야 한다.

 

『검은 집』은 범죄자의 인격적 문제를 제법 무게감 있게 다루면서도 공포적인 재미를 놓지 않은, 균형 잡힌 작품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적당한 긴장감과 음습하고 서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공포소설을 찾는 사람이라면 입문작으로 추천할 만한 책이다.

 

 



[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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