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도서]

어딘가에서 긴 밤을 보내고 있을,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글 입력 2020.06.2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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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note


 

작가는 '무엇'을 하려 들지 않는다. 애써 가르치려 들지 않고 교훈을 주려 하지 않고 멋있어 보이려 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히, 따뜻하고 담백한 문체로 솔직하게 본인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때로는 메모 같은 한 문장으로, 때로는 시 같은 짧은 글로, 때로는 긴 일기로. 사람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랑과 미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개중 유독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엄마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아래 주고받는 무자비하고 무수한 상처들에 관한 이야기. 내게도 엄마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존재다. 그래서인지, 왠지 모를 공감과 차오르는 감정에, 엄마에 관한 부분은 읽으면서 내내 울었다.

 

어쩌면 책을 읽는 동안 절반은 울며 읽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작가의 인간적이고 평범한 이야기는 나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었으며 나를 회고하게 했고 성찰하게 했다. 또한, 내가 어떤 아픔과 근심과 상처를 가졌는지,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스스로 알지 못했을 때 나를 대신하여 형용하는 듯했고 이는 나를 감싸 안고 위로해주었다.

 

이렇듯 애정하는 책을 혼자 읽기 아쉬워 여기저기 추천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빌려주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책을 읽을 때 밑줄을 치고 귀퉁이를 접는 습관이 있는데 접고 또 접었다. 이만큼 접힌 책은 이 책이 유일무이할 정도로.

 

문득 수많은 귀퉁이를 보며 드는 생각은 어쩌면, 처음 읽었을 당시의 내게 절실했던 책이라 폐부를 찌르며 다가왔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처음 읽었더라면 또 다르게 느껴졌을지도.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과거의 나와 같이, 어딘가에서, 위로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들이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위로받길 바란다.

 

 

 

Underlined sentences


 

대화란, 내 말이 맞음을 일방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라, 어느 때는 일치의 쾌감을 얻기도 하고 어떨 때는 다름의 묘미를 깨닫기도 하는, 말로 가능한 최고의 성찬이다. 서로를 신뢰하기에 의견이 달라도 기분이 상하지 않고, 오히려 말의 부딪침 속에서 대화의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게 바로 통하는 사이가 아닐까?  p.33

 

항시 나를 가장 오해하기 쉬운 존재는 오히려 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를 ‘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다른 이를 안다는 그 확신에 찬 전제가 늘 속단과 오해를 부른다는 걸 알기에, 나는 누굴 안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으려 한다. 당연히 상대도 그러지 않기를 가까울수록 더 바라고. 그건 내가 복잡하거나 대단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든 몇 마디 말이나 경험으로 판단되고, 규정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p.34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으면서 온 세상이 내게 등 돌려도 나를 믿어줄 단 한 사람. 그런 이를 내 편으로 둔 기분이 어떤 건지, 주위에 그런 존재가 있으면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바뀌는지 알게 된 것이다. (중략) 어쩌면 삶 전체를 통틀어 좋게좋게 웃음과 예의로서만 대해야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이 공허한  인간관계에서, 나로 하여금 솔직함을 이끌어 내줄 수 있는 사람, 거짓말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주는 이를 만난다는 게 얼마나 큰 복이고 행운인지를.  p.39

 

누군가와 함께 보내는 그 잠깐 동안의 자극에도 무너져내릴 만큼 내가 구축한 평온함이라는 게 허약하니까 친구와 함께 하루 시간을 보내거나 추억이 깃든 음악, 혹은 애절한 영화 한 편에도 마음이 쉬 무너져내리는 거지. 그 속도가 빠를수록 애써 외면하던 감정의 크기는 더 크고 깊은 것일 테고.  p.54

 

내가 나를 믿는 데 근거가 필요할까?  p.83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단지 숫자가 늘어나고 얼굴에 주름 몇 개가 늘어가는 일이 아니었음을, 그래서 노력하고 씩씩해지지 않으면 그 무게에 언제고 잠식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일임을. (중략) 지금 당신이 통과하고 있는 지점이, 삶의 무게에 짓눌려 당장은 그것이 젊음인지도 자유로움인지도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바로 그때임을, 어찌 말할 수 있을지. (중략) 하여 젊음이란, 이 글처럼이나 숨이 턱에 차도록 빠르게 읽히고 마는 일임을  p.90

 

그렇게 나와 우리 가족에게 호흡기를 대가며 가정을 꾸려가는 엄마를 통해 난, 그동안 이분이 말 그대로 날 뒷바라지한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착각이었음을 알았다. 엄마는 누구의 조력자나 그림자가 아니라 그냥 엄마 자체가 주인공이었다는 걸, 엄마가 불어넣는 그 생명력이 세상 전체를 만드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p.119

 

그러던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더라. 설사 그 모든 게 엄마 탓이 맞다고 해도, 이 긴 세상에서 내가 언제까지 누굴 탓하고만 살아야 할까. 내가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이렇게 나를 방치한다면 그건 결국 누구의 손해일까. 그때부터 나는 내 상처를 조금씩 스스로 해결해가기 시작했다. 상처라는 게, 세월이 흐르면 그걸 준 사람뿐만이 아니라 받은 사람의 책임도 되더라. 누구 때문이든 결국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건 나니까, 내게는 누가 주었든 그 상처를 딛고 내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일부 개인적인 문제’에 한한 것이고 부모 자식간이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세상의 어떤 상처들은 끝내 피해자의 몫으로 남아서는 안 되는 게 있는 법이니까.  p.123

 

세상의 어떤 명서도 내 그릇만큼 읽힌다.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오랜만에 집을 떠나면서 나는 외롭지 않고 불편하지 않으려 조바심치다 그 모든 것들이 여행이 아닌 구경이 되어버렸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다른 것이었는데, 집에서 티브이를 보듯 눈앞에서 편히 바다를 내다보며 달짝지근한 물회를 함께 먹고 마실 사람까지, 내겐 그곳에서 채울 빈자리가 아무것도 없었던 거다.  p.236

 

친구가 많지 않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그래서 외롭거나 불편하다면 그건 문제가 될 수 있는데, 그렇더라도 의무감이나 필요에 의해 만난 사람들이 나의 외로움이나 무료함을 덜어준 적은 거의 없었다. (중략) 친구건 연인이건 지인이건, 누가 내게 어떤 사람인가는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내 기분을 보면 알 수 있다. 누가 날 더 허탈하고, 씁쓸하고, 외롭게 하는지, 누가 날 진심으로 충만하게 해서 만남의 여운이 며칠은 가게 만드는지.  p.278

 

 

[강안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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