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혼돈의 상황에서 피어난 특별한 우정 - 나의 눈부신 친구 [도서]

글 입력 2020.06.2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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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홀린 '나폴리 4부작'의 제1권, '나의 눈부신 친구'는 이탈리아 나폴리 폐허에서도 빛나는 두 여자의 우정을 담은 이야기다. 우정을 다룬 이야기는 진부하다. 그러나 60여 년에 걸친 두 여인의 일생을 다룬 엘레나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은 아름답지만 냉혹하고 그들의 삶은 맹렬하다. 감정선은 강렬하고 인물들은 분노에 차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차갑지만 소설에는 뜨거운 마그마가 들어 있는 광활한 문장으로 가득하다.

  

 

진정한 우정, 마냥 좋고 순탄한 것만이 눈부신 우정일까? 소개글에는 '나의 눈부신 친구'라는 제목이 선사하는 의미와는 다르게, 강렬하고도 분노에 차 있으면서 뜨거운 마그마까지 담겨있는 책이라 적혀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혹은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진짜 우정'의 의미는 무엇이길래 단도직입적인 표현을 대표적으로 써넣은 것일까 저절로 궁금증이 유발됐다.

 

내가 생각하는 우정은 모름지기 서로를 아끼고 응원해주면서 탄탄한 신뢰를 쌓아가는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싸우고 갈등하거나 서로를 시기 질투하는 모습은 아름다운 우정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해서다. 그러나 나와는 달리, 이 책은 우정을 조금 다른 측면에서 묘사한다. 그래서인지 미지의 세계를 만난 듯 새로웠던 동시에, 약간의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어쩌면 이 책에서 묘사하는 우정의 모습이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일지 모르겠다. 사람 대 사람으로 쌓아가는 우정 이야기가 눈 앞에 펼쳐지자, 내가 이때까지 실천하려 했던 우정의 형태는 마치 허망된 꿈이자 우정의 본질에 다가가지 않으려 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좋고 나쁜 측면을 모두 받아들이면서까지 사랑해주고 특별한 관계를 지켜내는 게 더 탄탄한 우정이라는 것을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 시사해주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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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4부작'으로 진행되는 시리즈 중 제1권, '나의 눈부신 친구'는 릴라와 레누라는 두 주인공의 유년기부터 사춘기까지의 우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폴리의 가난한 동네에서 자란 릴라와 레누는 서로에게 가장 절친한 친구다.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간파하는 특별한 사이지만, 그렇게 깊은 둘의 우정 안에서도 미묘한 감정은 존재한다. 평생의 라이벌이자 영감을 주는 뮤즈, 둘은 그런 우정을 지속해나가고 있다.

 

릴라와 레누의 우정은 미묘한 감정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아슬아슬한 상태를 보이는 듯했다. 특별하면서도 금방 그 불씨가 꺼져버릴 것 같은, 결코 평탄하지만 않은 관계를 이어나간다. 릴라는 명석함을 타고났지만, 가정환경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독학한다. 이와 달리, 노력형인 레누는 릴라의 영특함을 보고 자극을 받아 공부하지만 따라잡지 못하고 좌절한다. 뿐만 아니라 릴라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 또한 레누보다 앞섰다.

 

릴라와 레누가 중심이 되어 이끌어가는 감정은 사실 우리 모두의 감정이기도 할 것이다. 나 역시 본받을만한 주위의 친구들을 보며 그들을 우러러보기도 하고 부러움의 감정이 드는 동시에, 나의 처지와 비교하며 나 자신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든 적이 있다. 나한테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 큰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고 현실을 자각하게 하는 가장 큰 자극제로 다가오기에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지 않을까도 생각한다.

 

나는 질투와 부러움이 한데 뒤섞인, 앞서 말했듯 본능적이라고도 칭할 수 있는 그러한 자연스러운 내면의 감정을 자책하기도 했다. 그건 진정한 우정의 필요 요소가 아닐뿐더러, 둘 사이를 갈라놓게 할 불필요한 감정일 뿐이라고. 그러나 릴라와 레누는 나와는 달리, 우러나오는 내면의 감정을 불필요하거나 자책의 도구로서 이용하지 않았다. 사랑과 미움, 질투와 동정이 담긴 두 친구 사이의 복합적인 감정은 결과적으로, 빛나는 애정의 형태로 환원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게 곧 눈부신 친구가 걷는 동일한 목적지인 듯 말이다.

 

물론 상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만 존재하는 우정은 친구 관계를 이어나가려는 태도로 적합하지 않겠지만, 긍정과 부정에 가까운 두 감정이 동시에 내포된 건 아마도 둘 사이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 필요충분의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그들의 그런 오묘한 감정이 서로를 최고의 친구이자 삶에 있어 큰 힘이 되는 평생의 지지자를 구축해냈기에, 결국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특별한 사람으로서 릴리와 레누는 서로의 곁에 자리하게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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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책의 전반에서는 둘의 우정에 얽힌 복잡한 시대상과 폭력성을 함께 조명한다. 릴리와 레누의 우정이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의 관계에서 끝나는 것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게,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렇게, 당대 나폴리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상황은 치밀한 폭력성을 띠며 둘 사이에 깊이 자리했다.

 

'경제적 빈곤'과 '마피아'는 <나의 눈부신 친구>를 포함한 나폴리 4부작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 키워드다. 릴라와 레누가 나고 자란 1950년대의 이탈리아는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매우 가난한 상태였으며, 남부와 북부의 경제적 격차는 심각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가난한 남부를 실질적으로 통치한 건 마피아였고 나폴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혼란스러웠던 사회와 경제적으로도 넉넉지 못했던 가정환경으로부터 자라난 둘의 우정이 마냥 아름답고 완벽하기만 했다면, 그 우정은 훨씬 더 눈부셨을까? 내가 생각하기엔, 덜 눈부셨을 듯하다. 혼돈의 상황에서 피어난 희망과 사랑이 더 가치 있듯, 그 둘의 우정 역시 복잡하게 얽혀 있고 수많은 변화를 거친 뒤에서야 비로소 다듬어져 완벽하게 자리했을 것이다.

 

그 둘을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역경과 고난이 둘의 사이를 충분히 갈라놓을 수 있었는데도 그들은 사이에 존재하는 끈을 놓지 않았고, 오히려 더 단단하고 굵게 그 끈의 형태를 변화시켰다. 이러한 변화가 바로 우리들의 우정, 더 나아가 세상에 공존해 살아가는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계속해서 묻고 또 묻는다. 우리의 일상은 안녕한지,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우정은 진심으로 안녕한지.

 

 

"무슨 일이 일어나든 너는 공부를 계속하도록 해.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 남녀를 통틀어서 말이야." _ 4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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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 시즌 1, 2

왓챠플레이 공식 포스터

 

 


 

 

우정이 곧 삶이었던 두 여자가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의 우정은 눈부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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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
- My Brilliant Friend -


지은이 : 엘레나 페란테
 
옮긴이 : 김지우

출판사 : 한길사

분야 : 이탈리아소설

쪽 수 : 456쪽
 
발행일 : 2016년 07월 07일

정가 : 1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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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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