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책문화를 이루는 것들에 대해 - '출판저널 517호'

책을 읽는 경험이 더 좋아질 수 있기를
글 입력 2020.06.2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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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물하는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책 자체에 대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전에는 이 책이 좋지 않을 수도 있고, 그래서 무의미한 선물이 될까 두려웠다. 요즘은 나에게 좋은 책이 언젠가 상대에게도 좋은 책이 되어주리라는 믿음이 있다. 일단 책을 곁에 두면 돌고 돌아 나에게 좋은 것이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두 가지 깨달음이 있었다. 하나는 책보다 내가 우선한다는 것, 그렇기에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지금 당장 잘 읽히지 않는다면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 다른 하나는 그렇다고 해서 그 책을 영영 안 읽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읽게 되는 때가, 그 책이 나에게 유의미하게 다가오는 때가 분명 올 거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부터 책을 집어 들거나 내려놓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차분한 마음으로 책을 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마 여러 가지 걸림돌들이 책과 나 사이에 존재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조급함이었다. 공부와 성취에 있어서 나는 항상 조급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독해 능력이 되지 않았다.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알아가고자 할 때 단계에 맞는 책을 찾아 읽지 못한 것도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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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저널>을 읽으며 지금까지의 독서 생활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의 경험과 여러 필자가 쓴 글들을 바탕으로 책 읽기라는 행위 자체에 대해, 또 책을 매개로 존재하는 여러 공간과 그 공간이 형성해가는 문화에 대해 생각했다.

 

 

 

공공도서관과 동네서점에서 만드는 책문화


 

보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으려면 누군가와 함께하는 독서 경험, 책에 관해 자연스럽게 묻고 답해보는 경험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출판저널>을 읽다 보면 학교 이외에도 '함께 읽기'의 장이 될 수 있는 곳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연중 특별기획 중 하나로 실린 칼럼 [공공도서관 사서로 살아가는 숙명](p.48)에는 23년간 공공도서관 사서로 일해온 필자의 밀도 있는 경험과 생각이 담겨 있다. 그가 사서로 일해오는 동안 공공도서관은 여러 번 갑작스러운 변화의 과정을 거쳤고 그는 변화의 물결에 떠밀리기보다는 주도해보자는 생각에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공공도서관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그 해답을 '이용자'에서 찾았고, 이용자에게 다가가는 인적인 서비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중에서도 독서 치료 서비스를 추진하게 된 데에는 필자의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전공 수업을 통해 처음 경험하게 된 독서 치료는 필자가 ‘나의 내면을 재해석’하고 지금의 나에게 어떤 책이 필요한지를 감지해내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사서가 된 이후에는 독서 치료를 현장에 접목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동료들과의 협업 끝에 ‘마음 아픈 이들을 위한 자가치유 독서 치료 목록’을 배포 및 비치했다. 이것이 도서관 측과 여러 이용자의 관심을 받아 ‘독서 치료프로그램’ 개설로도 이어졌다.

 

독서만큼 그 자체로 가치 있게 여겨지는 일이 있을까. 그리고 그 이면에 필자가 경험한 갑작스러운 혹은 너무 쉽게 이루어지는 변화들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가운데 실질적인 공공 서비스를 위해 고민하고 차근히 추진해온 노력의 과정이 유난히 빛나 보인다. 실험적으로 추진한 ‘자가치유 독서치료 목록’에 사람들이 큰 관심을 보여 본격적인 프로그램과 상담으로 이어졌듯 체계적인 독서 경험에 대한 필요를 확인하고 그것을 공공도서관이 충족해가는 모습이 이상적인 구조로 다가온다.

 

네덜란드의 공공도서관을 소개한 [로칼(LocHal) 도서관에서 역사와 문화와 삶을 떠올리다](p.10)에는 공공도서관이 곧 ‘도시의 거실’과도 같다는 표현이 나온다. 책을 읽는 공간, 독서를 위해 조성된 공간이 자연스레 교류의 장이 된다는 것이다.

 

 

서울 관악구에 자리한 동네서점 책이는당나귀.jpg

서울 관악구에 자리한 동네서점 책이는당나귀

 

 

동네 서점의 여러 가지 고민과 노력을 담아낸 [골방작가와 쫄보사서의 책방대담 서점 책이는당나귀](p.40)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책을 파는 장소도 좋지만, 책을 매개로 사람과 소통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다.”

 

 

책방의 주인들은 “한 달에 한 권 벽돌 책을 읽는 ‘달책’, 잃어버린 창조성을 되찾아주는 ‘아티스트 웨이 워크숍’, 평범한 작가 지망생들을 위한 ‘머든지 글쓰기(머글)’” 등의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다. 독서를 매개로 만나는 공간이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는 거실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이유는 같은 책을 읽고, 그 행위에 시간과 에너지를 들인다는 것만으로도 서로 간의 동질감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읽기의 어려움과 독서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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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지면에는 [출판은 언제부터 변화한 것일까](p.86)라는 제목의 짧은 글이 실려 있다. 해당 글의 필자는 <코믹 메이플스토리>가 성경책의 판매 부수를 뛰어넘은 현상을 지적하며 독자들의 새로운 니즈를 확인해야 출판산업의 미래도 밝아질 수 있다고 썼다. 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이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에는 공감했지만,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니즈는 성경책이 아닌, <코믹 메이플스토리>라는 만화책과 같은 콘텐츠"라는 말에는 의문부호가 찍혔다. 과연 그럴까, 그 방향이 맞을까 되묻게 됐다.

 

이 문제는 [책은 읽을 수 있지만 내용 파악이 안 되는 아이들을 위한 방안](p.142)이라는 글에 제시된 독서 교육의 어려움과 맞닿아 있었다. 독서토론전문가인 필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책 읽기의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독서토론동아리 활동을 했다는 내용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려는 목적으로 독서 토론에 참여하며 “책을 읽었다고 해도 내용 파악을 잘 못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따라서 담당 선생님은 학생들의 수준을 명확하게 측정하고, 그에 맞는 도서를 선정하여 단계적으로 독서 활동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야 한다고 필자는 말한다.


 
"인간이 어느 정도의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수준의 언어능력은 본능일지 몰라도 초등 고학년 이후에 읽게 되는 책이나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준의 정보, 대학교 이상에서 배우게 되는 전공 지식들을 생각해본다면 어휘는 만 12세 이전에 습득하고 마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공부하고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언어는 계속해서 공부하고 배워야만 하는 종류의 것이라는 필자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한국어가 모국어라고 해서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글에 따르면 독서 교육에는 한국어의 다양한 표현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언어 학습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보통 독서라고 하면 한 명의 개인이 텍스트를 읽는 행위 그 자체로만 받아들여지고, 그래서 별다른 읽기의 방법이라든가 언어 공부의 필요성이 제기되지 않지만 어떤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숙련된 독해력이 필요하다.

 

대학 입학 후 교양 과목을 수강하며 내가 그리 어렵지 않은 책조차도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며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전문 분야에 관해 쓴, 긴 호흡의 글을 읽어본 적이 잘 없었기 때문이다. 책을 좋아해본 경험이 없고, 독서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배우거나 교류할 사람이 주위에 없었을 경우 제대로 된 독서 경험이 가능해지기까지 너무 많은 시행착오가 이루어져야 함을 느꼈다.

 

해야 하니까 고군분투하던 시절에는 몰랐지만 되돌아보면 나에게 학술적 목적의 책 읽기는 항상 길을 몇 번이고 잃어버리는, 지도 없이 목적지를 찾아가는 일처럼 고단했다. 이것이 최선일까?

 

필요한 독해 능력을 기를 수 있는 학습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일과는 자연스레 멀어지리라 생각한다. 나는 책과 잘 맞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큰 노력 없이 읽을 수 있는 종류의 책을 찾게 될 것이다. 이러한 흐름의 결과로서 "만화책과 같은 콘텐츠"의 판매 부수가 증가해온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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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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