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둥근 시간 속 - 컨택트 [영화]

글 입력 2020.06.21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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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감독이 누구냐는 질문에 1초의 고민도 없이 ‘드니 빌뇌브’라고 말할 것이다. 감독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 체계 속에서만 영화를 제작하지 않는다. 할리우드 기법 속에서 자신의 영화적 미를 더할 수 있는 감독이며, 자본에 굴복하지 않는 감독이다. 어떤 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나의 ‘최애(최고로 애정)’로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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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 중 영화 ‘컨택트’는 감독의 역량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감독은 특유의 마이너 성향과 할리우드 기법까지 더해지면서 특유의 ‘드니 빌뇌브’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그 이전 영화 ‘그을린 사랑’에서 잡지 못한 관객층까지 모두 잡아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영화 ‘그을린 사랑’을 시작으로 영화 ‘컨택트’까지 이야기의 원형을 그리고 있다. 그의 영화는 하나같이 ‘시작점 없음’의 상태다. 모든 불행이 어느 시점으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이 아닌 머피의 법칙처럼 어쩔 수 없음의 상태에 놓인다. 이번 영화 ‘컨택트’와 같이 미래를 알고 있어도 결국 그 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 길을 선택한 것도 그 헵타포드어를 알게 된 시점으로 진행된 것인지 혹은 아이가 줄 미래의 행복감으로 인한 선택인지 알 수 없다.

 

감독은 시작이 끝이 될 수도 있고, 끝이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영화라는 장르 안에서 시작과 끝을 지정해두지 않는다. 그렇기에 감독의 이야기는 항상 복잡하다. 원인과 결과가 명확하게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관객인 우리가 영화라는 특수성 때문에 모든 행동의 원인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가. 이 영화는 어쩌면 그런 영화의 특수성을 비판하며 이야기를 채운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행동의 원인을 사건의 전이 아닌 사건의 후로 가지고 오면서 말이다. 영화의 엔딩을 보면 모든 퍼즐을 풀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것을 풀 것인지 아닌지는 결국 관객의 손에 달렸다.

 

 

 

# 시작을 알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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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과거로부터 온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 루이스는 미래를 기억한다. 그 기억으로 자신의 현재의 답을 찾는다. 대화는 루이스의 책에서는 ‘무기’였으나 결국 헵타포드의 말처럼 ‘선물’이 된다. 영화를 보고 나면 결국 이상한 명제 속에 갇혀있는 본인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기억이란 단어를 이렇게나 미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음에 다시 한번 감탄한다. 결국 그 기억은 기억의 꼬리를 물어버린다.

 

한나(Hannah)의 이름이 대칭어인 것, 헵타포드의 언어가 원형인 것 그리고 현재라는 시점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는 어디가 시발점인지 호명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시작점을 알려주는 부분이 한나의 탄생 부분이다. 결국 한나의 탄생은 온전히 루이스가 그 언어를 받아들임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한나는 ‘은혜, 은총’이라는 뜻을 가진다. 결국 한나는 헵타포드가 루이스에게 준 선물에 대한 보답이 될 수 있다. 만약에 루이스가 어쩌면 불행하다고 말할 수도 있는 미래를 포기했다면 그녀에게 그 언어가 작용했을까. 그 선물이 왔을 리가 없다. 물론, 이 또한 헵타포드가 그녀의 미래를 보고서 그녀를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미래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꾸지 않는 그녀는 현재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미래를 알려준 것에 대한 은혜를 갚는 행위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안이 루이스와 단둘이서 하늘 아래에 있는 장면이 있다. 당시 이안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이안은 그녀를 바라보지만, 그녀는 오직 그 UFO만을 바라보고 있다. 각각의 클로즈업 샷일 때도 이안에게는 풍경만이 루이스에게는 UFO를 배경으로 설정해준다. 이안은 별을 항상 보고 산 사람이지만 당시에는 그녀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UFO에 시선이 향해있다. 이안에 대한 사랑이 아닌 UFO에 대한 보답이지 않을까.

 

또한 온전히 그녀의 시각으로 진행되던 이야기가 갑자기 이안의 보이스를 담는다. 순간 유명한 배우를 너무 안 쓰기 미안해서 그런가. 이런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결국 시각의 차이임을 보여준다. 이안의 시각은 그녀를 행해있지만, 그녀는 오직 UFO만을 보고 있다. 이 점을 분명하게 해주는 것이다.

 

 

 

#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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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리만큼 노을 진 하늘을 자주 보여준다. 오렌지 색상과 푸른색의 조화는 그들의 공간이 구름의 아래인지 위인지 모를 풍경을 자아낸다. 이런 풍경은 공간의 황홀감을 부여하면서 그 공간의 이질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에서 핵심은 왜 노을이냐는 것이다.

 

작품에서 오렌지 색상과 푸른색이 굉장히 많이 사용된다. 푸른색은 다른 영화에서처럼 단순히 그녀의 우울감이 아니다. 오렌지는 생동감을 표현하는 것도 아니다. 오렌지는 그 언어 자체를 의미한다. 그들이 처음 그 외계인을 만날 때의 의상도 오렌지색이다. 푸른색은 그 언어가 없음, 부재함의 상태를 알려준다. UFO가 출몰하고 아무것도 없는 검은색의 상태였던 그녀의 집은 외부의 푸른색의 빛으로부터 부름을 받아서 나가게 된다. 그녀가 나간 집은 다시 검은색으로 돌아오게 된다. 즉, 푸른색은 이해할 수 없음의 공간이다.

 

노을이 지는 하늘은 결국 그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음의 생태에 놓이게 된다. 실제로 그녀가 미래의 기억으로 혼란한 순간에 오렌지 조명이 자신을 비추고 있다. 또한 영화 중반에 캠프의 모든 공간이 푸른색으로 빛나도 그녀의 공간만 오렌지색으로 빛난다. 출판 기념식의 공간도 주황색으로 빛난다. 그 언어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초반 국가의 부름을 받아 도착한 그들의 공간은 주황색이란 것은 볼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그저 맑은 하늘에 불과하였지만, 그녀가 점차 그들의 언어로 소통하면 해는 점차 떨어지며 밤의 색상과 조화를 이룬다. 결국 노을 진 하늘은 그들 자체를 표현하는 것이다. 소통하지 못하는 자와 소통할 수 있는 자의 공간 자체 말이다.

 

영화의 엔딩 루이스와 이안이 포옹할 때도 이안의 앵글에는 없는 루이스에게는 주황색 하늘이 존재한다.

 

 

 

#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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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 빌뇌브 감독은 영화 속에서 특유의 뜨거움과 특유의 차가움이 동시에 맴돈다. 이번 12월에 개봉하는 그의 차기작인 ‘듄’에는 또 어떤 식으로 영화를 만들어 낼지 기대가 앞선다. 늘 원형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감독은 이번엔 또 어떤 원형을 만들어 낼 것인지, 그 원형의 모형을 기대하는 바다.

 


[박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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