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짝사랑 연대기] 4장 : 글의 퀄리티를 높이는 법, 같이 쓰기

타인과 함께여서 가능한 것들
글 입력 2020.06.2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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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들과 함께 글쓰기 스터디


 

2학년 2학기, 동기들과 저녁 식사를 할 때였다. 밥을 먹으면서도 우리들은 글에 대한 고민을 주로 나눴다. 그때의 우리들은 소설을 수업을 들을 때만 과제로 내기 위해 쓰고 평상시엔 적게 쓰는 것이 고민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소설을 더 많이 쓸 수 있을까?’

 

이 고민에 대해 의견을 도란도란 나누고 있을 때였다. 내가 즉흥적으로 제안을 하나 했다.

 

“우리 글쓰기 스터디를 할까? 일주일에 한 번씩 글을 쓰고 서로 합평해 주는 거지! 어때?”

 

다들 좋은 생각이라고 반응해 주었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구체적인 실현을 하지 못했다. 가볍게 흘러가는 말처럼 될 뻔했던 나의 제안은 동기 언니에 의해 현실로 이루어졌다. 동기 언니가 학교 공지글 링크를 가져와 단톡에 뿌렸다. 그 공지의 내용은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스터디를 만들면 지원금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학교의 지원을 받는 정식 스터디가 되어 글을 함께 쓰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스터디를 한 방식


 

첫 활동을 했을 때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은 소설을 써와서 합평을 받자고 정했다. 그러나 소설이 일주일에 한 번씩 갑자기 뚝 떨어져 나올 수는 없는 법. 소설의 영감을 위해 우리가 택한 방식은 이것이었다. 단어를 무작위로 뽑고, 좋은 문장도 하나, 상상력을 불어넣는 재밌는 이미지를 팀원들이 함께 고른다. 그래서 그 단어들이나, 문장, 이미지를 소재로 삼아서 소설을 써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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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를 할 때 제출한 보고서.

이번 주 작가가 제시된 단어, 문장, 이미지를 골라 소설을 써온다.

 

 

소설을 쓰면 만나기로 한 전날쯤에 단톡방에 자신이 쓴 소설들을 공유한다. 그러면 다들 그 소설을 읽고 와서 스터디 날에 모여 합평을 해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한 학기 동안 열심히 스터디를 한 뒤엔 마무리하는 단계에서는, 그동안 쓴 소설들을 모아 문집을 냈다. 지금 나에게는 우리의 목소리들이 스며들어 있는, 자랑스러운 문집이 네 권이 있다.

 

항상 같은 방법으로 스터디를 한 것은 아니었다. 방학 때는 소설 쓰기를 잠시 멈추고 책을 읽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때의 우리들은 좋은 단어나 문장이 소재로 있어도, 소설이 나오지 않는 슬럼프에 부딪쳤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 우리가 택한 방식은 이것이었다. 각자가 추천하는 책을 한 주에 한 권 읽어오고 감상문을 써온 뒤, 스터디 날에 서로 의견을 나누고 ‘우리는 이 책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때는 소설을 써오는 걸 목표로 하기보다는, 소설을 퇴고하는 데 시간을 더 많이 들일 때도 있었다. 이제 무조건 양적으로 소설을 뽑아오기보다는 그동안 써온 소설을 다듬어 공모전에 내는 걸 노리기도 했다.

 

그럼 이제부터, 같이 쓰기 시작했을 때 좋은 점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뭐니 뭐니 해도 강제력


 

‘글은 마감이 쓴다’,라는 말을 SNS에서 우연히 본 적이 있었는데 크게 공감했다. 이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책장에 곱게 꽂혀 있는 문집들을 꺼내보았다. 그래서 이 네 권의 문집들 중에 내가 쓴 글은 몇 개가 실려 있나 세 보았다. 15개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었다. 맹세컨대, 소설 스터디로 함께 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혼자서는 이렇게 글을 많이 쓸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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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를 하면서 완성한 문집 네 권

 

 

3장에서 글에서 '많이 쓰는 것'의 중요성을 말한 적이 있었다. 매일매일 20분 아무 말 쓰기는 나에게 문장을 많이 쓰게 했다면, 소설 스터디는 ‘완성된 하나의 소설’을 많이 완성시키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15개의 작품을 썼다고 했지만 저 중에 공모전에 낼 만한 퀄리티의 글은 또 몇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소설을 저렇게 많이 쓴 것 자체가 나중에 내가 원하는 수준의 글을 쓰는데 큰 자양분이 되었다.

 

우리 스터디원들은 소설을 써오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여 벌금을 매겼다. 벌금을 내는데도 익숙해지는 것 같으면, 그 멤버가 절대로 하기 싫어할 것 같은 벌칙 같은 걸 내려주기도 했다. 벌칙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양 갈래로 묶은 뒤 사진으로 찍혀 팀원들의 핸드폰에 영영 박제당하는 것도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벌금이 무서워 글을 마감 기한 안에 냈지만 시간이 갈수록 스스로 시간 안에 내게 되었다.

 

왜냐하면, 일단 글을 제출하지 않으면 스터디 시간의 재미가 반감되기 때문이었다. 물론 친한 동기의 글을 합평해 주는 시간도 즐겁다. 하지만 사실, 내가 열심히 쓴 글이 합평 받는 시간에 가장 집중도가 올라간다. 내가 쓴 글을 타인은 어떻게 읽었는지, 그래서 나도 몰랐기에 그렇게 썼던 내 소설의 치명적인 단점은 무엇인지 그 내용을 하나도 놓칠 수 없기에. 또한 내 소설을 제출한 스터디의 날에는 합평을 듣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혹시 칭찬을 듣지 않을까 하고 설렘이 더 큰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기대감에 더 부푼 마음으로 스터디를 하러 갔다.

 

또한 스터디를 함께 하다 보면 확실히 나뿐만 아니라, 동료들의 실력이 느는 것도 보인다. 그게 정말 스터디를 하면서 큰 장점인 것 같다. 일단, 그걸 보면서 나도 더 의욕이 솟아나는 걸 느꼈다. 마감 시간보다 더 일찍 올리는 친구가 있다거나, 이번에 올렸는데 분량이 평소보다 많은 친구가 있으면 ‘나도 질 수 없다’라는 생각에 글에 바짝 더 집중하게 되었다. 또한 동료들이 어떻게 실력을 키우는지 보는 것만으로 많은 공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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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피드백을 받아 더 나은 작품을 쓸 기회


 

나는 글은 세 번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첫째 콘티를 짤 때, 두 번째 그 콘티를 바탕으로 초고를 쓸 때, 세 번째 피드백을 받고 퇴고를 할 때. 각 과정이 모두 빼놓을 수없이 중요하지만, 스터디를 하면서 특히 나는 피드백과 퇴고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피드백을 받다 보면 정말 놀라게 된다. 마치 사람이 자신의 등을 볼 수 없는 것처럼, 내가 쓴 글의 단점을 나는 못 보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작가인 나도 그것이 단점인 줄 알았으면 애초에 그렇게 안 썼을 것이다. 비문이었는지, 구성이 엉성하다고 느껴지는지, 인물들의 비약이 심한지, 모르니까 그렇게 쓴 것이고 그걸 잡아내 줄 수 있는 건 타인이다.

 

물론 피드백을 받는 건 너무 괴로운 일이다. 부족한 나 자신과 적나라하게 대면해야 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글을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지고 완성시키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걸 해냈으니 사실 스스로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뿌듯한 마음을 안고, 예쁜 내 자식 같은 작품을 내보였는데 부족한 점을 지적받으면 수치스럽기까지 할 때가 있다. 나도 스터디를 하러 갈 때는 웃으면서 갔는데 끝나고는 어깨에 힘이 빠진 적도 많았다.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자료 조사와 플롯을 구상하는 데만 거의 일 년이 걸린 작품이 있었다. 초고를 스터디에게 내보였는데, 그때 받은 합평을 총집합해보니 이런 결론이 나왔던 것이었다.

 

다 갈아엎어야 한다.

 

그 당시 나는 그 피드백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쓰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나 밖에 모르기에-당연하지만- 다들 너무 말을 쉽게 뱉는다고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음날이 되어서 받은 피드백을 떠올리며 그 작품을 다시 읽어보니 친구들의 말이 다 일리가 있었다. 나는 소설의 구성을 다시 뒤엎어 썼고, 그 작품으로 학과 백일장 대회에서 소설 대상을 받을 수 있었다.

 

요즘 더 절감하는 것인데, 칭찬보다 비판이 더 어렵다는 것이다. 칭찬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해주는 것이 가능하다. 작품의 비판할 점이 보이는 사람은 그 사람이 어느 정도 작품 보는 눈이 깊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작품에 대한 비판이라는 것은, 작품 비평을 할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이 작품을 깊게 봐줘야 해줄 수 있는 것이다.

 

이걸 특히 느꼈던 때가 최근 소설 수업에서였다. 내가 나와 스터디를 함께 해오던 언니가 소설 수업에 낸 소설을 읽었을 때였다. 나는 그 언니가 얼마나 일취월장했는지가 보였기에 그저 감탄만 쏟아냈다. 그런데 교수님은 다르셨다. 나는 이제 별로 지적할 게 없다고 생각한 그 소설에 대해서도, 교수님은 여전히 부족한 점을 짚어내셨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셨다. 내 부족한 식견으로는 발견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때 느낀 충격으로 인해 지금은 이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비판해 주기가 칭찬보다 어렵다. 나는 소설 스터디를 해오면서, 귀한 비판들을 받아왔구나.

 

칭찬은 듣는 이의 기분을 좋게 해줄 순 있다. 창작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일정 수준에 도달한 언니에게 더 도움이 되었을 건 나의 칭찬보다는, 교수님의 코멘트였을 것이 자명했다.

 

 

 

마지막, 작품을 본다는 건 그 사람을 안다는 것


 

이건 어쩌면 내 소설 쓰기 실력 향상과는 상관없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빼놓고 쓸 수가 없었다. 바로 스터디를 했기 때문에, 친구들과 영원히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들을 만들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작품을 읽는다는 건 그 사람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의 작품을 읽고, ‘왜’ 작가가 이 작품을 쓰게 되었는지, ‘뭘 말하고’ 싶었는지, 그래서 그걸 위해 글로 ‘어떻게’ 실현했는지 작가의 말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그랬기에 그저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넘어서, 이 친구가 평상시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세계를 품고 있는지 더 깊게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각자를 더 알게 되었고 서로를 더 아낄 수 있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일주일에 한 번은 스터디로 꼭 만날 만큼 애정을 쏟았다. 만약 스터디를 하지 않았다면, 나를 포함해 내 동기들 거의 대부분이 복수 전공을 하고 있었기에 점점 갈수록 보기 어려울 것이었다. 어느 순간에는 전공 수업에도 친구들을 보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하지만 규칙적으로 스터디를 통해 최소한의 시간은 만나니 우리는 서먹해질 틈이 없었다. 스터디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엔 가볍게 근황을 꼭 물었고, 스터디를 끝나면 다 같이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가는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그래서 괴로운 스터디가 아니라 나에겐 꼭 동기들 간의 데이트 같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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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가.

어떤 작품을 쓰고 싶은가.

내 미래의 모습은 어땠으면 좋겠는가.

어떻게 하면 글을 놓지 않을 수 있을까.

 

일상 이야기를 하면서 배를 잡고 깔깔거리는 시간도 많았다. 하지만 스터디를 하면서 우리는 어느 순간 숨 쉬듯이 서로의 글에 대한 고민을 듣고 나누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이런 고민을 너희 아니면 누구한테 나누겠냐.’ 이런 말들을 서로에게 들려주며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나는 내 글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잘 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하지만 오래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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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오래도록 사랑하고 싶다. 이왕이면 나처럼 글을 사랑하는 이 친구들과 함께 오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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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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