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마무리에 대하여. 그래. 잘 끝내봐!

글 입력 2020.06.19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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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반이다. 하고 나서 후회해라. 차고 넘치는 시작과 처음을 찬양하는 글과 말들은 첫걸음을 내딛기를 망설이는 사람의 등을 살포시 밀어주기에 시작의 시작 선에 발을 올리고 있는 당신들도 눈 딱 감고 용기를 내 선을 넘는다. 세상과 사회와 사람들이 시작하는 법이나 처음을 맞이하는 법은 친절하게도 알려주며 대단한 일이라며 칭찬한다. 해가 있어야 그림자가 생기고 흙이 있어야 식물이 뿌리를 내리듯이 모든 존재하는 것에는 양면이 존재하며 시작에 있어서도 끝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다소 어색하다 싶은 것은 화려한 조명이 감싸는 시작이나 처음과 달리 끝과 마지막은 사람들에게서 외면받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끝과 마지막을 맞이하는 법을 몰라 망설이게 되는 것도 그 탓은 아닐까 싶다.

 

 

 

마무리 = 끝?


 

마무리는 일의 끝맺음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가지고 있다. 끝맺음은 어떤 일을 마무리하는 일이라는 정의를 가지고 있다. 즉, 마무리라는 것은 어떠한 것에서부터 완전한 결별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을 통해 나와 그 어떠한 것 사이에서 만들어진 연결고리가 끊어지지는 않을지, 고장 나지는 않을지, 혹은 더 늘어나지는 않을지에 대한 걱정에서 해방되는 일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마무리를 받아들일 때는 내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탓에 마무리를 환영하기보다는 조금씩 조금씩 눈치를 보며 거리를 벌리기만 한다.

 

가슴을 뛰게 하고 괜스레 쭈뼛거리게 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한 감정을 느끼게 된 시점에서 우리는 사랑을 시작하기 위한 출발선 앞에 서게 된다. 고백이라는 한 걸음을 더 내딛기만 하면 그 사람과 함께 사랑이라는 트랙을 달리게 되지만 그 한 걸음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다. 어떻게 하면 가장 적절한 보폭과 속도로 발을 뗄지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 모든 과정이 힘들기도 하겠지만 한 걸음으로 인해서 이어질 시간에 대한 기대 덕분에 설렘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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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oshua Ness on Unsplash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이다. 누군가와 사랑을 이어가는 와중에 발이 꼬이는 일도 빈번할 것이고 둘 중 한 명이 다칠 수도 있으며 그런 일들의 반복에 질려 트랙을 벗어나고 싶을지도 모른다. 서로가 그렇게 느낄 수도 있고 혹은 둘 중 한 사람만이 그럴지도 모른다. 체력이 다 해 더는 달릴 수 없는 상태가 찾아 올지도 모른다. 이러한 시기에 놓인 우리는 주변에 상담하면서 보통은 어떻게 헤어져야 하는지보다 헤어져야 하는가 아닌가에 관해 물어본다. 이미 당사자인 본인도 이 고리의 매듭을 묶어 이곳에 두고 또 다른 고리를 만들기 위해 떠나는 것이 정답임을 알면서도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 필요한 고통을 견뎌내기 힘들기에 정답이 아닌 원하는 답을 갈구한다. 정답을 알더라도 매듭을 어떻게 묶어야 할지에 대해서 여태껏 배운 적이 없었기에 앞날이 막막하니 또 외면하고 싶어진다. 이 매듭이 묶이는 순간 이 고리와 나는 온전히 서로에게서 살아질 것이라는 오해가 두 어깨를 짓누른다.

 

고리의 매듭을 온전히 묶었다는 것이 이제는 더는 고리를 만들어 낼 일이 없다는 것은 아니며 나에게서 사라진다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시작을 내딛는 법에 더불어 온전히 마무리하는 법까지 익혔으니 또 다른 고리를 만들 때 이제는 더욱 견고하게 만들 수 있다. 내가 지금까지 만들어 온 튼튼한 고리가 얽히고 섥혀 하나의 그물이 되었을 때 서로를 받쳐주며 더욱 튼튼해지고 끊어내거나 풀어내는 것도 어려워진다. 그렇게 내 마음이 발을 딛고 서 있는 바닥이 촘촘해져 갈수록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며 버티느라 진이 빠지는 상태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내던지고 그냥 누워버리고 싶을 때 나를 받아줄 무언가가 있음에 안심하고 마음 편히 바닥으로 몸을 날릴 수 있게 된다. 내가 인생에서 행해 올 모든 마무리는 내가 잠시 누워 쉴 수 있는 침대를 위한 재료로 쌓여갈 뿐이다.

 

 

 

초면이라 어떻게 불러야 할지.


 

꽤 거창하게 떠들었지만 잘 마무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살아봐야 얼마 되지도 않은 나이라 마무리라는 것을 제대로 마주한 경험이 그리 많지 않다. 아직 무언가를 제대로 시작하는 법을 배우기에도 벅찬 나이인지라 잘난 듯이 이래라저래라 떠들어도 잘 해봐야 당돌함이고 까분다는 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이다. 내가 풀어낼 방식이 모두에게 정답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다. 당신이 누군가와 혹은 무언가와 만들어낼 연골 고리에서 나는 제삼자일 뿐이기에 그저 약간의 힌트 정도만 줄 수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무리가 끝장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계속 붙들어 두고 있을 필요가 없도록 완성하는 일임을 깨닫는 인식의 전환이다. 마무리를 끝으로 받아들인다면 이제는 더 이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 찾아오고 그 덕분에 굳이 가질 필요가 없는 미련을 품게 되면서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게 될 뿐이다. 이미 나에게서 감정이 떠난 연인을 온전히 보내지 못해 붙잡는 것과 다름없는 짓이다. 어느 날 새벽에 날아오는 전 애인의 문자에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생각해보라. 연락을 보내는 사람은 아직 나에게 미련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기대를 하지만 받는 처지에서는 왜 이 새벽에 연락해서 내 잠을 깨우는가 싶은 짜증과 상대에 대한 갔잖은 마음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인생에서 같잖은 사람으로 남아 좋을 것도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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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nton Shuvalov on Unsplash

 

 

언제 마무리를 해야 할지 그 타이밍을 적절하게 짚어내는 능력도 필요하다. 아직 때가 아닌데 섣부르게 마무리부터 지으려고 하면 온전치 못한 고리가 얼마 못 가 끊어지게 될 것이고 그 끊어진 고리를 다시 붙여놓기 위해서 갔던 길을 되돌아와야 한다. 그냥 지나치고 무시하고 싶어도 우리 인생에서 끊어진 그 고리들은 쉴 새 없이 우당탕 소리를 내며 귀를 울려대기에 그럴 수가 없다. 한 개 정도를 무시하고 지나친다 하더라도 제대로 마무리 짓는 법을 모른 채로 살아가다 보면 이렇듯 끊어진 고리들이 무수히 많아지게 될 것이고 어느 순간 세지도 못할 정도로 많은 그 고리들이 사방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결국은 귀가 먹을 것 같은 소음에 둘러싸일 뿐이다. 타이밍을 놓치는 것은 언제나 이토록 위험한 행동이다.

 

적절한 타이밍이라는게 수학 공식처럼 정해진 것은 아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는 스스로가 생각했을 때 이제는 내가 어떤 짓을 하더라도 달라질 게 없다 싶을 때가 아닐까 싶다. 쉰내가 나고 곰팡이가 핀 음식을 보면 이건 어떻게 하더라도 다시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기에 미련없이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인생의 모든 일이 이처럼 누가 보더라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들로 가득하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기껏 공들여 만든 음식이 내가 기대하던 맛이 안 날 때는 이걸 버려야 하는지 아닌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 음식은 버리고 새로 만들면 더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머리로는 뭘 어떻게 해도 맛이 좋아지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것저것 넣다가 맛은 더 이상해지고 추가적인 재료 낭비까지 얻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길을 선택했다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나에게서 마음을 돌린 사람을 다시 데려오려고 안간힘을 써 봐야 내 시간과 감정만 허비할 뿐이다. 이제는 더 나아질 길이 없음을 본능적으로 깨닫게 되는 순간에는 가차 없이 고리의 매듭을 지어야 한다.

 

한 번뿐인 인생이지만 그 한 번의 인생 속에서 수없이 많은 경험을 통해 반복적인 연습을 할 수 있다. 시작은 언제나 좋은 일이고 끝은 언제나 슬픈 일이 아니다. 끝도 충분히 기쁘고 좋은 일이 될 수 있다. 마무리하는 것을 망설이는 것은 시작을 망설이는 것과 같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첫 연애는 누구나 서툴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점차 적응해간다. 처음에는 언제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지 막막하고 답답할지도 모른다. 거기서 멈춰 설지 아니면 용기 내 마무리하는 일을 반복하며 조금 더 나은 마무리를 이어갈지는 자신에게 달려있다.

 

“그래 한 번 시작해 봐!”라는 격려만 할 게 아닌 “그래 한 번 끝내봐!”라는 말도 충분히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격려다.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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