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일즈맨의 죽음, 현대 아버지들의 초상 [연극]

글 입력 2020.06.1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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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마릴린 먼로의 전 남편으로도 유명한 아서 밀러는 미국의 대표적인 극작가다. 아서 밀러는 성공한 극작가인 자신 앞에 오랜만에 찾아온 외삼촌이 허풍을 떨며 본인의 아들을 자랑하는 모습을 보았고 예리한 작가는 외삼촌의 심중을 꿰뚫어 본다. 이에 영감을 받아 탄생한 희곡이 그를 세계적인 극작가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 <세일즈맨의 죽음>이다. 경제 호황을 누리던 미국이 1929년 대공황으로 한순간 무너진 시절,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비극을 그린 이 작품은 현재 코로나 시대에 경제 혹한기를 겪고 있는 우리 시대와 가정이 얼핏 보이는 현대적인 극이다.

 

 

 

1. 내면을 파고드는 형식적 완성도


 

<세일즈맨의 죽음>의 원제는 Inside of his head. 원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윌리 로만이라는 60대 가장 주인공의 머릿속과 내면을 파고든다. 이 극은 충실한 객관적 묘사를 한다는 점에서 사실주의 극의 특징이 있지만, 그 표면 밑에는 복잡한 개인의 심리가 있는 표현주의 극이기도 하다. 무대장치와 음향 및 조명 효과를 잘 활용해 인물의 정신세계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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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로, 무대의 거대한 벽체는 윌리 로만의 심리적 압박과 분열을 표현한다. 윌리의 아버지가 즐겨 불었던 플룻 소리는 그의 과거 전원시절의 향수와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을 나타낸다. 극의 형식적인 특징이 주제와 스토리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아주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2. 결핍이 낳은 이상


 

윌리는 4살 때 알래스카로 떠난 아버지로 인해 부성애가 결핍된 인물이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자식에게 집착하고 형을 정신적 지주로 여기는 모습은 윌리 로만의 정신 상태를 잘 보여준다. 아버지의 부재는, 단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주제이다. 이는 물리적으로 아버지가 부재하는 뜻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성숙한 길을 이끌어줄 멘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친구처럼 소통하는 아버지 상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개념이다. 현대인의 아버지들은 일을 하느라 자식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갈 시간이 없었다. 자식들은 아버지에게서 공부와 사회적 성공에 대한 조언만을 듣고 자라느라 진로와 정체성은 찾지 못한 채 성인이 되고, 20대가 되면 저마다의 결핍을 안은 채 방황한다. 윌리는 물리적으로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했지만 아들 비프는 정신적 부재를 경험한 것이다. 비프가 마지막에 하늘을 바라보며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었노라 고백하는 장면은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비프 : 저는 하늘을 봤어요. 저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봤어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했죠. 왜 원하지도 않는 존재가 되려고 이 난리를 치는거야? 

 

 

이들의 이야기는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부재를 겪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부성애 결핍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부추기는 아메리칸 드림의 성공 신화는 윌리가 허황된 이상을 품게 되는 계기가 된다. 노력하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는 자본주의 사회는 정작 회사를 위해 평생을 일한 아버지들을 가차 없이 해고한다. 우리는 사회가 부추기는 성공의 모습만을 보며 이상을 꿈꾸지만 <세일즈맨의 죽음>은 성공 편에 서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소모되고 이 과정에서 가정이 해체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세일즈맨의 죽음>은 형식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밀도 있는 주제로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건드리는 수작이다. 이미 70년도 더 된 작품이지만 현재까지 꾸준히 극이 올라가는 이유는 우리의 보편적인 감정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사회의 문제 등을 고통스럽게 파고들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윌리는 훌륭한 인품이나 매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인물의 비극이 이토록 고통스러운 이유는 그가 우리들의 아버지를 떠올리게끔 하기 때문이다.

 

최근 코로나로 실직하신 아버지께서 술을 드시며 내게 하소연하셨다. 자신은 정치인이 되고 싶었노라고. 지금도 그 꿈이 당신의 마음속에 자리해 더욱 고통스럽다고. 나의 아버지는 존경받을 만한 성품이나 사회적 성공을 이루지는 못하셨다. 하지만 그 역시 가족들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신 나의 비극적 영웅이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윌리의 50년대에도, 코로나로 경제 혹한을 맞고있는 오늘날 모든 가정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백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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