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공부해서 깨닫는 게 나의 무지뿐이더라도, [도서]

나에게는 조금의 사랑과 낭만이 남겠지. 그걸로 만족한다.
글 입력 2020.06.1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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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무 무지하다


 

‘공부 좀 했다’라고 말하기엔 나는 아직 경험도, 지식도 부족하다. 그래도 나름대로 공부와 사유의 필요성을 깨달아 대학도 다니고, 책도 읽고, 문화예술도 향유하며 공부를 해보려 애쓴다. 공부를 하면서 나의 지식이 쌓이고 쌓여 언젠가는 ‘나’와 세계에 대해 명확하게 말할 수 있기를,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기를, 성숙한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기를, ‘공부 좀 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깨닫는 사실은 ‘나는 너무 무지하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읽어도 읽을 책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공부를 할수록 앎에는 끝이 없는 법이라 나는 영원히 무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만 깨달았다. 또 그렇기 때문에 나는 결국 미성숙한 말들을 내뱉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그런 두려움은 자괴감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차라리 아예 공부를 하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배우지 않으면 ‘공부를 안 해서 그래’라는 말로 모자란 나를 변명하고 합리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탈진실(Post-Truth)’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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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라고 한다. 탈진실은 ‘객관적 사실이 공중의 의견을 형성하는데 개인적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보다 영향력을 덜 끼치는 환경’을 뜻하는 말이다. 예전에는 객관적 사실을 통해 거짓을 진실로 밝혀내고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 위해 노력했다면, 지금은 자신이 진실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진실이라 믿는다.

 

눈부시게 발전한 기술로 인해 우리는 한없이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동시에 집단은 개인으로 분화되어 부유하며 혼란과 불안을 느낀다. 넘치는 정보 속에서 항상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과 혼란 속에서 소속감을 갈구하는 사람들을 현혹시키려 잘 조리된 가짜뉴스는 진실보단 감정에 호소하면서 ‘내 편’이 되어 달라 외치고 ‘우리’의 경계를 쌓는다.

 

그 넘쳐나는 정보를 다 소화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끼리 모여 이야기할 수 있는 플랫폼을 찾고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을 골라 받아들인다. 무엇이 진실인지 분별하기 너무도 힘든 지금은 진실을 좇아 공부하기 보다는 진실을 따르지 않겠다고 포기하거나,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을 만들어 그에 맞는 정보만 수용하는 것이 편하다.

 

 

 

취약성으로 탈진실에 맞서기

- 박민정, 「행복의 과학」 (2017) / 『릿터』 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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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정 작가의 「행복의 과학」에서 기노시타 류는 일본 유토리의 역사의식이 피해 의식과 죄책감,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며, 그런 유약한 방식이 아닌 ‘제대로 된 공부’를 하고자 ‘행복의 과학’에 입교한다.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한국인 여성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이 범죄자의 아들임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허윤 평론가는 『릿터』 23호에서 “(기노시타 류는) 유약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역사를 제대로 공부했고, 그 결과 ‘범죄자의 아들’이라는 위치를 획득했지만, 오히려 역사적 진실에 다가섰다.”며, ‘제대로 공부’하겠다던 류가 얻은 것은 자신의 취약성뿐이지만, 그 취약성으로 인해 타자와 연대하고 탈진실에 맞설 수 있었다고 말한다.


  

“강한 민족, 자랑스러운 국사, 자부심을 주는 기억에는 없는 취약함이, 행복의 과학을 포기하고 남은 취약성이 우리를 역사적 진실에 다가가게 한다. 그러니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 허윤, 「제대로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릿터』 23호, p.50


 

공부를 한다고 해서 온전한 진실에 이를 수 있다거나, 완전무결해질 수는 없을 것이다. 완전무결은 고사하고 나의 무지, 혹은 나의 약함만 늘려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깨달음으로써 나와 타인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다면, 그렇게 다른 이들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함께 서서 탈진실에 맞설 수 있다면, 공부해야 한다.

 

 

 

상처받을 준비를 한 채 서로에게 닿으려는 노력

- 윤이형, 『붕대 감기』 (2020)


 

하지만 연대의 과정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윤이형의 『붕대 감기』에서는 여성으로서의 억압과 차별에 맞서는 다양한 여성이 등장한다.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연대하리라 짐작했건만, 각자의 방식으로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여성들은 분열을 겪고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다.

 

『붕대 감기』에는 페미니즘을 옹호하지만 자신의 직업인 미용에도 자부심이 있어 혼란을 겪는 ‘지현’이나, 페미니즘의 의의에 공감하지만 기혼 여성인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이 두려운 ‘진경’, 젊은 세대의 올바름에 뒤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자기 자신을 검열하며 말을 잃어가는 ‘세연’ 등이 있다. 혼인 여부, 경제적 상황 등에 따라 모두 다른 층위에 있는 이 여성들은 페미니즘을 접한 후에 겪게 되는 혼란과 두려움, 미묘한 감정들, 그리고 어떤 것이 ‘진짜 페미니즘’이냐를 두고 빈번하게 논쟁이 벌어지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윤이형 작가는 이 모든 여성들이 서로 싸우고 화내고 대화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결국에는 서로 다른 위치에 있다고 비난하고 미워하기보단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도, 상처받을 준비를 한 채 서로에게 계속 닿으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다가, 무언가를 하니까 또다시 당신은 자격이 없다고 비난하는 건 연대가 아니야. 그건 그냥 미움이야. 가진 것이 다르고 서 있는 위치가 다르다고 해서 계속 밀어내고 비난하기만 하면 어떻게 다른 사람과 이어질 수 있어?"

 

같아지겠다는 게 아니고 상처받을 준비가 됐다는 거야, 진경이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들이 아니고 너한테는, 나는 상처받고, 배울 준비가 됐다고! 네 생각이 어떤지 궁금하다고. … 나는 바보 같은 말을 하면서 견딜 거야. … 모두가 올바르고 심각하고 훌륭한 말들만 하게 돼서 여유라곤 하나도 없어 보이는 이 끔찍한 세상한테, 계속 같이 놀자고 멍청한 소리를 하고 헛발질을 할 거야. 난 바보고 멍청이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자꾸만 화를 내나 봐.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나서서 싸우고 있는데 너는 그렇게 한가하냐고 자꾸만 물어보나 봐. 하지만 미안해, 이게 나야.”



제대로 공부해서 옳은 말만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싸여 예전과 같이 농담 섞인 글을 쓸 수 없고, 결국은 아예 글을 쓰지 못하게 된 세연에게 진경은 상처받을 준비가 되었다며, 바보 같은 말을 하면서 견디겠다고 말한다. 바보 같은 말을 하게 되어 누군가 지적을 하더라도 기꺼이 상처받을 준비가 된 진경은 계속 말하고 상처받으면서 성장할 것이다. 그런 성장의 과정을 외면한 채 곧바로 완벽해지라, 모두 같은 계단으로 올라서라고 스스로, 혹은 타인을 재촉해선 안 된다. 나와 같지 않다고 누군가를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말하거나 말을 빼앗아버린다면 그 사람은 아예 성장할 가능성을 잃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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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당연하게도 하나로 호명될 수 없는, 복수의 존재다. 그래서 모두 같아질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손을 잡으려면 서로 다치고 깨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상처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너의 그 단호함을. 너의 편협함까지도.' 이해하면서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상처투성이가 되더라도 서로 붕대를 감아주면서 손을 잡고 함께 가야 한다.

 

심진경 평론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짜 페미니즘'에 대한 대의명분에서 벗어나, 진짜인지 가짜인지 재단하지 않는, 각자의 복잡한 경험이나 개별 특성을 인정하는”, “'모순이 공존하는, 잡종적인, 오염된 페미니즘'”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여성 연대는 “비연대처럼 보이는 어떤 것”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

 

나 또한 공부한다고 진실에 닿을 수 없음을, 탈진실에 맞서기는커녕 타인과의 연대도 쉽지 않음을 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다고 입을 닫고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한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 여전히 두렵고, 또 누군가가 나에게 줄 상처가 아프고 쓰릴 것 같아 두렵지만, 기꺼이 나는 ‘바보 같은 말’들을 하며 견딜 것이다.

 

 

 

어쨌든, 사랑해

- 연극 <렁스>


 

그 견디는 순간들은 분명 괴롭고 힘들 것이다. 그렇게 견디고 공부해봤자 내 눈에는 나의 무지가, 나의 이기심이 계속해서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래서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 것이다. 어차피 ‘진실’에는 영원히 닿지 못할 걸 다 알면서 왜 이렇게 고생하나 싶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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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렁스>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렁스>의 남자와 여자는 아무런 무대 장치도 없는 흰 단 위에서, 소품과 음악도 최소화한 채 100분 내내 끊임없이 대화한다. 숨이 넘어갈 정도로 많은 텍스트를 내뱉는 여자와 남자의 대화는 모두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말들이다. ‘좋은 사람’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행위의 의미를, 우리가 살면서 배출하는 탄소 발자국에 대해 질문하고 또 질문한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사랑과 인생은 생각만큼 ‘좋게’ 흘러가지 않는다. 여자는 피곤할 정도로 많은 말을 늘어놓으며 남자를 쏘아붙이다가 어떤 때는 남자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여자는 이기적인 행동을 하고, 비이성적인 말을 하기도 한다. 남자는 유산의 슬픔에 빠진 여자를 두고 다른 여자와 키스를 한다. 그렇게 여자와 헤어져 놓고 우유부단하게 굴다가 약혼자가 있는데도 다시 여자에게 돌아가 임신을 하고 함께 산다.

 

분명 ‘좋은 사람’이 되고자 애쓰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삶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계속 싸우고, 상처받고, 너무나 엉망진창이라 보면서 실소가 터져 나온다. 아이를 낳고 이산화탄소를 내뱉으며 살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은 절대 그들이 지구에 끼친 피해를 상쇄할 만큼 지구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노력에 비해 두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기 보단 그저 어리석고 나약한 존재 같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숲을 만들 것이라 다짐한다. 그토록 서로에게 상처를 줬지만, 인생의 마지막 발자취에서 둘 사이에는 ‘어쨌든 사랑’한다는 말이 남는다.

 

무대 위의 남자와 여자를 보며 스스로 ‘나는 좋은 사람인가?’ 묻는다. 아닌 것 같다. 나도 저 사람들과 똑같다. 어쩌면 인간은 다 그런 존재인 것 같다. 서로 상처를 주면서도 사랑한다며 함께 걷고, 한평생 아둔한 행동을 하며 아수라장 같은 삶을 살면서도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어리석고 모순적인 존재.


 

“우린 좋은 사람들일까? 이런 질문이 우릴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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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공부를 해봤자 얻는 것은 나의 무지요, 타인과의 연대는 어려우며, 결국은 끊임없이 바보 같은 말과 행동을 하며 죽을 것이다. ‘공부 좀 했다’는 말은 영원히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나의 결말을 안다. 죽을 줄 알면서도 빛을 향해 덤벼드는 나약한 하루살이 같은 인생이지만, 이룰 수 없다는 끝을 알면서 진실을 좇는다는 것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나는 점점 더 많은 상처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어리석은 존재가 되기 위해 책을 읽고, 공연을 보고, 공부할 것이다. 그러면 이런 책과 공연들이 위로를 건네겠지. 나에게는 조금의 사랑과 낭만이 남겠지. 그걸로 만족한다.

 

 



[정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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