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1. 스타트업의 기쁨과 슬픔

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창비)
글 입력 2020.06.13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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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스타트업은 어때?"

"음... 비슷하지 뭐. 일하고. 퇴근하고."


사람들에게 제일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인데,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정말 잘 모르겠다. 결국 저렇게 뻔한 답변만 남겨버린다. 다른 회사를 다녀보지 않았으니 비교해 볼 수 있는 면도 없고, 사실 그리 오래 다니지도 않았다.


게다가 스타트업은 또 스타트업끼리 얼마나 다른가. 대표의 한 마디에 좌지우지되는 곳도 있고, 수평적인 곳도 있을 것이고, 자본력도 인력도 각기 다르다. 이 많은 종류의 기업을 우리는 신생이라는 이유로 '스타트업'이라고 부른다. 참 쉽고 간편한 이름이고, 성의 없는 이름인 것 같다.


그래도 스타트업들는 나름대로 공유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물리적으로는 위워크나 패스트파이브 같은 공유 오피스에서 일한다는 것, 따라서 구내식당 따위는 없으므로 3-4개 정도의 식당을 번갈아 가며 제육볶음을 먹거나, 맵고 짠 음식에 질려 삼삼오오 모여 샐러드를 먹는다는 것. 감정적으로는 우리는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재미 혹은 좌절감 같은 것들이다. 안 가본 길은 선례가 없어 두렵고 좌절스러우며, 흥미롭고 도전 의식을 자극한다.


차라리 아까의 질문을 이렇게 바꾸면 편하겠다.

"너는 너희 회사 어떤 것 같아?"


나는 우리 회사에서 하는 일이 잘 맞는 것 같다. 아마도, 말이다. 빠르게 바뀌는 업무 환경, 도전 의식을 자극하는 시장 상황, 대부분의 열심히 일하고 똑똑한 사람들 속에서 나는 계속 자리 잡기 위해 노력하고 '믿을 수 있는 동료'가 되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신뢰를 얻는 것은 생초짜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에선 열심히 일한다고 되는 건 없다. 결국은 결과로 보여주어야 하고, 그 결과는 실수가 0건인 것이든 매출이 2200% 상승하는 것이든 숫자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상황도 쉽지 않다.

 

 

샐러드.PNG

 

 

한때 샐러드를 먹겠다고 점심을 혼자 먹은 적이 있는데, 미리 샐러드를 시켜놓으니 건강해지는 기분도 들고 돈도 굳는다는 장점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밖에도 그냥 잠깐이나마 혼자 있고 싶었기 때문도 있었다. 대부분의 상황은 스트레스가 되지만 그 안에서 드물게나마 반짝하며 빛나는 성취감이라든지 도전 의식 같은 것들의 힘은 무척 강력해서 다시 그 순간을 바라보며 계속 일을 하도록 만드는 것 같다. 그리고 작지만 소중하게 꼬박꼬박 매달 들어오는 월급도.

 

*

안나 카레니나.jpg

 

위의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의 기쁨이라면,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슬픔이다. 소설가들이 꼽는 최고의 소설 중 하나라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그 살벌하게 긴 길이 만큼이나 첫 문장이 유명하다. Happy families are all alike; every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만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문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행복도 불행도 사람 사는 모양새는 대개 비슷해서 통계적으로 분명 카테고리화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돈이 없어 점심을 굶는 일은 가난과 배고픔으로 인한 불행이고, 구직이 어려워서 겪는 불행은 가난과 자아실현의 어려움으로 인한 불행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거의 대부분의 경험과 감정은 카테고리화할 수 있다. 어떤 카테고리들의 조합인지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이 문장에 감동하고 밑줄을 긋는 이유는, 나의 불행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자신만 겪는 일 같고 그렇기에 특별하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지'라는 말을 뒤엎으며 저 문장에 공감하는 우리가 보여주는 진실은, 그만큼 나의 비극이 정말 참을 수 없이,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비이성적인 감정에 휩싸이게 할 만큼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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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은 금요일 퇴근 후 들린 서점에서 만난 책이었다. 무난한 한 주였지만 금요일 저녁은 어딘가 진이 빠지는 경향이 있다. 핑크색 표지의 소설집을 집어들은 이유는 제목 때문이었다. '일의 기쁨과 슬픔'. 내가 가장 많이 경험하는 감정이었다.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은 '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에 대한 알랭 드 보통의 르포 에세이 [일의 기쁨과 슬픔]과 동명의 작품이다. 실제로도 거기서 제목을 따왔다고 한다. 총 8편의 단편 소설들이 실려있는 이 작품에서는 일하고 있는 여성이 등장하며, 인생에서 맛보는 달콤함과 짭짤함이 고루 실려 있다. 각 단편 안 인물들의 성격도 처한 상황도 각자 다르지만 모두 저마다의 삶에서 소소하고 치열하게 일하며 사는 여성들이다.

 

각각의 단편이 통통 튀고 기억에 남는다. 단편 소설에서 모든 이야기 속의 인물들을 기억에 심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데, 이 소설의 인물들은 방금 이야기를 들은 사람처럼 기억에 남는다. 아주 구체적이고 선명하고 현실적인 인물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능력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단편은 표제작 <일의 기쁨과 슬픔>이다. 작가의 등단작이자, 2018년 창비신인문학상을 작가에게 안겨주며 창비 문학사에는 서버 폭발의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안겨준 작품이다. 누적 조회수 40만 건을 초과한 이 단편은 '스타트업 괴담'으로 한국의 스타트업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간단히 이야기를 추리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월급을 포인트로 받은 여자(거북이알)와 그 여자가 매일 이용하는 중고장터 앱을 만드는 여자(안나)가 만나는 이야기다.

 

거북이알은 회장의 눈에 거슬렸다는 이유로 월급을 카드 포인트로 받는 카드사 차장이다. 거북이알은 아득하게 많은 카드 포인트를 보며 절망했지만, 이 카드 포인트로 물건들을 사서 중고장터에서 판매하며 이를 현금화한다. 중고장터 앱(우동마켓)을 만드는 안나는 스타트업에 다닌다. 아침마다 간단히 일 진행 상황을 공유하는 '스크럼'은 이 스타트업에서는 대표가 말을 하는 데에만 30분이 걸리는 시간이 된다. 어느 날 대표는 안나에게 이 앱의 헤비 유저 거북이알을 인터뷰하라는 미션을 내린다. 그렇게 두 사람이 만나며, 일의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는 것이다.

 

안나는 우동마켓에서 일하며 대부분은 살짝의 짜증에 가까운 슬픔을 느낀다. 30분 넘게 이어지는 스크럼, 이미 고친 줄 알았던 버그가 고쳐지지 않아서 개발자 케빈에게 껄끄러운 요청을 다시 해야하는 일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거북이알이 우동마켓의 한 기능을 칭찬하자 자신이 만든 기능이라고 떠올리며, 곧 다가올 연차를 계획하며 설레한다. 이런 작은 일의 기쁨과 슬픔 속에서 안나는 일상을 계속해나가는 것이다. 일상에 자잘한 슬픔을 느끼고 그 속에서도 일로 인해 기쁨을 얻는 안나를 보며 자연스럽게 나를 떠올렸다. 동료의 질타 섞인 한숨에 와락하고 울어본 적이 있다는 것에서도.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아래의 대목이다.

 

거북이알을 만나고 돌아온 안나는, 다소 사이가 껄끄럽고 분명히 서먹했던 개발자 케빈에게 그가 좋아하는 최신 레고를 선물한다. 그리고 아래의 말을 덧붙인다.

 

 

"코드를 좀 멀리서 보면 어때요?"

케빈이 말없이 나를 올려다봤다.

"자기가 짠 코드랑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덧붙였다.

"버그는, 그냥 버그죠. 버그가 케빈을 갉아먹는 건 아니니까."

 

 

그래, 버그는 그냥 버그다. 버그가 나를 갉아먹는 것은 아니다. 일과 나를, 일에서 발생한 오류와 나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일을 하며 순간적으로 머리가 띵할 만큼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떠올려보는 말이다. 솔직히 스스로가 정정당당하지 않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내가 만든 문제에서 벗어나려고 하다니, 나는 비겁한 사람인가? 하지만 이건 비겁함의 문제가 아니라고 나를 위로한다. 나와 그 문제를 동일시하지 않음으로써 나는 문제를 해결할 힘을 얻는 셈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평균 하루 8시간 동안 일한다. 출퇴근 시간까지 포함하면 하루 24시간을 사는 인간의 삶에서 1/3이 넘는 시간은 일과 관련되어 쓰이는 셈이다. 주말까지 슬라이드를 고치고 메일에 답장했던 오늘 같은 날들까지 포함한다면 더 많이. 이렇게나 많은 시간이 나의 자존감을 깎아 먹는 데만 쓰이는 걸 용납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하는 일로도 가치 있는 사람이지만 그 외에도 가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일은, 그냥 일이다. 나는 그 일로 인해 기뻐하고 슬퍼하고 흥분하고 좌절하지만, 일은 그냥 일이다. 나는 그렇게 매일 슬퍼하고 기뻐하며 김나연의 스타트업 기쁨과 슬픔 편을 계속 찍어 나간다. 돌아보았을 때 결국 성장으로 인한 기쁨이 더 크길 바란다. 그러니 다음 주도 출근해야지. 곧 이곳에서 일한 지도 1년이 된다.

 

 



[김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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