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성공이 필수는 아니잖아요 [영화]

글 입력 2020.06.07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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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란 무엇인가. 꿈을 꾸는 사람 중에서 그 꿈을 이루는 사람은 불과 5%에 불과하다고 하다. 이루는 것 자체가 5%이지 그 꿈에서 성공이 따른다는 보장은 없다. 나머지 95%의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꿈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꿈을 이루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일까. 아니면 그 꿈을 향하는 과정이 중요한 것일까. 우리는 성공이라는 키워드 속에서 그 과정을 잊어버리곤 한다. 결과에만 취중 되어 꿈을 향해 나아가는 도중에 포기한 이들에게는 관심 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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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랭크’는 꿈을 이루는 것보다 그 과정을 걸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담아낸다. 누군가는 실패했다고, 포기하라고 말할 수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저 실패이든 아니든 그들의 노래가 너무나도 행복해 보인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음악 영화다. 보통의 음악 영화는 ‘성장’, ‘성공’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는 꿈을 이룬다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어쩌면 영화계의 룰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룰이 나쁘다는 것이 아닌, 그저 그런 이야기의 영화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예시로 영화 ‘원스’의 주인공처럼 앨범 발매가 성공하고, 영화 ‘라라랜드’처럼 유명 배우, 재즈바 사장이 되면서 성공을 이야기한다. 처절한 노력을 했으니 그 노력의 끝에 성공이 당연한 결과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룰을 따르지 않는다. 어쩌면 영화란 환상 속에서 사유하는 감독이 아닌 현실과 타협하는 감독이다.

 

현실은 그리 아름답지 않으며, 노력이 항상 성공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님을 아는 것이다. ‘소론프르프브스’ 밴드가 성공이 아닌 실패를 노래하면서 그들을 실패했다는 것에 좌절감의 눈물이 아닌 그저 노래함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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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k’는 자유로운, 솔직한이란 의미가 있다. 영화 중반에서도 프랭크는 존에게 거짓은 싫다고 말한다.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 말이다. 그 순간 프랭크의 탈을 클로즈업으로 비추면서 그 말이 모순되는 것을 비꼰다. 하지만 영화의 엔딩까지 보게 되면 그 탈은 그저 그 사람 자체임을 알 수 있다. 탈을 쓴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모습 자체를 인정해줄 사람을 찾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존은 프랭크를 만났을 때부터 그가 왜 가면을 쓰는지를 궁금해했다면 그 밴드 사람들은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그가 그런 사람일 뿐이다. 존은 표정으로 마음을 알 수 있다면서 그에게 그의 표정을 설명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그 밴드에 사람들은 그 말조차 불편해한다. 이는 그 내면의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임을 강조하는 장치로써 사용된다.

 

가면이 모두 부서지고, 맨 얼굴의 그는 존의 생각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어려운 서사가 있으리라 생각하였지만, 자신보다 더 평범함(?) 사람인 것이다. 평범한 가족에서 사랑받으며 큰 사람에 불과했다. 존은 그저 그 사람인 프랭크에 또다시 가면 씌운 것은 아닌가. 특이하고 범접할 수 없으며 자신의 우상으로 만들어서 그 사람이 가면을 써야 하는 이유의 타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프랭크의 가면은 그 자체였지만, 사람들이 특이한 사람에게 호명된 이름, 이미지이기도 하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가 흔히 불운의 천재라고 칭하는 예술가들에게 그들의 예술에 삶의 고뇌를 더 해서 그 작품의 가치를 더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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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도 마찬가지 아닐까. 던은 프랭크의 음악이 완성되고 자살을 하게 된다. 그가 마지막에 마신 술은 ‘최후의 만찬’이란 작품이 떠오르기까지 한다. 자신의 최후를 알고 있는 던은 자신은 프랭크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그도 그것을 알기에 존에게 그처럼 될 수 없다고 설명한다.

 

던은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 않는 이유도 자신은 프랭크가 될 수 없음을 인지한 결과다. 이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선망했다. 위대함, 범접할 수 없음으로 표상되는 가면을 씀으로 자신의 최후의 순간이라도 위대한 음악가로 남고 싶었던 던이다. 어쩌면 이를 이뤘다고 할 수도 있겠다. 프랭크가 인정한 최고의 피아니스트니 말이다.

 

영화의 엔딩에서 프랭크 가면 없이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것은 가면이 있든 없든 그 사람 자체를 인정해준 이들이기에 하루에 협주가 가능한 것이었으며,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 할 수도 없는 존은 그들을 떠나게 된다.

 

프랭크는 앞으로 무대에 오를까. 혹은 올라간다고 해도 가면을 쓰고 올라갈까. 내가 본 프랭크는 다시 가면을 쓰고 무대에 오를 것이다. 자신의 사람들에게는 본 모습을 보였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아직 소극적인 사람이다. 프랭크는 노래를 통해서 자신을 발견했다기보다는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 낸 것이다.

 

영화의 엔딩에서 보여주는 ‘I love you all’이란 노래는 그들이 성공하지 못했음에 눈물 흘리는 것이 아닌 너희들을 사랑할 수 있어서 다행임을 표현하는 곡인 것처럼 보인다. 이 곡을 통해서 어쩌면 이 작품은 ‘성공’은 꿈을 이룬다는 의미가 아닌, 자신이 이룰 수 없는 꿈에 누군가 함께 한다는 것 그 자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어떤 식으로 해석해도 다른 영화와 차별성을 이루는 것은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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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성공은 꿈이란 환상을 극대화한다. 5%에 속한 이들의 모습만을 비추면서 마치 꿈을 이루지 못한 95%에 속하는 나는 더욱 비참한 위치에 놓인다. 음악 영화 속의 음악을 다시 부르면서 기쁘다가도 그들의 성공에 막상 나의 실패와 마주한다. 하지만 영화 ‘프랭크’를 보면 나의 실패에도 그 노력 자체가 중요했으니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것 같다.

 

영화 엔딩의 ‘I Love You all’은 단순히 프랭크의 밴드에만 보내는 메시지가 아닌, 이 영화를 보는 꿈을 포기한 95%이든 5%이든 너는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박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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