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 명의 주인, 네 개의 이름 - '환상의 마로나' [영화]

글 입력 2020.06.0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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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나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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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마로나>의 주인공인 강아지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아홉? 아나? 사라? 마로나? 영화를 통해 각각의 이름으로서 살아온 삶을 보았기에 고민이 되지만, 편의상 마지막 이름인 마로나라고 부르겠다.

 

일생에서 세 명의 인간 주인과 네 개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던 마로나. 마로나의 삶은 인간 주인이 바뀔 때마다 손바닥 뒤집듯 바뀌게 된다.


 

인간은 늘 새로운 것을 원한다.

개에게 행복이란 인간과 반대다.

지금 그대로가 제일 행복하다.

 

 

마로나는 변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거대한 세상에서 자기만의 인간 주인과 보금자리를 갖고, 그 주인과 함께하는 것을 행복하게 여긴다.

 

사실 생각해보면, 애완동물로 길러지는 강아지의 일생에 아주 다양한 사건이나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인간에 비해서는. 강아지의 일상과 일생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은 인간 주인일 것이다.

 

마로나는, 인간 주인들을 사랑했다. 그저 함께라서 행복하다니. 마로나를 보며 나는 행복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행복이 작은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헤어짐과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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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나의 주인이 바뀐다는 내용을 미리 알고 가서 주인들이 강아지를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일까봐 걱정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다행히 마로나의 주인들은 모두 강아지를 아꼈다.

 

그렇지만 강아지를 외롭게 둘 때가 있는 건 매한가지였다. 강아지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저렇게 좋은 주인들조차도 강아지를 자기 삶의 부속으로 생각할 때가 많은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인간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의 삶을 살고 일을 할 때 강아지는 외롭다.

 

첫 인간 주인인 곡예사 마놀과 마로나가 헤어진 것은 마로나가 스스로 그의 행복을 위해 떠났기 때문이다. 유명 서커스단인 ‘달의 서커스’에서 마놀을 원하지만 강아지는 원하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에, 고민하고 슬퍼하는 그의 모습을 보기 싫어서 마로나가 먼저 그를 떠난다.

 

두 번째 주인은 건설업자 이스트반이었다. 그는 마로나를 ‘사라’라고 부르며 굉장히 아꼈다. 하지만 그의 동거인이 점점 강아지를 싫어하게 되면서 마로나는 버려진다. 마로나는 버려지고도 그저 이스트반이 이별에 잘 대처하기를 바란다.

 

마로나는 점점 헤어짐의 냄새를 알게 된다. 그것이 썩은 낙엽 냄새라고 말한다.

 

마로나는 점점 자신을 뭐라 부르든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마로나의 첫 이름처럼, 자신은 ‘아홉’이라고 말한다. 가끔 마로나는 엄마와 형제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과 함께 있었던 시간을 떠올린다.

 

그 시간을 종종 잊을 만큼 마로나는 인간 주인과 함께 하는 시간을 사랑했지만, 한곳에 오래 정착하지 못하고 헤매야 하는 마로나가 너무 가여웠다.

 


 

동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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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상에서 인간과 강아지의 처지는 많이 다르다. 인간은 자기 삶을 본인의 의지로 결정짓고 개척하기가 더 쉽다.

 

나는 사랑받는 강아지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밥 먹고, 자고, 놀고. 그러나 자기 삶을 마음대로 결정짓기 힘들다는 건 얼마나 무력해지는 일인지 실감하게 된다.

 

또한, 나도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가끔 있다. 동물을 무서워해서 자주 그러는 건 아니지만. 근데 그 바람이 온전히 그들을 위한 것이었는지는 사실 모르겠다. 나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라는 이유가 가장 컸던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서 잠시나마 했던 그런 생각들이 너무 후회스러웠다.

 

동물을 키우려면, 그들을 온전히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려는 각오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내가 동물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지만, 이 영화를 통해 마로나의 눈에 보이는 세상과 마로나가 하는 생각들을 마주하고 나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정말 나는 강아지의 삶의 가치에 비할 정도로 그들의 존재를 정말 무겁고 진지하게 생각했던 게 맞나?

 

지금도 강아지를 키우는 일을 가볍게 생각했다가 그들을 버리는 주인들이 많다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래서 내가 만약에 동물을 키우게 된다면, 정말 신중하고 충분한 준비를 한 후 그들을 받아들여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환상의 마로나>는 강아지의 시선, 강아지의 생각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던 작품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강아지를 챙기고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말 그들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많은 강아지들이 마로나처럼 헤어짐에 익숙해져 있을까 봐 겁이 난다. ‘행복은 고통으로 가는 징검다리’라고 말하는 마로나의 모습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마로나는 분명히 행복을 아는 강아지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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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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