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서구화된 불교 통념에 세워진 이정표 - 도서 '불교란 무엇이 아닌가'

글 입력 2020.06.0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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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로벌` 현대사회에서 불교 철학 읽기


 

해방 이후 국내의 학문 전통이 서양철학 중심으로 굳어지게 되면서, 현대인이 동양철학을 접할 기회는 흔치 않은 편이다. 내가 접한 동양철학은 일반적으로 서양철학의 주변에 머물렀으며,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는 지인들이 소개하는 철학자들은 대부분 서양인이었다. 심지어 그중 일부는 서양철학이 동양철학보다 더 우월하다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다.

 

부끄럽지만,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곰 인형을 테디베어라고 부르고, 철학이라는 단어를 philosophy로 설명하는 사람 중 하나다. 이런 나의 취향에 변명을 좀 해보자면, 우리 세대에서 제사상이나 주변 어른들의 사상에서 느껴지는 유교문화의 지긋지긋함을 견디는 것보다 왜곡된 취향을 가지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자기고백으로 글을 시작하게 된 것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와 그에 대한 자각이 앞서 기술한 서구 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불교 철학에 관심을 두게 된 것도 이러한 맥락의 연장에 있었다. 불교 철학에 본격적인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쇼펜하우의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고 나서였다. 쇼펜하우어는 `맹목적이고 비인격적인 의지의 추동으로 흔들리는 삶에서도 정신적인 자유를 추구하라`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쇼펜하우어의 주장은 당시 내가 이것저것 기워 맞춘 불교철학과 놀랍도록 일치했다. 쇼펜하우어가 설명하는 세계는 근본적으로 삶을 고통으로 정의하는 불교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찾아보니 이런 의견은 나만의 감상은 아니고,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은 많은 서구인도 그렇게 느낀듯하다.

 

좌우간 서구에 소개된 쇼펜하우어 철학은 `불교 철학의 소개자` 중 하나였고, 유럽의 몇몇 학자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불교와 동일시되어 `불교적 염세주의`라는 개념이 정착되기도 했다. 하지만 엄밀하게 비교하자면, 쇼펜하우어와 불교 철학은 분명하게 비교된다. 두 사상은 끊임없이 세워졌다 무너지는 모래성 같은 삶에서 `무아의 경지`를 지향하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두 사상은 분명히 구분된다.

 

예를 들어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모든 행위는 타고난 성격과 동기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의지는 없다고 보며, 이성에 의해 의지를 부정하여 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불교는 인간이 업의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자기 생각과 의지, 행위의 근본 성격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고, 쇼펜하우어가 추구한 본질주의를 넘어선 반본질주의적 이해를 추구한다. *

 

사실 실제 이들의 차이가 어떻건, 쇼펜하우어로 시작된 관심은 불교를 하나의 종교라기보다 하나의 정신적 추구로서 자리 잡았다. 그 결과로 나는 이 책의 도발적인 질문에 도달했다. "불교란 무엇이 아닌가?".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질문이었다.

 

 

 

2. 서구화된 불교에 새로운 이정표 세우기


 


“불교는 허무의 종교인가?”

“불교는 환생을 가르친다?”

“불교는 철학이지 종교가 아니다?”

"불교는 모든 것이 무상하다고 가르치는가?"


 

책을 읽기 전, 목차만 보고서 나는 이 책이 꽤 읽기 쉬운 책일 것으로 생각했다. 위의 질문에 답을 해보자면, 나는 불교가 쇼펜하우어와 같은 허무의 종교이며, 업을 중심으로 환생을 주장하며, 종교라기보다는 하나의 수양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같이 특별히 불교를 따로 공부하지 않았던 독자라면, 이와 비슷한 대답이 나왔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 베르나르 포르는 선불교 연구의 권위자로서, “우리가 불교에 대해 갖고 있는 지식이 19세기에 비해서는 상당히 진보했음은 자명하나, 여전히 특정한 관습적 사고 속에 사로잡혀, 문제제기와 질문의 범위가 늘 같은 영역 안에서 맴돌고”있기에 이러한 책을 썼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는 자칫 불교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통념들 중 하나로 고정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반문의 형식으로 불교의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것이다. 저자는 “불교의 경우, 이러한 단순화의 시도가 종종 도를 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렇게 단순화된 부분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불교가 무엇인지에 관한 수많은 서적들이 시중에 나와 있으며, 그 책들은 각기 나름대로 ‘불교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본인은 이 책을 통해 기존의 책들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무엇이 불교가 아닌지’를 설명하려고 한다.” 설명했다.

 

저자의 서문대로, 책은 통념에 관해 기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좀 더 명확히 말하자면, 역사, 토착문화, 사회에서 대중들이 가질 수 있는 불교의 통념을 교정한다. 통념으로 이루어진 질문을 목차로 제공한 것은 책의 맥락을 잡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런 목차를 통해 우선, 우리가 어떤 통념을 가졌는지 확인할 수 있고, 그런 통념에 어떤 전제와 오류가 존재하는지 저자의 자세한 설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각 질문에 들어가면서 제시되는 문구들은 각 통념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거나, 적절히 요약하고 있어 각 문단을 읽은 후 다시 보게 되는 재미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통념을 지적하는 책의 형식에서 정체 모를 부끄러운 감정을 느꼈다. 내가 부끄러웠던 것은, 아마 책을 읽으면서 점차 내가 19세기 서구의 오리엔탈리스트들의 태도와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나의 감정은 12장인 <불교는 하나의 정신적 추구인가?>에서 극을 달했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하나의 정신적 추구로서의 불교가 서구인에게 가지는 매력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기존 종교적 믿음이나 사상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불교는 오리엔탈리스트들이 만들어낸 `변형된 개신교`일 뿐이다. 저자의 말대로 살아있는 전통으로서의 불교는 유기체적 전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사실 저자가 책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강조하는 것이, 앞서 언급한 유기체적 전체로서의 불교, 즉 `불교가 가질 수 있는 다양성에 대한 이해`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대안신념으로서 두드러지는 불교는 만인에게 깨달음의 기회를 주는 더 자유로운 정신적 추구로만 이해된다. 물론 그런 방식으로`도` 불교 철학을 받아들일 순 있다. 하지만 그것이 불교 전부는 아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불교 철학을 서구철학의 하나의 대안신념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이해하는 것 자체도 다소 오만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은 이처럼 우리의 통념이 고정화하는 것, 그리하여 불교를 가능하게 한 사회적 배경이나 역사, 또 불교 전통을 풍성하게 만든 여러 요소는 쏙 빠뜨린 채 불교의 ‘정신’만 남기는 것을 경계한다. ‘불교’가 생겨난 2500여 년 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불교는 한 번도 한 가지 모습으로만 존재한 적은 없었다. 인도에서 태어난 불교는 인도의 토착문화였던 힌두교와 섞이기도 했고, 한반도로 들어왔을 때는 우리 고유의 무속과 섞이기도 했으며, 일본에서는 장례불교로 발달하기도 했다.

 

서구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불교 철학은 유행을 타고 있다. 명상이나 설법은 좀 더 대중적인 형태로 소비되고 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세상에는 많은 것들이 예쁜 포장지에 싸여서 쏟아져나오고 있다. 재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어떤 것들은 형태의 변화를 강요받고, 어떤 것들은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고전의 가치를 잃어버리면, 우리는 우리의 선조가 일구어온 위대한 전통을 잃어버리게 된다. 인류의 문명에 있어 그것은 굉장히 아쉬운 일이다. 저자는 소비되는 불교를 넘어 새로운 불교로 나아갈 것을 주장하고 있다.

 


 

3. 더 복잡하고 완전해진 불교


 

사실, 통념을 지적하는 이 책은 불교를 간단히 이해하는 `입문서`는 아니다. 굳이 책의 난이도를 지정해보자면, 통념을 하나하나 지워가는 `초급서`다.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책이 `입문서`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첫 번째로는, 기본적으로 책이 가지고 있는 난이도다. 책을 읽기 위해서 기본적인 개념 수준으로서 불교 이해가 있어야 하고, 여기에 서구의 불교 이해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좋다.

 

싯타르타 일대기나 아주 쉽게 풀어쓴 법화경 정도가 전부인 독자로서 말해보자면, 책이 마냥 쉽지는 않았다. 책의 초반에는 법, 무모순율과 같은 개념에 읽기를 멈추고 찾아봐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이 있었다. 몇몇 부분에서는 지면 상의 문제인지 자세한 기술이 되어 있지 않은 부분이 있다. 하지만 책의 중반부쯤이 되고 나니 전체적인 맥락이 잡히고, 친절히 개념이 설명된 부분이 많아 전 부분 보다는 읽기 쉬웠다. 요약하자면,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불친절하지는 않았다.

 

책이 입문서가 아닌 다른 두 번째 이유는, 이 책이 결코 명쾌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쉬운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기대했다면, 이 책을 읽은 후 약간 실망할 수 있다. 사실 저자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고려해보면 당연한 결과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불교가 어떻다"라고 이야기하는 대신, "어떤 불교는 그렇고, 우리는 어떤 점도 고려하여야 한다"라는 식의 세분화를 시도한다. 그래서 책을 모두 읽고 나면, 불교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는커녕 좀 더 복잡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책은 `불교를 이해하고 싶다`라는 마음만큼은 충분히 채워준다. 불교 철학만이 가진 몇 가지 메시지는 책을 읽은 후에도 계속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행위는 있으나 행위자나 행위의 주체는 없으며, 그 배후에는 어떤 영속적인 실체도 없으나, 사람들이 사는 이 세계 속에서 업은 실존한다는 역설적 이해가 돋보이는 설명과 사유 불가능한 실재의 본질을 제시하는 사구부정의 논리는 서구 철학에 절여진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런 충격은 내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불교의 이해로서는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게 이 책은 -실제로 입문서는 아닐지라 할지라도- 불교 철학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 `입문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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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부 역사 속의 불교

 

1_하나의 불교, 여러 개의 불교들? 16 / 2_붓다는 깨달음을 얻은 유일한 사람인가? 24 / 3_불교는 인도의 종교인가? 34 / 4_불교는 허무의 종교인가? 41 / 5_불교는 철학이지 종교가 아니다? 48 / 6_ 모든 불교 도들은 깨달음을 추구한다? 58 / 7_불교는 모든 것이 무상하다고 가르친다? 66 / 8_업에 대한 믿음은 숙명론에 이르게 한다? 74 / 9_불교는 자아의 존재를 부정한다? 81 / 10_불교는 환생을 가르친다? 86

 

2부 불교와 토착문화

 

11_불교는 무신론적 종교이다? 94 / 12_불교는 하나의 정신적 추구인가? 106 / 13_달라이 라마는 불교의 정신적 지도자이다? 113 / 14_불교 도가 된다는 것은 선 수행을 하는 것이다? 122

 

3부 불교와 사회

 

15_불교는 관용의 종교인가? 132 / 16_불교는 자비를 가르치는가? 140 / 17_불교는 평화의 종교인가? 145 / 18_불교는 모든 것이 평등하다고 가르친다? 154 / 19_불교는 과학과 양립할 수 있는가? 161 / 20_불교는 일종의 테라피이다? 173 / 21_불교는 엄격한 채식주의를 주장한다? 183 / 22_불교는 보편주의적 가르침인가? 189 / 23_불교는 승가 중심의 종교이다? 199

 

결론 _ 불교 혹은 새로운 불교? 211

 

 

 

주석


 

*(본 도서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이런 차이를 보는 것이 개인적으로 아주 재미있었기 때문에 내가 찾은 단서를 공유해 보려 한다. 쇼펜하우어의 이해에 대해서는 <불교는 허무의 종교인가?>에서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적혀있다. 또 두 철학의 직접적인 비교는 아니지만, 본질주의와 반본질주의 관련하여 <불교는 철학이지, 종교가 아니다>에서 읽을 수 있다.)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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