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늘도 청소하자 [사람]

글 입력 2020.06.01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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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새 집으로 이사했다. 이삿짐 싸면서 13년 동안 살던 방청소를 했다. 대학교 레포트, 학창시절 친구랑 주고받은 편지, 절반밖에 못 읽은 소설책, 등 미련 때문에 할 수 없이 갖고 있던 계륵과 같은 물건들을 과감히 버렸다. 정리정돈 전문가 곤도 마리에(Marie Kondo)가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철학을 따르고자 했다.

 

과거의 물건은 나의 흔적이다. 그래서 물건을 버린다는 것은 기억을 지우는 일이다. 그 물건과 관련된 사람과 장소를 삭제해버린다. 나와 특별한 관계를 맺었던 사물과의 이별, 즉 상실은 우리가 어떻게 감당해야할까? 여기서 엘리자베스 비숍(1911~1979)의 시 '한 가지 기술'이 떠오른다.


 

한 가지 기술

 

상실의 기술은 익히기는 어렵지 않다.

많은 것들이 본래부터 상실될 의도로 채워진 듯하니

그것들을 잃는다고 재앙은 아니다.

 

날마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라. 문 열쇠를 잃은 후의

당혹감, 무의미하게 허비한 시간들을 받아들이라.

상실의 기술을 익히기는 어렵지 않다.

 

그리고 더 많이, 더 빨리 잃는 연습을 하라.

장소들, 이름들, 여행하려 했던 곳들을

그것들을 잃는다고 재앙이 오지는 않는다.

 

나는 어머니의 시계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보라!

내가 좋아했던 세 집 중 마지막 집, 아니 마지막에서 두 번째 집도 잃었다.

상실의 기술을 익히기는 어렵지 않다.

 

두 도시도 잃었다. 멋진 도시들을. 그리고 내가 소유했던

더 광대한 영토, 두 강과 하나의 대륙을 잃었다.

그것들이 그립긴 하지만 재앙은 아니었다.

 

당신을 잃는 것조차, 나는 솔직히 말해야 하리라,

분명 상실의 기술을 익히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그것이 당장은 재앙처럼 보일지라도.

 


우리는 작은 열쇠도 잃어버리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이라는 상실도 겪지만 이 모든 것들은 어렵지 않다고 표현한다. 그녀가 이런 상실의 기술을 재앙이 아니라며 ‘쉽게’ 받아들인다.


나는 청소하면서 방 안에 이십여년전에 쓰던 학교 노트가 먼지 쌓인 채 발견되었을 때, 이는 나를 초등학교 그 시절로 던져놓았다. 그 때 그 담임 선생님, 짝꿍, 학교 운동장... 한동안 잊고 있던 그 때의 기억을 잠시 머금고 있다가 더 이상 나와 함께 할 의무가 없어보여서 그 노트를 분리수거함에 버렸다.


나는 청소하면서 기억을 끄집어내고 버리는 순환을 반복했다. 발견된 나의 옛 물건들을 밟기도하고, 찢기도하고, 아니면 그냥 있는 그 상태로 나와 이별했다. 되풀이되는 기억하고 버리는 이 사이클을 온전히 받아들이자 위의 시처럼 상실이 마냥 슬프거나 재앙이 아님을 깨달았다.

 

상실감, 이는 우리가 매일 집 청소하면서 경험하는 감정이다. 상실한다고, 상실해서, 더 성숙하거나 더 ‘나은’ 사람이 된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는 매일 청소해야하며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은 무엇을 상실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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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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