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도그빌 - 개같은 마을의 개이길 자처한 인간들 [영화]

글 입력 2020.05.31 10:2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

스포일러 주의

 

 

여전히 나는 알지 못한다. 우리 인간이 본래 악한 존재인지 혹은 선한 존재인지.

 

고등학교 시절 윤리 수업 시간에 배우던 철학은 굉장히 흥미로웠지만 동시에 그만큼 따분하게 느껴지곤 했다. 인간의 본성과 선악에 관해 고찰하고 토론하는 것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과정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애초에 정답이 없는 주제엔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어린 마음의 나는 때때로 결론 지을 수 없는 담론에 열을 쏟고 힘을 빼는 것은 무용하다고 생각하곤 했다. 사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진 않다. 특히 최근엔, 하루하루를 음미할 시간조차 없이, 꼭꼭 씹기는커녕 꿀떡꿀떡 삼켜버리기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 철학적인 사색과 사유는 사치라고, 지금의 내겐, 그럴 여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내가 그토록 거부했던 철학 그 자체인, 꽤 묵직한 영화 <도그빌>을 접하게 되었다.

 

 

도그빌.jpg

 

 


줄거리


 

갱단의 추격을 피해 록키 산맥에 자리 잡은 도그빌이라는 손바닥만 한 시골 마을로 숨어든 그레이스는 마을을 떠나려고 하지만, 마을에서 나름의 영향력을 가진 오지랖 넓은 철학자 톰의 배려로 2주간의 유예기간을 갖게 된다. 2주 동안 마을 사람들에게 진정성과 필요성을 보인 그레이스는 그 마을에서 살아도 좋다는 배려를 입게 된다.


그러나 경찰이 실종자 벽보를 붙이고 간 뒤부터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한다. 관용의 미덕을 보이기 위해 그녀를 품어주었지만, 실종자를 숨겨주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레이스를 찾기 위한 갱단의 노력이, 실종자에서 현상금이 걸린 수배자로 바뀌자, 사람들은 이제 도덕과 법 사이에서 갈등을 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의 선택은 법을 어기면서까지 그레이스를 품는 도덕이었다. 그러나 과연 도덕이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잔인한 폭력과 권력의 행사가 시작된다.


자신들이 베푼 배려의 대가라는 명분으로 그레이스에 대한 착취는 정당화가 된 것이다. 심지어 성적 착취까지도. 배려의 덫에 걸린 그레이스는 그들의 노예로 전락해버린다.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유린한 그레이스를 결국엔 갱단에 인계한다. 그 또한 마을 사람들끼리 합의를 본 정당한 도덕이었다. 마지막에 밝혀진 그레이스의 정체는, 아버지의 불법행위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아버지를 떠나온 보스의 딸이었다.

 


[크기변환]도그빌1.JPG

 

[크기변환]도그빌2.JPG

 

 


영화답게 만든 연극



영화의 막이 오르고 가장 먼저 알아챌 수 있는 것은 연극 무대 같은 세트장이다. 연극하고는 거리가 먼 나조차도 보자마자 ‘어? 이 영화 형식이 연극이네?’ 싶었을 정도니까 말이다. 최소한의 무대장치로만 세트장을 구현시켰다. 건물도 없고 집과 집을 분리하는 벽도, 문도 없으며 바닥에 그어진 분필선 몇 개가 전부이다. 따라서 배우들 역시 마임으로 연기한다. 공중에 손을 뻗어 없는 문고리를 돌리고 없는 문을 밀고 없는 문에 노크하게 된다.

 

영화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낯선 방식의, 조감도 같은 이러한 무대는 여러 효과를 갖는다.

 

첫째로, 관객이 이질적인 간극을 크게 느껴 작품 속 인물들에게 무비판적으로 몰입하거나 공감하지 않고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관찰자의 시점을 유지하게 된다. 이는 '소외효과'라는 연극기법이기도 하다. 둘째로, ‘벽이 없다’는 것은 보통 허물없는 사이를 뜻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벽의 부재가 오히려 폐쇄적인 느낌을 가중한다. 그레이스는 투명한 집 안에 사는 것처럼 일거수일투족을 마을 사람들에게 감시당한다. 벗어날 수조차 없다. 집 밖으로 나가봤자 손바닥만 한 마을 안이고, 탈출하려면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도움을 청할 사람도 마을 사람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레이스가 처음 강간을 당할 때는 투명한 벽을 사이에 두고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이것이 세 번째 효과이다. 볼 수 있는데 못 본 척한다. 설령 처음엔 정말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지속되는 성적 착취까지 몰랐을 수는 없을 터, 남자들은 성적 욕구 해소를 위해, 여자들은 질투심에 묵인한다. 하여 이는 그레이스를 제외한 마을 사람들 간의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일종의 침묵의 카르텔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무대는 그 자체로 작품이 시사하는 바를 드러낸다. 가장 영화적인 특징을 버리고 연극이라는 형식을 가져옴으로써 상징과 의미에 집중하게 만든 것이다. 인간의 오장육부와 뼈가 들여다보이듯 분필로 그려진 해부도 위로 인간의 야만적인 원초성과 추악하고 간사한 본성을 노골적으로 발가벗긴 것이다. 한편으로, 이는 형식과 내용의 일치라는 현대예술의 조건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영화의 내용을 위해 연극의 형식이 필수적이었으니 말이다.

 

 

[크기변환]도그빌4.JPG

 

[크기변환]도그빌5.jpg

 

 


개(dogville)에게 내려진 과분한 은총(Grace)



도그빌에 나타난 여인, 그레이스. 굳이 숨겨두지 않은 성경적 레퍼런스가 난무한다. 영화는 그레이스를 통해 신의 넘볼 수 없는 자비로움을, 신의 영역에 대한 겸허함을, 신에 대한 긍정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타락한 인간이 저지르는 용서받을 수 없는 악들 앞에서 침묵하는 무능하고 무자비한 신을 비판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 작은 마을에 선물과 같이 내려진 신의 은총이 욕망에 사용되자 은총은 파멸의 징벌로 나타나고 만다.


그레이스의 도덕은 자신에게는 엄격하나 타인에게는 비현실적으로 관대했다. 도그빌 주민들에게 인간 이하의 학대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며 그들의 본성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라고 아버지에게 주민들을 변호하며 그들을 용서하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그들은 단지 나약하므로 본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악행을 저지른 것뿐이니 본성을 벗어나는 강인함을 지니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을 심판할 순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신은 도덕적 선택 능력이 있다고 믿으면서 다른 이들은 개처럼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일 뿐이라는 생각이 기반 된 도덕적 우월주의에 따른 오만함일 뿐이었다. 즉, 이 영화에서의 관용과 용서는 오만에 불과하다.


이는 아버지인 갱단 보스의 반론으로도 알 수 있다. 그는 그들을 쉽게 용서하는 태도야말로 오만하고 어리석은 것이라며 그레이스를 비판한다. 인간은 현실 사회의 규칙을 통해 살아가기에 당연히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며 우리는 철저히 현실적인 기준에서 악함을 벌할 수 있으며 나약하여  본성에 잠식당하는 것 또한 벌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다. 이는 분명 기존의 윤리관에서 터부시되는 이야기이다. 인간을 구분짓고 박애와 희생과 자비에도 차별성을 두라니 말이다. 그레이스가 ‘개’들을 도덕적 선택 능력이 없는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관용의 대상으로 봤다면 아버지는 ‘개’가 자신보다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교정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본 것이다. 이에 권력에 의한 도덕이 정녕 도덕이 맞냐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지만, 그 또한 다른 의미에서 하나의 질서, 기준이 됨은 분명하다.

 

후반 10여 분 간, 차창의 커튼이 걷히고 그레이스의 손에 권총이 쥐어졌을 때, 비로소 살육으로서의 정의가 현시될 예감에 카타르시스를 느낀 관객이 비단 필자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실은 우린 응징을 기대할 수 있는 권력의 도덕에 순응한 것이 아닐지.

 

 

[크기변환]도그빌3.JPG

 

 


진정한 휴머니즘


 

<도그빌>은 3시간의 긴 러닝타임동안 줄곧 참선과 위선, 부패된 권력, 약육강식과 같은 미개한 인간 군상을 비추며 관객으로 하여금 공동체의 본질은 개인의 이익임을 상기시킨다. 극한의 상황에서 추악한 본성을 드러내는 인간의 몰골이라니. 그것 참 인간적이다. 하지만 나 또한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진정한 휴머니즘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강안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21757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