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피고 지는 삶 - 민들레 홀씨 [연극]

지나간 삶 위로 떠오르는, 다가올 생애에 대하여.
글 입력 2020.05.30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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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민들레 홀씨를 보고왔다. 오묘한 감상에 젖어 있다, 지금.

 

창작예술집단, 보광극장. 민들레 홀씨를 연기하는 극장과 극단의 이름이다.

 

지도 어플리케이션에 ‘보광극장’ 네 글자만 무심히 쳐보니, 곧바로 나오질 않는다. 주소를 치니 그제야 수줍은 듯, 지도 어디 한구석이 조그마니 비치었다. 용산구 보광동에 위치한 극단. 좌편은 둔지산에 꽉 막혀있고, 남쪽으론 곧 한강으로 막혀 있으며, 위 편으로는 이태원역 너머 남산이, 또 우측에는 매봉산이 막아있다. 지도를 보자마자, 사방 산과 강에 포옥 안기어 있는, 조용하니 야트막한 곳이 아닌가 하는 감상. 나는 운도 좋지, 환승 한 번에 버스로 쭉 편하게 갔다.

 

보광동. 아마 앞으로도 좀체 찾아올 일 없을, 그런 덥수룩 소박한 동네구나. 내리자마자 곧 갖게 되는 생각이 이렇다. 크게 인적 없는, 인적 이끌 무언가도 없는 동네, 언덕배기를 10분가량 걸어 올랐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상점들도 까맣게 낯을 아니 틔워두었고, 배달하는 오토바이들만 이따금 왜앵 요란하였다. 그 왜, 아주 오래된 약국을 바라볼 때의 감정 같은, 걸어가는 길 내내 그런 뭉클하고 애틋하면서도 적요한 느낌 속을 헤적이다.

 

언덕의 끝, 그 고개 너머 하늘이 곧 처럼 보이는 즈음에 오랜 내력을 안고 있는 듯한 약국이 자리해 있다. 아직 극장을 찾진 못했고, 지도도 볼 겸 활명수 하나 사먹을까 하는 심산에 문을 기웃거리자니 다만 외출 중이라는 퉁명한 문구 하나만 걸려 있었다. 그리고 지도는 이곳 바로 길 건너편, 채 지나친 극장을 가리킨다. 빨간 바탕에 흰색 글씨만 소박하니 적어둔, 눈에 잘 아니 띄는 ‘창작예술집단 보광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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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은 좁고 아늑하다. 지하에 자리한 이곳에선 소리도 넉넉하니 울리겠다. 과연, 이 좁은 공간을 꽉 메우는 소리가 곧 퍼지고, 벽을 부딪혀 조금 울리온다. 공간도 공간이지만 배우님들의 대단한 발성, 목 푸는 음성이 벽력같다.

 

모쪼록 송구스런 시국이다. 아무리 마스크를 단단히 짜매고 손을 꼼꼼히 씻고, 그것도 모자라 손 소독액을 끈덕하니 발라 비빈들, 영 모자라 송구스럴 일이다. 마스크를 벗지 말아 달라는 단단한 주의를 다짐처럼 듣고, 곧 극이 시작한다.

 

 


 

 

**

스포일러 주의

 

 

민들레 홀씨, 한 여인이 저 스스로 일생을 고요히 소박하니 되 바라보는 이야기이다. 노인 분장을 한 여인 한 명이 무대 중간에 자리하고 제 소개를 한다. 이름은 박자훈, 아들을 바랐던 부모가 제 복중 아이 아들이기를 기원하며, 또 확신하며 미리 지었던 이름에는 아들 자 子 자가 들어 있다고. 우스개 놀림도 참 많이 들었더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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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주름이 여실하고 검버섯마저 핀 얼굴을 하고 막에 올라, 그 소박하니 서글픈 제 일생을 돌이켜 읊는다. 막 구성은 막이 전환될 때마다 자훈이 등장해 설명하는 독백을 하곤, 당시 과거를 재연하는 식의 액자 구성을 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50년대 경남 거창에서 시작된다. 마당엔 아직 초등학생인 자훈과 강아지 똥순이가 있고, 동무인 병수가 곧 늘 그랬던 양 찾아온다. 병수는 맨날 찾아와선 자훈에게 시답잖은 말이라도 건네려는 모양이, 아무래도 좋아하는 것 같다. 자훈이네 어머님께도 잘하는 걸 보니 더욱 그리 보인다.

 

빡빡머리 병수는 여전히 별다를 것 없는 어느 날 자훈에게, 가져온 민들레 모양 머리핀을 선물한다. 짐짓 젠체하였지만, 자훈도 싫지는 않은가 보다. 머리에 꽂은 채 잊어버린 듯 계속 둔다. 그 머리핀을 꽂아둔 줄도 잊은 채, 자훈은 또 어느 날 어머니와 땅에 쪼그려 앉아, 풀을 헤치고 있다. 아마 김을 매고 있는 것일게다. 무심한 손 위로, 잡히는 아무런 풀들을 성가신 듯 휙휙 뽑아내던 중 그 손안에는 민들레가 잡히고, 예쁜지도 모르는 그 꽃, 뭐 이리 많기도 하다며 자훈은 투정을 부린다.

 

자훈의 어머니는 그러나, 민들레를 퍽 사랑하셨나 보다. 가장 흔하지마는, 이래 봬도 잡초 중에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시며, 이제 바람이 부는 때가 오면 그 홀씨는 하늘 위로 솟구어 날아서는 어딘가 새로운 꽃으로 화하리라 하신다. 그 말을 할 때에 두 모녀의 눈길은, 눈앞 민들레에서 저기 먼 어디 공중으로, 그리운 듯 또 아련한 듯 옮는다.

 

그 홀씨를 그처럼 바라보게 하는, 당신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어머니는 이내, 죽은 자훈의 오빠 이야기를 한다. 그의 그리운 영혼도 이 홀씨를 닮아, 하늘 위로 솟구어선 어딘가 알지 못할 곳으로 날아 새 꽃을 피웠으리라고, 그렇게 믿으시고, 또 믿고자 하신다. 어머님께 민들레는 죽은 아들을 상기시키는 매개요, 그 아들에 대한 넘치듯 그리움을 참아내게 하는, 어떤 까닭인 것인가. 그렇게 생각 아니 하고선 어찌 가슴에 폭하니 묻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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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이 연극의 제목에 떡하니 자리한 만큼 누가 보아도 핵심 소재이다. 민들레의 홀씨는 가벼움과 그로 인한 ‘부유’ 浮遊와 자유로움의 속성을 띄고, 그로써 온 세상으로 퍼져나갈 수가 있는 어쩜 유일한 씨앗, 분수처럼 퍼지어 공중으로 날으는 생명의 단초이다.

 

홀씨는 여기서 다만 영혼의 상징이고, 그 영혼이 이곳을 떠난다고 하자면 다른 어딘가로 날아가 반드시 새 꽃을 피우리라는, 영혼과 생명, 죽음과 삶의 순환, 혹은 그 순환을 기원하는 소박한 우리 마음들을 표지한다.

 

한편, 괴짜 발명가인 자훈의 아버지는 과히 무뚝뚝하다. 경상도 사내여서 그런 것일까. 나는 그 짐짓 과묵한 체하는 뒷모습에 물씬 내 아버지가 떠오른다. 그래도 제 아버지가 제일이라는 자훈, 아비는 비상하고 기묘한 것들을 뚝딱 만든단다. 안 그래도 곧 만드는 것이 “행복기계”라나 뭐라나. 그 안에서는 무어든 보고 듣고 맛보고 느낄 수가 있단다. 곁에서 엿듣던 병수는, 그럼 짜장면도 먹어볼 수 있느냐고 설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행복기계가 발명되었다. 자훈네 가족과 병수는 설레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고, 자훈의 어머니가 가장 먼저 겪어본다. 꿈꾸는 듯한 눈으로, 자훈의 어머니는 이제 어떤 아름다운 영상 하나를 체험한다. 영상 속에는 당신 어머님의 고향인 이북이 등장한다. 아마 남은 생 동안 어떤 신비한 일이 펼쳐진다 해도 돌아갈 수 없는 고향, 그리고 그 고향 안에 당신의 어머님이 등장한다. 감격한 눈빛, 관객인 우리는 저 고향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볼 수 없었지만, 그 고향을 담고 또 비추는 어머님의 눈빛 위로 그리어 본다. 저 눈빛을 나도 몰래 좇는다. 눈빛이 이끄는 것일 지도 모른다.

 

반가운 해후를 하고는 곧, 그 옆에 아들이 등장한다. 있을 리 없는 아들이 등장하였다. 환상향인 갈 수 없는 고향에, 있을 리 없는 아들이 있다. 어머니는 너무 놀라서 기계 바깥에서 설레며 기다리는 가족들을 급히 부른다. 여기 아들이 있노라고. 그러나 그 목소리에, 반갑거나 믿기지 않게 행복하거나 하는 기색은 추호 없다. 어머니는 두려워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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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명백히 두려워하고 계신다. 왜였을까. 아마 어머님께선 아들을 이미 민들레에 묻어, 그 씨앗과 함께 공중으로 잘 보내주었던 때문이겠다. 이미 묻고, 잘 보낸 아들. 그러나 행복기계는 알았던 것이다. 마음 깊은 곳에 묻은 아들을, 당신이 또한 못내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어머니는 그 투영된 소망이, 불길하고 감당하지 못하는 성질의 환상임을 잘 알아 두려워하신다. 영영 잊을 수 없는 간절함이요, 다신 볼 수 없는 그리움인 때문이다. 그런 것들을 붙잡고선 살아갈 수 없는 우리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행복기계는 이내, 굳게 닫힌다.

 

2막, 시간이 꽤 지나 어느덧 훌쩍 큰 자훈과 병수. 병수는 여전히, 늘 그랬단 듯이 자훈을 찾아온다. 아끼던 강아지 똥순이가 또 하나의 홀씨가 되어 떠났고, 자훈은 아직 똥순을 민들레에 담아 보내지 못하여 시름 하고 있었다. 괜한 시름 하지 말고, 여기 와서 길쌈이나 도우라는 어머니. 병수는 여전히 어머니를 잘 따른다. 넘의 집 병수도 이렇게 잘 해주지 않느냐고 재촉하신다. 그러자 곧, 무슨 생각을 마치었는지 대뜸, 대학을 보내달라고 한다. 어머님 입장에선 그야말로 뚱딴지같은 소리다.

 

자훈은 어느 샌가부터, 양장점을 차리고 싶단 꿈을 꾸고 있었던가 보다. 그 까닭을 우리는 모른다. 뭐, 우리도 우리네 가진 꿈에 대해 그 기원과 이유를 채 알 수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집에 아들이 없는 자훈네는 맏아들을 대학 보내기 위해서 자훈의 꿈을 내리누르진 않았지만, 막의 시간은 아마 60년대 즈음, 여식을 대학에 보내는 것이 아직은 당치도 않다 여기던 시절이다. 집에 돈이 어딨느냐며, 잠자코 길쌈이나 배우고, 동네 청년에게 시집이나 가라 하시곤 재고도 아니하신다. 그렇게 자훈은,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 즈음의 어느 날, 기어코 고향을 떠난다.

 

거창을 떠나고부터 자훈의 삶은 시대와 같이 흐른다. 68년 경부선을 타고 이제 자훈의 생애는 70년대 수출산업의 메카, 구로공단에 도착했다.

 

 

벌집이라 불리던 6.6㎡ 남짓한 공간. 누가 들고 나는지 모르는 그곳에 고단한 몸을 누이고 공장에서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10시까지 일했다. 손꼽아 기다리던 월급봉투에는 이것저것 떼고 74,166원의 액수가 찍혀 있었다. 1980년대 초 구로공단 여공이 받은 월급봉투다. 그마저도 고향 집에 보내고 얄팍해진 주머니로 구로구 가리봉 오거리 일명 ‘가리베가스’라 불리는 곳에서 양품점이나 음악다방을 찾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낙이었다. 공순이라는 비웃음을 감내하며 오빠나 남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 상경한 10대 후반의 누이들은 ‘한강의 기적’을 일군 산업 역군들이었다. 그들이 몸담고 일했던 구로공단은 1970년대 우리나라 수출 산업의 선두 주자이자 산업 공단의 중심지로서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국가기록원, ‘구로공단’ 中

 

 

“부모님한테도 숨기고 싶었어요. 공순이가 아닌 것처럼 보이려고 일부러 더 치장을 하기도 했지요.”

 

한명희(62·민주당) 서울시의원은 8일 자신의 20대 시절을 떠올리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지금이야 편하게 추억하지만 당시엔 무척 아팠다고 한다. 그는 1974년부터 1982년까지 8년 동안 서울 구로공단의 컴퓨터 부품 조립공장을 다녔다. 한두평 조막만한 ‘벌집’에서 서너명이 포개져 쪽잠을 잤다. 단독주택 하나에 작은 방 20여개가 다닥다닥 붙은 모습이 벌집을 닮아 벌집이란 이름이 붙었다. 한명희 의원은 잠 안 오게 하는 ‘타이밍 약’을 먹어 가면서 밥 먹듯 야근을 했다. 하루 20시간씩 작업대에 앉아 있던 적도 많았다. 당시 세상 사람들은 구로공단 공장을 다니는 10대와 20대 노동자들을 공순이, 공돌이라고 불렀다. 무식하다고, 가난하다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어떤 공순이들은 반항이라도 하듯 치장에 열을 올렸다고 한다. 한 의원도 당시 외출할 땐 ‘빽바지’(흰 바지)를 입었고, 한번은 두달치 월급을 모아 캐시미어 코트를 산 적도 있다고 했다.

 

한겨레, “구로공단 50년~” 中


 

막은 미싱공장으로 탈바꿈된다. 머리에 흰 두건을 쓰고, 손은 이미 익숙한 듯, 한 치 흐트럼도 한 치의 생각함도 없이 기계적으로 미싱기 위를 허적이고 있다. “우리 구로공단의 산업역군들!” 감독관은 괜히 돌아다니며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나 하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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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중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디자인 공부를 하는 나날, 자훈은 꿈을 꾸며 그 어려운 길 위에를 올랐다. 언젠가 명동에 양장점 하나를 차리겠노라는 자훈을, 동료들은 멋지다고 한다. 큰 오빠의 대학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을 공단에 유폐한 어떤 동료의 눈에는, 자훈이 더더욱 크고 빛나게 보였을 것이다.

 

‘가리베가스’에 놀러 가자는 친구들 유혹도 마다하며, 그렇게 악착같은 나날을 살아가던 자훈. 이유는 오직 꿈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모은 돈은 어머니의 병환으로 인해 내려보내고, 꿈으로의 길은 흩어진다. 막이 바뀐다. 이미 어린아이를 어르고 있는 자훈의 곁으로는 ‘모월 모일 떨어진 누구누구야 보고 싶다. 가족들이 애타게 찾고 있다.’는 투의 방송내용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KBS에서 진행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이제 시간은 83년에 도착했다.

 

꿈을 향해 고되면서도 주체적인 삶을 살던 자훈은 슬며시 지워져 있었다. 이제 숱한 사람 중의 하나인 ‘민영 엄마’는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동창들의 모임에도 나가질 못한다. 아이는 누가 보느냐며 남편이 성화인 까닭이다. 여태 한 번도 말꼬리 잡지 않던 자훈은 울분도 토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당시의 남성들에게 주말에 가만, 집에서 자기 새끼 한 번 보는 것은 그다지도 어려웠던 일인 것일까.

 

막이 또 바뀐다. 자훈은 결국 동창회에 나와 있다. 그러나 시간은 이미 5년이 지난 88년. 아이가 이젠 한시 어미 손을 필요치 않는 덕분이다. 올림픽 즈음에나 드디어 모일 수가 있었던 그들의 애틋한 해후는 그러나 짧았다. 시간은 계속 쏜살처럼 흐른다. IMF가 이젠 찾았고 각자의 사업에 근심이 돌던 와중,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자훈은 망연히 고향으로 돌아온다. 수 십 년 만의 귀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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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10대에서부터 쭉 이어져 흘러온, 과거로부터의 자훈과 나레이션을 담당하던 현재의 자훈이 교차한다. 닿았다. 그리곤, 교대한다. 얼굴에 주름과 검버섯을 안고 있는 이 자훈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다. 곡이 아닌, ‘소리’를 한다. 그 소리가 참 아름답더라. 채 못 알아들을 가사 중에 ‘회심곡’ 세 글자를 붙잡는다.

 

공연이 끝나고 여쭈어보니, ‘회다지 소리’였다고. 회다지 소리는 관을 묻은 묘자리 위로 회를 얹어 다질 때 부르는, 일종의 노동요이자 추도곡이다. 회심곡은 그중 일부로, 부모에 대한 후회와 회한이 가사와 목소리에 어리어 있었다. ‘소리’ 특유의 절절하면서도 어딘가 절제하는, 깊은 데서 끓오르는 한의 냄새.

 

 

 

 


 

 

상을 마치곤, 자훈은 머리에 있는 하얀 핀을 뺀다. 오늘의 공연은 딱 여기에서부터 출발했었던 것이구나. 이제 병든 몸을 안고서, 고향을 서성이며 추억을 밟아가는 자훈은 어느 순간, 자신보다 젊은 어머니의 환영과 대화한다. 모두 삶이 이렇겠냐고, 살아보니 별것은 없었다는 말이, 별것 다 있었다는 듯한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온다.

 

“엄마… 솔직히… 조금 무섭다.”

 

어머니는 이에 늘 같이, 괜찮노라고 말해오신다. 민영 엄마가 아닌 딸 자훈이, 자유로이 응석을 부린다. 괜찮다. 곧 자훈의 검은 옷 위로, 눈물이 흐르곤 또로록 굴러떨어졌다. 어머니의 죽음과 장차 제 죽음의 생각을 안고서 여태, 어른인 자훈은 몰래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덧없이 빠르게 흘러가기만 한, 애달픈 자기 삶과 그때야 상기되는, 아마 꼭 같았을 어머니의 삶. 귀결되기에, 혹 종착 되기엔 너무 이르다 여겨질 것이다. 너무도 아쉽기만 하였음에. 배우의 검은 옷 위로 눈물은 스미지도 않고 어리어, 또로록 굴러떨어졌다. 문득 이 연극은 내게 무엇이고, 애초 연기란 어떤 것일지를. 나는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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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부족하고, 전체 서사는 빠르게 내달았다. 말하자면, 어느 연대에 서사가 충분히 멈추어 있을 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예컨대 구로 공단의 아픔은, 연극 내에서보다는 위의 자료조사를 통해 더욱 여실히 내게 다가왔다.

 

그러나 구로공단의 자료 속에 ‘한 인간’의 자취는 없었다. 그곳에서 아픔은, 한 인간의 아픔이 아닌 아픔 자체로만 내게로 와, 추상적으로 그리어지고 만다. 자훈의 서사는, 즉 연극으로 내게 닿는 ‘한 인간’은, 아마 그보단 진하게 남을 것이다. 내 희로애락의 반사되고 투사되는 거울인, ‘인간’으로써 닿는 까닭이다. 아마, 자훈을 기억하고서 바라본 구로공단의 기록들이, 드디어 내게 가까이 닿을 수가 있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욱 올바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장 위로 애달픈 기억이 소환될지도 모르겠지만, 연극만으로는 내게 이 역사의 장면들이 여실하게, 말하자면 하나의 체험으로 다가오진 못한다. 나는 연극을 보고 장차, 내가 5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그 역사의 기억들을 아노라고 어느 어르신의 앞에서 말해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영영 갖지 못할 것들.

 

그러나 어느 어르신이, 스스로의 소박하니 애달픈 기억들을 내게 꺼내어 풀어놓을 제에, 그것을 조금 나마 가까이 들을 수 있게는 될 것이다. 이 막의 위로 흐른 얼굴들과 어느 눈물이, 검은 옷 위에 굴러서 여실히 내게 비치곤 떨어진, 그런 감정의 재현들이 그런 닿지 못할 삶과 경험들로 조금 나마 더 가까이 나를 이끄는 덕분이다.

 

이것이 내가 연극에서 받은 것들일까. 또한, 연기란 이런 것일까.

 

무대와 객석 사이의 보이지 않는 투명한 장막이 있고, 우리는 이를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를 경계로 삼는다. 무대 위의 당신들은 이제 이승의 이름이 아닌 가상의 이름을 가지고, 우리는 그에 의심을 품지 않는다. 무대 위 당신들의 눈길은 이편 객석을 향해 있지만, 우리는 그가 저 멀리 다른 곳, 볼 수 없는 곳을 향하고 있노라고 믿는다.

 

배우의 눈동자 위로는 그러나, 마치 진정 그곳이 비치는 듯하다. 아득한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그 눈동자는 보이지 않는 곳을 보고 있는 듯하다. 객석의 우리는 드디어, 그 눈동자를 따라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간다. 이끌리어 간다. 나는 이런 것이, 연극을 관람하는 일일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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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극 안에 새로운 것은 없다.

 

익히 들었던 바, 지나간 삶들이 재현되고 있었다. 아마 대개 그랬을, 애달픈 삶 하나가. 그러나 잘 재현되어, 내게 충분히 닿는다. 자훈이 말년에 이르러서야 상기할 수가 있었던, 아마 꼭같았을 자신 어머니의 삶과 같이, 아직 닿질 못해 채 알 수 없는 삶들이 너무 많다. 연극은 여기에, 이런 채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내게 상기시킨다.

 

소박하니 특별할 게 없는 삶 하나가 여기 있다. 그리고 그 위로 떠오르는 내 생애가 있다. 이 삶도 모든 삶이 그러했듯, 수더분히 피고 져 장차 민들레의 씨앗처럼 화할 것이다. 그리곤 신의 숨결을 타서 공중으로 나리면, 장차 다른 곳에 안기어 꽃을 피우리이다. 자훈과 어머니의 눈동자에 비친 장막 너머 상상의 하늘과 그 위 나리는 민들레 씨앗들이, 아직 내게 푸르도록 잘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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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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