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편견을 부수는 시간 -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전시]

글 입력 2020.05.2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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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센트럴 뮤지엄'에서 열리는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에 다녀왔다.

 

미디어아트는 처음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 가본 적도 없으면서 막연히 품고 있던 미디어아트에 대한 편견이랄 것이 있었다. 미술에 조예가 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전시라면 원화여야지!”라는 고집이 있었다. 미디어아트 전시란 오로지 인스타그래머블한 스팟의 배경이 되기 위한, 그래서 실제로 어떤 작품 세계를 만난다기보단 수많은 관람객의 인생샷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미디어아트에 대한 오만한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초중고 시절 내내 봐온 마그리트라는 화가의 그림이 말 그대로 ‘재미’가 있었기에 본격적인 시험기간이 시작되기 전 바람이나 쐴 겸 잠깐 다녀오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전시는 두 번이나 나의 편견을 깨뜨렸다. 하나는 미디어아트는 깊이가 없을 것이란 편견, 또 하나는 마그리트는 그저 톡톡 튀는 재밌는 작가일 뿐이라는 편견. 가벼운 마음으로 잠깐 보고 나오려 했는데, 서둘렀음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을 나오니 어느덧 2시간 반이 훌쩍 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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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총 5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로지 작품 감상에 몰두할 수 있는 섹션과, 작품을 바탕으로 AR을 활용한 재밌는 체험들을 할 수 있는 섹션, 포토존이 있는 섹션, 웅장한 미디어아트들이 있는 섹션들이 치우치지 않고 고루고루 배치되어 있다. 그 중 가장 좋았던 섹션은 첫번째 섹션, ‘어바웃 르네 마그리트 About René Magritte’와 네번째 섹션 ‘인사이드 마그리트 Inside Magritte’이었다.

 

 

 

1. ‘말과 이미지’에 대한 치밀한 인식에 입각한 상상력


 

첫 번째 섹션 ‘어바웃 르네 마그리트’에서는 작가의 연대기와 함께 마그리트가 직접 등장하는 뤽 드 회쉬 감독의 영화 <마그리트, 또는 사물의 교훈(Magritte, or the Lesson of Things)>(1960)의 편집본, 그리고 디지털 이미지와 작품별 설명, 참고 영상을 통해 마그리트의 작품들을 시대별로 본다. 첫 번째 섹션의 마지막 챕터에서는 대표작 <빛의 제국> 연작을 재해석하여 영상을 통해 실제처럼 느낄 수 있게끔 하는 공간이 마련돼있다.


풍부한 작품의 수와 생생한 화질, 그리고 알기 쉬운 설명들 덕분에 원화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예상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관람하게 되었다. 초현실주의의 거장답게, 익히 보아 익숙한 그림들도 있었고 처음 보는 것들도 있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나의 상식을 뒤엎는 상상력을 보여주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보고 또 봐도,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라는 감탄을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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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선택적 친화력'(1933) / (우) '빛의 제국'(1954) (모두 마그리트의 작품)

 

 

처음에는 그저 기발한 상상력이라고 생각하다가도, 전시를 보고 있자니 점차로 어떠한 인상이 굳어져 갔다. ‘마그리트는 정말 똑똑한 사람이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단순히 사물을 생뚱맞은 공간에 배치시킴으로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마그리트는 사물이 우리가 흔히 자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공간이 아닌 엉뚱한 곳에 배치하지만, 그것은 그 이미지가 가리키는 사물이 원래 가지고 있던 의미를 파열시키고, 이따금 새롭게 배치된 자리에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기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그 파열과 새로운 의미의 창조는 그림 속에서만 갖는 이미지들 간의 하모니와 작품의 제목을 통해서 마침내 완전히 이루어지게 된다.


마그리트는 그림의 완성이란 단순히 붓을 놓는 순간이 아니라, 심사숙고 끝에 제목을 짓고 나서야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주말이면 친구들을 불러놓고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놓고 제목을 어떤 것으로 하면 좋을지 다같이 논의했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그림 자체에 대한 첫 인상과, 제목을 통한 상식의 전복에까지 나아가야만 진정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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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 '말과 이미지'

 

 

이미지와 그것이 가리키는 사물 간에 가지는 우리의 맹목적인 확신을 깨뜨림으로써, 마그리트는 작품을 바라보는 현재의 세계에 완전히 균열을 가한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대로 마그리트의 ‘이미지’에 관한 자신의 이론에 입각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말과 이미지>라는, 드로잉과 글이 합쳐져 마그리트의 작품 세계의 큰 틀을 보여주는 작품에서 마그리트는 사물 - 이미지 - 그것을 지칭하는 말 사이의 관계에 대한 탐구를 보여준다.

 

 

 

2. 끊임없이 도전하는 화가, 마그리트


 

그러나 사실 아무리 통통 튀는 작가의 작품들이라 해도, 계속 보면 비슷비슷하게 보이고 지루할 터. 초반에는 그의 ‘똑똑하고 치밀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작품들에 놀랐지만, 점차로 나의 주의를 끈 건 시대에 따라 달라진 이 작가의 화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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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길 잃은 기수'(1926) / (우) '홀로 걷는 사람의 사색' (1962) (모두 마그리트의 작품)

 

 

흔히 알려진 마그리트의 대표작들의 화풍은 이미 20년대에 정립된 것처럼 보였다. 마그리트는 미래주의와 입체주의에 입문하지만 1910년대부터 초현실주의에 발을 들인다.


이때부터 그는 이미 추상적 형식이 아니라, 일상의 사물들을 새롭게 배치함으로써 사물이 가진 고유한 의미에서 벗어나게끔하는 작품들을 많이 탄생시키는데, 이후 그의 작품에서 주로 등장하는 새, 손, 커튼, 빌보케 등의 이미지들이 이 시기 이미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1920년대에 벌써 <이미지의 배반>(1929) 등의 작품을 창작하며 초현실주의의 대표적 화가로 확실히 자리매김을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후의 그의 작품들의 화풍은 계속해서 변한다. 전시에서 ‘햇빛 아래 초현실주의’ 또는 ‘르누아르 시기’라고 이름붙인 이 시기,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이후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마그리트는 기존의 화풍을 버리고 ‘인상파의 강한 스타일과 밝은 색감’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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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불확정성 원리'(1944) / (우) '세헤라자데'(1947) (모두 마그리트의 작품)


 

이 시기 그의 그림들은 ‘정말 마그리트 맞아?’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기존 스타일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주위의 반응은 좋지 않았고, 얼마 간 르누아르 시기의 화풍을 고집하던 마그리트는 손을 놓게 된다. 이후 그가 보여준 그림들은 직관적이고 조금은 거친 화풍을 가진다. 이 시기를 ‘바슈시대’라고 하는데, 이는 야수파에 대한 패러디이자 사회에 대한 신랄한 풍자였다. 그리고 50년대에 들어 다시금 원래의 화풍으로 돌아와, <골콩드>(1953) 등의 대표작들을 다시금 창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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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수단과 방법'(1948) / (우) '기근'(1948) (모두 마그리트의 작품)

 

 

새롭게 떠오른 사조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굳히고 명성을 얻은 화가가 몇 십년 동안 계속해서 새로운 그림에 도전했다는 것은 충격을 안겼다. 그것은 점진적인 화풍의 강화라기 보다는, 정말 기존의 화풍을 ‘버리고’, 새로운 화풍을 ‘시도하는’ 것만 같았다.


세월이 흘러갈 수록, 나이를 먹어갈 수록 안 먹던 음식 하나 시도하는 것조차 어려운 것이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자신이 추구하던 것들을 ‘고집에 대한 고집’하지 않고,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어떠한 자신감, 어떠한 확고한 작품 세계를 가졌길래 저런 용기있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놀랍게 느껴졌다.

 

 

 

3. 인사이드 마그리트, 인투 마그리트 : 그림 속에 빠지기


 

마그리트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구성하는 것에 끊임없이 균열을 가하고 의문을 던졌다. 전시의 첫 번째 섹션과 네 번째 섹션에서는 그의 그림 속으로 정말로 빠져들어간 듯한 느낌의 경험을 함으로써, 이 작가의 ‘이상한’ 세계 속에서 나의 원래 세계가 잠시 사라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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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이 공존하는 스산한 풍경 한가운데에 위치한다거나, 내 주위로 갑자기 사과들이 던져진다든가. <골콩드> 속 신사들이 천장부터 나의 발밑까지 떨어지면서, 나 역시 그들과 함께 도시 속에서 떨어져내리고 있는 것만 같다.


절대 조악한 미디어아트가 아니라, 둘러싼 세계 자체가 변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자,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왕 꿈을 꿀 거라면, 마그리트의 치밀하고 기발한 세계에 빠지는 꿈이라면 더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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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 Inside Magritte -


일자 : 2020.04.29 ~ 2020.09.13

시간
오전 10시 ~ 오후 8시
(매표 및 입장마감 오후 7시 20분)

*
휴관일 없음

장소
인사센트럴뮤지엄

티켓가격
성인(만19~64세) : 15,000원
청소년(만13~18세) : 13,000원
어린이(만7~12세) : 11,000원
미취학아동, 만65세 이상 : 6,000원

주최
크로스미디어
지엔씨미디어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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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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