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민들레 홀씨 [공연]

기성세대 여성의 삶을 드리우다
글 입력 2020.05.27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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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민들레 홀씨'는 한 여성의 일대기를 민들레, 행복, 과거라는 키워드로 다루었다. 여성의 이름은 박자훈. 아들로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들 자를 따 지은 이름이었다.


자훈은 거창에서 나고 자라, 명동에서 양장점을 차리겠다는 일념으로 상경한다.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자훈의 어머니는 공장에서 일하며 익숙하고 편한 거창에서 가정도 꾸리길 바랐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지 않는가. 자훈은 자신의 목표를 현실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다짐으로 낮이고 밤이고 일만 한다. 여기서 자훈이 성공의 길을 걸었다면 그의 미래도 달라졌을까.


자훈은 어머니의 병원비로 모아둔 돈을 탕진하고, 그 후 돈을 버는 족족 고향에 보냈다. 결국, 자훈의 꿈은 꺾이고,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살게 되었다. 남편은 가부장제를 그대로 답습한 남자였다. 사실 그 세대는 물론 지금도 거의 변함 없다. 여자는 노동의 대가를 절대 인정받지 못 하는 일-양육, 가사, 장보기 등-을 도맡고, 남자는 '바깥일'을 하고 집에서는 왕처럼 군림한다. 가장이라는 자존심을 부리며.

 

연극은 이때부터 죽기 전까지의 시간이 생략되었다. 기혼 여성의 가장 중요한 파트를 다루지 않았다고 느꼈다. 사람은 몇 번이고 인생의 전환점이 생긴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기혼 여성은 해가 갈수록 전환점을 만들 기회조차 얻기 힘들어 보인다.


한 개인이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묶이며 '엄마'의 이름으로 아이들을 양육하고, 아이들이 자라면 '엄마'는 움츠러든다. 몇십 년의 세월 동안 경력 기술서에 한 줄도 적을 수 없는 가사에 종사하며 보내서인지 새로운 것을 어려워한다. 하고 싶어 하면서도 생각이 길어지는 것이다. 늙어서,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아직 그 정도의 여유는 없어서. 이 갑갑한 현실을 연극에서 잘 표현해냈다면 완성도 높은 각본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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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연극에서도 갑갑한 현실 이야기가 나온다. 자훈이 남편에게서 듣는 말이나 몇 년 만에 나온 동창회 등. 다만 현상을 읊는 것에 그쳤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이 현실을 기반으로 연극의 주제를 정했다면 흐름이 매끄럽다고 느꼈을 테다. 행복 기계를 자훈의 어머니가 보며, 돌이킬 수 없는 과거라는 사실에 괴로워하던 장면이 연극이 주려는 메시지였다는 점이 의아했다.


초반에 잠깐 나오던 소재와 자훈의 삶 사이의 연관성을 찾기 어려웠다. '꿈은 이루지 못해도 과거는 돌아갈 수 없으니 놓아주어야 한다'로 이해했는데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모범 답안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훈이라는 인물과 후반부 사이의 연결점이 명확하지 않아 나의 관점에서 해석한다는 느낌보다 추측에 그쳤다고 느꼈다.


애자 씨가 자신과 비슷한 세대의 삶에 공감하고 깨달음도 얻어가길 바랐다. 기대감이 아주 높았던 만큼 스토리 면에서 실망이 컸나 보다. 그래도 의미 없지는 않다. 깨달음까지는 가지 못했어도 애자 씨는 괜찮았다고 평했다. 자신과 같은 모습에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다는 말을 덧붙이며. 종종 연극을 보러 다니던 애자 씨가 좋았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역시 함께 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

 

스토리는 이쯤 이야기하고, 배우분들 이야기로 마무리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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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극을 자주 보던 사람은 아니고, 종종 친구가 초대권을 주거나 함께 보러 가자고 할 때 보곤 했다. 횟수로 따지면 열 번 남짓. 이번 '민들레 홀씨'를 보며 이렇게나 연기가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에 꽤 놀랐다. 자훈의 어머니 역을 맡은 남은실 배우는 정말 어딘가에 존재할 법한 캐릭터를 보여주었다. 드라마에서든 영화에서든 인터넷에서든 영상 매체 너머로 보던 존재가 눈앞에서 움직이는 것을 본 느낌이랄까.


신기했다. 저 자연스러운 말투와 제스처, 표정까지. 자훈을 연기한 박지영 배우는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느껴졌다. 깊이 있는 울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작은 공간이 목소리 하나로 채워지던 모습은 꽤 소름 돋았다. 완벽한 '개' 연기를 보여준 안중언 배우도 기억 남는다. 개들이 자주 하는 버릇을 똑같이 따라 하는 것을 보아 캐릭터 연구를 열심히 한 것 같았다.


극은 어린 자훈 역을 맡은 이영옥 배우가 이끌어갔는데 감정 표현이 세세하고 빠르게 몰입하는 것이 참 신기했다. 인형이나 다른 소품을 실제처럼 대한 덕분에 연극적 요소가 전혀 눈에 거슬리지 않고, 오히려 재밌었다. 영화 <수면의 과학>의 독특한 연출처럼.


그 외에도 훌륭한 배우들의 합이 좋은 관람을 만들어주었다. 이런 주제의 기획이 더욱더 많아지면 좋겠다. 애자 씨가 문화생활을 너무 많이 해서 질려 할 만큼 말이다. 어머니와 세대 차이를 넘어서 문화생활을 즐기기 딱 좋은 주제가 아니었나 싶다. 어머니를 모시고 많은 분이 연극을 관람하면 참 좋을 것 같다.

 

 


 

 

연극 '민들레 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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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20년 5월 14일 ~ 6월 7일

 

관람 가능 일자

평일 19:30 ㅣ 토요일 15:00, 19:30 ㅣ 일요일 15:00

*화, 수 공연 없음

 

장소

서울시 용산구 보광동 217-21 지하, 보광극장

 

티켓 가격

일반 20,000원

보광동 지역주민 할인 10,000원

단체 할인 10,000원

예술인 할인 14,000원

가족 할인 14,000원

대학생 할인 14,000원

중고등학생 할인 14,000원

나 혼자 본다 할인 16,000원

 

 

기획의도

격변의 시대에서 지금까지 이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한다.


오롯이 어머니의 삶을 관통하는 이야기를 담아 각기 다른 성이라는 주체성에 대한 이해 및 격변의 현대사를 살아온 기성세대를 이해함으로써 신세대와의 거리감을 좁혀 지금보다 조화로운 사회로 가기 위한 앞으로의 삶에 대한 태도를 확립하고자 한다.

 


시놉시스

주인공 '박자훈'은 1950년 경상남도 거창에서 태어난다. 그는 여자아이지만 남자이길 바랐던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 세 글자로 평생을 살아간다. 고향 땅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된 1970년 그는 꿈을 찾아 서울로 상경한다. 명동 한복판에 본인의 이름을 달고 양장점을 차리겠다는 큰 꿈을 품고 구로공단의 방직공장으로 취직하지만 그 당시의 많은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여의치 않은 형편에 어느덧 꿈을 포기한 채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된다.


그렇게 누군가의 딸에서 '박자훈'이라는 여성에서,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고 더 나이가 들어서는 할머니로 살아가게 된다. 일흔 되고 병이 들어 생을 마감하기 전 그는 본인의 삶을 뒤돌아보며 과거의 본인을 생각하며 추억을 회상하지만 더 이상 과거에 붙잡히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기로 한다. 그는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민들레홀씨의 깃털이 되어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오빠, 어머니, 아버지의 곁으로 그 길을 따라간다.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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