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나로 살아가기 위해 -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오(Tell Me Who I Am) [영화]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오(Tell Me Who I Am)
글 입력 2020.05.26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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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다큐멘터리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을까, 어느 친척 어른을 만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는 절대 그거 안 할 거예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13살짜리 아이가 무슨 얘기를 하다가 그렇게 단호한 의사 표시를 했는지 세세한 부분은 기억에 없지만, 그때 내게 “절대”라는 것은 없다고 답하신 친척 어른의 말씀은 지금까지도 또렷이 남아있다. 어쩌면 그때 이후로 정말 “절대”라는 것이 없음을 매 순간 깨닫고 있어서일 것이다.

 

세상에서 “절대”라는 것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영원할 것 같은 관계도, 믿음도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하거나 때론 선의와 최선이 잘못된 결과를 낳기도 하고, 어떤 순간에는 한없이 선한 사람이 매 순간 그 모습만 가지고 사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그저 세상이 입체적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누군가를, 어떤 가치를 하나의 틀 안에만 규정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 수밖에는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절대적”인 것이 없는 세상에서 결국 내가 온전히 가질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선택일 것이다.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감내하고 그 결과에서 배우는 과정이야말로 삶을, 자아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넷플릭스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오(Tell Me Who I Am)”도 삶과 선택에 대한 실화 기반의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54살 쌍둥이 형제, 알렉스와 마커스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두 형제가 겪은 유년 시절, 사고, 그리고 진실 앞에서 각자의 선택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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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오(Tell Me Who I Am)

 

 

 

알렉스의 이야기



사본 -Tell me who I am_3.jpg

 


“나는 내가 누군지 몰라요, 진짜 나를요.”

 

1982년, 18살이었던 알렉스는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를 당해 병원에서 깨어난다. 정신이 든 알렉스는 자신의 쌍둥이 형제 마커스만 알아볼 뿐, 다른 가족들이나 자신의 이전 기억들을 떠올리지 못한다.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렵지만, 마커스의 도움으로 신발 신는 법을 포함해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배워나가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사고 이전처럼 생활은 할 수 있더라도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기에,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어느 정도 극복하자 알렉스는 자연스레 마커스에게 우리 부모님은 어떤 분인지, 가족 휴가 같은 건 어디로 갔는지 같은 질문을 건넨다. 마커스는 부모님은 좋은 분들이시고, 자신들이 어렸을 때 프랑스로 같이 휴가를 가기도 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가족과 친구들에 대해 마커스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알렉스는 다시금 자신의 인생을 정립한다.


호탕한 성격의 어머니, 엄한 아버지, 그리고 집에서 지켜야 하는 규칙들, 조금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알렉스는 다른 가정에서도 있을 평범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망 이후, 이전에는 들어갈 수 없었던 집안 곳곳을 마커스와 정리하기 위해 처음으로 발을 디디며 알렉스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들과 마주한다.


자신과 쌍둥이 형제를 위해 친지들이 보냈지만 전해지지 않은 수년간의 선물들, 서랍 속 가득한 성인용품, 그리고 얼굴 부분이 잘린 10살 때 마커스와 자신의 나체 사진을.


 


마커스의 이야기



사본 -Tell me who I am_4.jpg

 


“난 20여년을 침묵했어요, 그리고 숨겼죠.”

 

마커스는 알렉스가 병원에서 눈을 뜬 그 날부터 본래 그들의 기억과는 많이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좋은 가족,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마커스는 자신만이 가족도, 애인도, 심지어 자신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가늠하지 못했던 쌍둥이 형제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또 다른 자신과 같은 쌍둥이 형제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죄책감으로 힘들었지만,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거짓을 말하는 것보다 수천 배 더 힘들게 여겨졌기에, 그래서 마커스는 결심한다. 유년 시절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기로,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 쌍둥이 형제에게 행복한 기억을 선물하기로.


어머니가 성적으로 자신들을 학대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알렉스에게 자신이 꾸민 이야기를 전해주며 마커스 역시 자신의 기억에는 또렷한 자리한 아픔이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일이 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자신이 만들어 형제에게 전해준 이야기를 스스로 받아들이며 그렇게 상처에서, 괴로움에서 벗어났다고 여긴 마커스.


그러나 십여 년간의 노력은 어머니가 사망한 날,  한 순간에 무너져버리고 만다.

 

 

 

다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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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계속 이어진다. 형제는 우애를 이어가고, 각자 가정을 꾸리며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다시 20여 년이 지나 그들이 54살이 되도록 마음속에 자리한 과거의 학대에 대한 이야기의 진전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알렉스는 왜 자신은 마커스의 이야기에 의문을 품지 않았는가를 자문하면서 어머니를 향한 분노보다 마커스를 향한 분노를 더 크게 느끼고, 마커스는 잊고 싶고 극복하려고 했던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왜 자꾸 알렉스가 꺼내려 하는지 괴로워한다.


결국 쌍둥이는 다시 서로를 마주한다.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분명히 듣고 싶어 하는 알렉스에게 마커스는 “너와 나 둘 다 그 기억에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었어. 네게 그걸 말하면 나도 그 기억을 받아들여야 했으니까, 그래서 말할 수 없었어.”라고 말한다. 알렉스는 그를 이해한다고 말하고 왜 그렇게 진실을 들으려 하냐는 마커스의 말에 답한다. “네가 준 삶에서 벗어나 진짜 내 삶을 살 수 있으니까, 그리고 너와 다시 새롭게 유대를 맺을 수 있고.”


진실이 드러나고, 쌍둥이는 원래 둘의 것이었던 상처를 마주한다. 이 선택으로 두 형제가 함께 감내해야 했던, 또 각자의 괴로움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의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또 동시에 서로의 의사를 존중하며 이뤄진 선택이기에, 둘이 서로에게 진실하며 더 강한 유대를 이어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세상에 "절대"라는 것은 없다고 하지만, 그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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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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