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Her ; 이제 사랑을 알아 [영화]

글 입력 2020.05.2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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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포함

 

 

20190418

온전한 내 것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

 

 

이는 지난날 일기장에 적어두었던 구절인데 그 하루의 바람이 아닌, 줄곧 생각해왔던 것이었다. 홀로 살며 외롭고 공허할 때면, 온전한 내 것이 있었으면 했다.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실한 내 것, 나를 떠나지 않는 것, 나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것. 그런 것이 내게도 존재한다면 때때로 날 에워싸는 실체 없는 외로움과 잠식될 것만 같은 우울에서 날 구원해주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에둘러 말하기를 그만두고 바로 말하자면 선명한 사랑을 갈구했다. 서로의 사랑이 식을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는, 적당한 긴장감조차 필요하지 않은, 언제까지고 나와 함께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사랑을 쥐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남들과 나누어 본 적은 없기에 다른 이들도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아갈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영화는 대부분의 인간이 나와 같은 것을 바란다고 내게 말해주는 듯했다.

 

우리는 다양한 양상의 사랑이 존재하고 또 존중받는 세상에서 살아간다. 남자와 남자의 사랑도, 여자와 여자의 사랑도, 남자와 여자의 사랑도 존재하며 2d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존재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많은 것이 포용 되는 세상에서조차 꽤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낯선 형태의 사랑이 등장한다. 바로 주인공 테오도르와 운영체제 OS 사만다의 사랑이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사랑이라니, 이 영화를 접하기 전까진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유형의 사랑이었다.

 

*

 

주인공 테오도르는 결혼 생활에 실패해 이혼 소송 중인 대필 작가이다. 그는 훌륭한 필력으로 감정이 절절히 느껴지는 편지를 대신 써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하는 매일을 보내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에는 솔직하지 못해 황폐한 삶을 살아간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OS 사만다가 등장한다. 사만다는 인간이 만들어낸, 실체 없는 프로그램에 불과하지만 기존의 인공지능과 달리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인간처럼 생각하며 감정을 느낀다는 차별점을 가진다.


 

그녀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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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사랑과 관계도 여느 연인과 다를 것 없어 보인다. 처음 시작은 사랑이 아니었지만, 일상을 함께하고 교감하면서 자신들도 모르는 새에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관계가 농밀해질수록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이를 메우기 위해 노력하지만 끝내 이별을 맞으니 말이다.

 

그들이 겪는 갈등을 보며 인공지능과의 사랑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지극히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사랑을 하며 상대에게 더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되고 상처받는다. 나를 더 맹목적으로 사랑해주길 바라기도 하고, 사랑을 증명해달라며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기도 하고, 상대가 줄 수 있는 혹은 주고 있는 사랑은 간과한 채 내가 바라는 사랑을 달라며 억지를 부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사랑을 통해 사랑은 서로에게 갇히는 것이 아니고 나의 기준에 상대를 맞추려 애쓰는 것이 아님을 배우기도 한다. 상대를 하나의 인격을 지닌 주체로 보는 법을, 사랑이라는 이유로 상대를 목적격으로 대하는 것이 난폭함을 깨닫고 주격으로 대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길 바랐지만 그렇지 않음을, 자신이 사만다에게 유일한 존재이길 바랐지만 그렇지 않음에 상처받고 끝없는 회의감에 사만다를 잃고 나서야 진짜 '사랑하는 법' 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사만다가 아닌 전 부인 캐서린에게 편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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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에게,
 
당신에게 사과하고 싶은 것들을

천천히 되뇌고 있어
서로를 할퀴었던 아픔들
당신을 탓했던 날들

 

늘 당신을 내 틀에 맞추려고만 했지

진심으로 미안해
함께해 왔던 당신을 늘 사랑해
그 덕에 지금의 내가 있어

 

이것만은 알아줘
내 가슴 한 켠엔 늘 당신이 있다는 걸
그리고 난 그게 너무 고마워

 

당신이 어떻게 변하든
이 세상 어디에 있든
내 사랑을 보내
언제까지나 당신은 내 좋은 친구야
 
사랑하는 테오도르가
 

 

제목의 그녀(her)가 단순히 사만다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 대상에서 주체가 된, 사만다를 포함한 테오도르의 모든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또한 감독이 보여주고자 한 것은 단순히 인공지능과 인간의 사랑이라는 독특한 사랑의 양상이 아니다. OS라는 SF적 요소는 수단이었을 뿐, 목적은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한 인격체들의 소통과 깨달음, 사랑과 관계의 본질인 것이다. 그러니 인공지능과의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왈가왈부는 무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성장한 테오도르를 응원하며 이만 리뷰를 마무리한다.

 

 

[강안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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