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타인은 정말로 지옥일까? [사람]

글 입력 2020.05.23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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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로부터 멀어질래야 멀어질 수 없다. 나 그리고 타인, 이 둘의 근본적인 관계성에 대하여 철학자들은 고민하고 또 고민해왔다. 타인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그들은 우리에게 필요 이상의 존재일까?

 

흔히들 말하는,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명제가 있다. 이 문구는 철학가, 사상가들의 오랜 연구 주제였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최근, 원작 웹툰을 바탕으로 방영된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도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은 명쾌히 풀리지 않은 채로 우리 곁에 자리한다. 누군가에게는 타인이 마냥 긍정적이고 삶에 반드시 필요한, 원동력과 같은 존재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에 따라 양극화된 타인에 대한 감정은, 천국 혹은 지옥이라는 이름 하에 나와 다른 특성을 지닌 사람의 의미를 규정하게끔 한다.

 

타인을 지옥이라 일컫는 건 과거와 비교해 오늘날에 있어 보다 더 만연해졌는데, 이는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듯하다. 공존하는 삶보다는 개인의 삶이 중요해졌고,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조차도 가깝지만 먼 남으로서 정의하고 인식하는 게 더 익숙해진 사회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타인은 지옥일까? 라는, 마냥 간단하지만은 않은 물음은 필요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스스로 한 번쯤은 질문해보아야 할, 꽤 깊은 고찰이 필요한 문구이자 현 사회에 두드러져 보이는 것 중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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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위대한 철학가인 장 폴 사르트르는 그의 대표희곡, <닫힌 방>을 통해 실존주의 사상의 위대한 면모를 드러내 보였다. 특히 사르트르는 희곡 <닫힌 방>으로부터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대표적인 철학적 사상을 만들어냄으로써, 인간의 실존주의를 추적하고자 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나의 존재를 파악하고, 진정한 나를 확립한다. 즉, 모든 사람들은 타인을 기준점으로 삼아 나의 모습과 비교, 대조함으로써 본연의 특성과 가치를 찾아 나간다. 반면, 비교 대상인 타인이 나보다 더한 이익을 얻거나 멋진 인생을 살아갈 때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더없이 초라하게 여기기도 한다.

 

경쟁사회인 오늘날, 타인의 시선과 그것에 맞추어 행동하려는 '나'라는 존재는 본래의 내가 지닌 모습과 양극화된 채로 하나의 간극을 형성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을 무분별하게 비난하고 깎아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게 사회적 동물이라 불리는 인간의 본성이자, 어쩔 수 없는 본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SNS나 현실에서의 이상화된 가면으로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도 한다. 그만큼 타인이 개개인에게 행사하는 영향력은 크며, 수많은 시선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을 더더욱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타인과의 관계가 멀든지 가깝든지 간에 본인만이 아는 하나의 비밀을 감추고 있기도 하다.


 

 

타인은 지옥이다,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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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 원작 웹툰을 기반으로 제작돼 2019년 방영된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는 앞서 말한 사르트르 희곡의 대사를 제목으로 설정하여 타인과 나의 관계성을 보다 직접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로써 보여준다. 이는 상경한 청년 윤종우가 서울의 낯선 고시원 생활 속에서, 타인이 만들어낸 지옥을 경험하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담았다. 꿈을 좇기 위해 상경한 주인공이 값싼 주거지를 찾다가 살게 된 에덴고시원에는 어딘가 모르게 특이하면서도 꺼림칙한 언행을 불사하는 타인들이 공존해 살고 있다.

 

고시원 사람들은 개개인에게 주어진 방을 사용하고 있지만, 월세로 19만원을 받는 그곳은 사실상 문으로만 각자의 공간을 점유해놓았을 뿐 모든 것을 공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군다나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타인들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불쾌한 감정을 매번 심어준다. 그들은 주인공을 계속해서 몰래 지켜보며 부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그곳에는 비밀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곳의 비밀은 캄캄한 암흑 속에 둘러싸여 있다.

 

드라마 초반에는 택시 기사의 암시적인 대사가 등장한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 본성을 타고 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누구나 다 악한 본성을 품고 살아가지만, 그걸 억누르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은 사실상 공존할 수 없는 동물이며 필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존해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한 택시 기사의 대사는 주인공이 곧 마주하게 될 타인의 이면과 실상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과연 주인공 윤종우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타인을 배경으로 한 고시원의 비밀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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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0부작으로 구성된 드라마는, 부제 '가스라이팅'으로 막을 내렸다. 이때 가스라이팅이란, 상대의 행동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현상을 일컫는 심리학 용어다. 다시 말해, 타인의 심리와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하고, 그로 인해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함으로써 본인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러한 용어는 영국의 연극, <가스등>에서 비롯하였고 정신적인 학대 현상을 의미한다.

 

본 연극에서 남편은 집안의 가스등을 일부러 어둡게 만든 후, 부인이 집안의 등이 어두워졌다고 말하면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며 오히려 아내를 탓한다. 이에 아내는 자신의 인지와 판단 능력을 의심하면서, 오롯이 남편에게 의지하게 된다. 진짜를 알아보지 못하고, 본인 외부에 자리한 존재를 통해 왜곡되어진 가상의 나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사람의 정신에 깊숙이 파고드는 가스라이팅 행위는 치밀하고도 잔혹하며,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이 직관적으로 와닿는 듯한 느낌이다.

 

이처럼 가스라이팅이 전반적으로 의미하는 건, 타인이 나에게 있어 끼치는 파급력이다. 우리는 타인의 영향에 불가피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한 영향이 극단에 치닫게 되면 자기 자신까지 의심하게 되는 동시에, 모순적인 존재로서 본인을 변모시킨다. 한편, 나의 존재를 규정하게끔 만드는 타인은 두 가지 성격을 통해 분류된다. 이상적이고 선한 가치를 주고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을 자책하게 만들고 자존감을 끝도 없이 하락시키는 사람도 있기 마련인 셈이다.

 

가스라이팅은 사람 대 사람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관계성을 획득한 채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지곤 한다. 특히나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 연인, 친구, 심지어는 길거리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과의 관계 등 모든 인간의 관계는 긍정과 부정의 경계에 놓여있다.

 

그러한 가스라이팅을 염두에 둔 채 전개된 마지막 화에서의 윤종우는, 결국 타인들로부터 자신의 자아가 완전히 분열됨을 느끼고 이분화된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주도적으로 살인을 행하는 자아와 그러한 자신을 따르는 자아로 분열된 그는, 스스로를 폭력적인 주체로서 개념화했다. 가스라이팅의 실체를 가감 없이 보여주어 지옥으로 대변되는 타인의 존재를 세밀히 묘사한 드라마를 통해, 우리는 어떠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타인은 정말로 지옥일까?


 

 

결국, 우리가 만들어 낸 타인의 존재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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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필연적으로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러나 그들은 확연히 나와 다른 존재임이 분명하다. 데칼코마니와 같이 완전히 똑같을 수 없기에, 사람들은 서로에게 실망을 하기도 하고 갈등하기도 한다. 반대로, 내가 가지지 않은 무언가를 가진 사람으로부터 깨달음을 얻기도 하며 인생을 변화시킬 만큼의 막대한 영향력을 전해 받기도 한다.

 

'타인은 지옥이다'는 우리에게 타인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시사해주지 않는다. 물론 부정적인 측면만을 부각해 보여주긴 했지만, 그것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타인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반문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고립과 소외가 주를 이루는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초래해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실상이지는 않은가에 관해 간접적으로 귀띔해주고 있다.

 

똑같지 않기에 갈등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그건 아마도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인간의 본능에 기반한 결과일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러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가 타인과 나 자신의 관계를 최종적으로 결론짓게 해준다. 바로 지금, 우리가 만들어 낸 타인의 존재가 우리 앞에 있는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태도, 그것에 대한 답은 아마도 '존중과 사랑'일 것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각자가 지닌 사랑의 형태를 주고받는 것과 동시에, 타인의 시선과 무조건적인 잣대로부터 나 자신의 고귀한 가치를 지켜내는 것, 그게 바로 세상을 의미 있게 살아나갈 수 있는 나름의 방법론이지 않을까. '타인은 천국이다'라는 명제가 우리의 세상에 도래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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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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