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가장 좋아했던 소설이 생각난다. ‘노빈손의 무인도 완전 정복’이란 만화책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로빈슨 크루소의 내용을 가지고 어린이들에게 쉽게 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책의 내용은 상세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은 ‘흥분, 재미, 신남’이었다. 이 책의 표지에서 보면 알 것이다. 무인도에서 살아남는데 저렇게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니 지금의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책이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은 항상 누군가와 함께 있기에(부모님, 선생님, 친구들 등) 혼자서 행동하는 주인공이 즐거워 보였나 보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혼자가 되는 것 그 ‘고독함’을 서서히 알아가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표류 이야기를 싫어한다.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삼켜버리기에 말이다. 표류가 된다면 나는 살 방법을 모르기에 그동안의 표류 책은 이 정도 지식은 있어야 생존 가능하다고 외치는 것 같았다. 반면 이 책은 생존의 방법을 알려주기보다는 혼자가 됨의 두려움, 고독함을 우리가 어떤 식으로 이겨내는가에 대한 심리 묘사가 주된 내용이다.
책 ‘어드리프트’는 41일간의 표류 이야기를 담았다. 그 가운데에서 살아남은 이의 기억 재생이다. 중간중간 표류 이야기와 함께 그녀의 애인인 리처드와의 이야기도 함께 나온다.
두 이야기가 연결되면서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그리움은 강해지고, 혼자 남은 자의 쓸쓸함만 남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만 살아야 한다. 그것이 어쩌면 리처드는 사라졌지만 마지막 남은 천막이 남아있는 이유일 것이며, 배가 전복되지 않은 이유가 될 것이다.
눈 떠보니 혼자가 된 여인은 자신이 왜 살아남았는지 스스로를 원망하면서 이 모든 원인이 대자연을 원망한다. 살아남은 이는 자신의 생존에 감사가 아닌 생존에 고통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그런 고통 속에 있지만, 그 고통을 풀어낼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없다. 가족도, 친구도 모두 없고, 그저 망망대해 속 말 그대로 혼자가 된 것이다.
그런 그녀는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모르는 한목소리를 듣게 된다. 자신의 내면의 소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녀는 그 목소리와 싸운다. 자신의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삶을 외면하고 슬픔에 잠긴 감성과 그런데도 살아야 한다는 이성과의 충돌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써 사용되고 있다. 이성은 한없이 날카롭고 그녀에게 다시 고통을 주지만 살 방법을 알려준다. 그렇게 혼자이지만 둘이서 생존하게 된 것이다. 완전히 역할이 분할되어 살아가게 된다.
생존에 이성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성도 감성이 있기에 존재한다. 어쩌면 이성이 발휘하는 것도 살고 싶다는 감정의 부탁으로 생긴 것이다. 리처드와의 향수가 가득한 배에서 리처드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것은 아무것도 할 게 없는 바다 한가운데에서는 그 하루를 극복할 하루의 일과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인생은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단다. 업 - 윈드(바람을 정면에서 받는 것)일 때도 있고, 다운 - 윈드(바람을 뒤에서 받는 것)일 때도 있어”
- P. 310
에필로그 속 그녀는 행복해 보인다. 자신의 딸에게 위와 같은 말을 하면서 인생을 알려준다. 그녀가 41일간의 표류 그리고 그 이후의 삶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녀는 바닷속에서 아픔을 느꼈지만, 그 바다의 고통을 외면하지는 않았다.
글로 써내면서 당시의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 고통과 정면 승부를 보는 것이다. 우리는 큰 해일과 같은 공포 그리고 생존에 대한 크나큰 공포는 아니지만, 각각의 공포를 느끼고 살아간다. 당장의 공포는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이지만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어디서 불어올지 모르는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바람이 정면으로 올 때는 그 바람의 온도를 즐겨보고, 뒤에서 불어올 때는 그 바람으로 나의 길을 조금 더 빠르게 나아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