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이 글은 어느 도망자의 반성문입니다. - 장경림 에디터와의 만남

글 입력 2020.05.20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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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고백할 게 있습니다. 600번째 문화 초대를 신청하고 약속 당일 인터뷰이와 만나는 과정에서 제가 인터뷰어란 자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개인이나 집단을 만나 정보를 수집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라는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그날의 대화도 인터뷰에 속하긴 하겠죠. 그러나 이 글은 [Project 당신] 카테고리에 있는 다른 글들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날 묻기보다 말하기 위해 장경림 에디터를 만났으니까요.

 

저는 원래 사람과 대화하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그만큼 혼자 있는 시간도 즐깁니다. 그런데 최근 몇 개월은 유독 사람을 좋아하는 정도가 심했습니다. 혼자 있으면 쉴 새 없이 차오르는 불안감에 당장이라도 질식할 것 같아 무서웠습니다. 만나자는 모든 제안에 응했고 시간이 비면 강박처럼 약속을 잡았습니다. 언제나 말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내가 어떤 상황에 부닥쳤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공유하면서 이대로 가도 괜찮은지 확인받고 싶었습니다. 이번 문화초대에 신청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습니다.

 

수많은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 중 이번 프로젝트의 인터뷰이로 장경림 에디터를 선택한 이유는 올해 초 아트인사이트 [사람] 카테고리에 올라온 <그렇게 에디터가 되었다, 직업으로서의 에디터>라는 오피니언 때문입니다.

 

 

내 생에 처음으로 직업이라는 것이 생겼다. 학생증이 아니라 사원증을 내밀게 되다니. 에디터라는 직책으로 취업이 된 것이다. 2월 졸업을 앞두고 아직은 학생의 신분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26살, 나는 이제 사회인이다. 이곳에서 글을 쓰며 나의 업이 에디터가 될 수 있을까, 수없이 고민하고 탐색하고 방황을 하며 지내왔다. 그리고 그 고민에 보란 듯 내 인생의 큰 결실을 맺었다. 참으로 묘하고 신기한 날들이다.

 
나는 신문방송학과도, 사진학과도, 디자인학과도, 언어 전공도 아니었다. 나는 식품과 공학을 전공한 누가 보아도 에디터와는 상관없는 공부를 했다. 내가 선택한 전공이었다. 하지만 선택에 많은 후회와 고민을 했었고, 전공이 맞지 않아서 동기와 주변 사람들보다 긴 방황을 했다. 내가 휴학을 하는 동안 졸업을 하는 친구도, 자격증을 따는 친구도 많았다. 그 주변에서 나는 전공에 대해서 말할 것이 없었다. 비참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 20대는 한 번뿐인데 시간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에디터가 되었다, 직업으로서의 에디터 中

 


맞지 않는 전공으로 방황했지만, 여러 경험에 부딪히면서 에디터의 꿈을 갖게 되었고 결국 그 꿈을 이뤘다는 글은 제게 큰 위안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잡지 에디터가 되기를 바라고 있으니까요. 네, 그렇습니다. 저는 제가 되고 싶어하는 직업의 현직자, 잡지 에디터 선배를 만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현재 저는 잡지 기자에 관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2월부터 시작한 교육은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장경림 에디터를 만났던 5월 3일은 교육을 시작한 날로부터 3개월이 지난, 배우는 게 마냥 재밌었던 시기를 지나 취업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었습니다.

 

장경림 에디터는 밝은 미소로 저를 맞아주었습니다. 카페에 들어가면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상대와 잘 얘기할 수 있을까 긴장했던 제 마음을 눈 녹듯 사라지게 하는 미소였습니다. 음료가 나오고 본격적으로 하고 싶었던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현재 상황, 고민, 궁금한 점이 마구 쏟아져 나왔습니다.

 

요청에 응하고 약속 장소로 오면서 예상했던 그림과는 달랐을 것입니다. 형식을 갖춘 인터뷰가 아니라 개인적인 고민 상담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경림님은 불편한 내색은커녕 마치 저와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처럼 편하게 저의 고민을 들어주고, 오랜 방황과 고민 끝에 지금의 직업을 꿈꾸기까지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해주었습니다.

 

에디터로서 어떤 일을 하는지, 일이 힘든지는 않은지 물었습니다. 자신의 업무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줬던 경림님은 확신에 찬 얼굴로 너무나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갈망하는 일을 하면서 만족까지 하다니. 처음엔 그 확신이 마냥 부럽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그가 있기까지 거쳐 온 과정을 들으니 부러운 대신 납득하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오랜 시간 나를 보호해줬던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면 불안하게 마련입니다. 마지막 학기가 끝나고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학생이 아닌 제가 너무나 어색합니다. 많은 취업준비생의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울타리 밖에 선 온전한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이가 울타리를 벗어나야만 불안한 건 아닙니다. 경림님은 모두가 들뜬 대학교 저학년 때부터 자신이 누군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고 합니다. 남들보다 일찍 고민한 덕에 지금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방황의 기간 경림님을 지탱해준 건 ‘일기’였습니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진심을 매일 밤 일기장에 꾹꾹 눌러 담으면서 고민과 마주했습니다. 일기를 쓰냐는 질문에 자신 없게 SNS에 가끔 생각을 담은 글을 올리곤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경림님은 단호하게 누군가를 의식하는 글과 일기는 다르다며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일기 쓰기를 적극적으로 권장했습니다.

 

저도 생각이 많은 편입니다. 책이나 영화를 볼 때도, 혼자 길을 걸을 때도, 수업을 들을 때도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곤 합니다. 수많은 생각이 뒤엉키지 않으려면 밖으로 분출해야 하는데 제겐 그 수단이 글이었습니다. 경림님은 제가 당연히 일기를 쓸 줄 알았다며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도 속으로 ‘그러게. 나는 왜 일기를 쓰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저는 제 고민을 남들에게 검증받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혼자 힘으론 고민과 마주하기에 역부족이니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거죠.

 

그날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대화의 대부분이 잡지 에디터가 되고 싶은 저의 고민이었습니다. 제가 제일 먼저 던진 질문은 ‘어떻게 에디터가 되었나?’였습니다. 되고 싶은 직업도, 하고 싶은 일도 명확한데 정작 가장 중요한 ‘어떻게 되는지’는 막막했습니다. 학기를 마치고 딱 맞는 시기에 채용공고가 뜨자 지원했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생각보다 간단한 대답에 약간의 허무함이 느껴졌습니다. 많은 직업이 지원과 합격의 과정을 거치는데 그 단순한 과정을 저는 왜 이렇게 어렵게 받아들였을까요.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과 더불어 이전에 했던, 지금 하는 모든 활동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경림님은 제가 질 좋은 활동을 많이 했다며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독려해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계속해서 조급한 마음을 쏟아냈습니다. 내가 정말 에디터가 될 수 있을지, 된다고 해도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그때 제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들렸습니다.

 

“금미님은 잘하고 있어요. 자기 검열하는 태도만 버리면 돼요!”

 

사실 이 말을 그날 처음 들은 건 아닙니다. 최근 많은 이에게 불안한 속내를 털어놓았고 많은 격려를 받았습니다. 따듯한 격려에 마음을 놓는 것도 잠시, 시간이 지나 혼자 있으면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러나 경림님의 말만큼은 몇 주가 지난 지금도 저를 지탱해주고 있습니다. 현직자라는 점도 있겠지만, 그때 보였던 진지한 표정이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초면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옛날 경험까지 끄집어내 제 모든 불안을 토로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소한 일화 하나하나에 자책과 의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경림님은 비슷한 경험을 들려주면서 ‘자신도 비슷한 것을 겼었고 이렇게 이겨냈다, 그 일이 금미님만의 잘못은 아니다, 예전보다 지금 더 나아졌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며 위로해주었습니다.

 

현실적인 조언도 많이 들었습니다. 성급하게 아무 직장에나 들어가는 대신 여유를 갖고 자기만의 포트폴리오를 쌓는 게 장기적으로 좋을 것이라며 어떤 식으로 포트폴리오를 쌓으면 좋은지 세세하게 알려주었습니다.

 

저와 경림님은 둘 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구석이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에너지를 얻고 경림님은 혼자서 에너지를 충전한 다음 사람과 만나는 것을 즐깁니다. 우리는 서로의 방식을 존중했습니다. 하지만 경림님은 강박처럼 매일 매일 사람과 만나는 저에게 조금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를 조심스럽게 권했습니다.

 

한 번의 티타임으로 제 마음 상태가 바로 괜찮아질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불안하고, 조급하고, 자책하고, 지쳐있습니다. 5월 3일의 만남을 담은 글이 이렇게 늦게 올라온 게 그 증거일 것입니다. 열흘이 넘는 기간 동안 이 글을 완성하기를 매일 시도하고 매일 실패했습니다. 글쓰기가 이토록 막막한 게 얼마만인지 모릅니다. 제대로 된 인터뷰 기사가 될 수 없는 이 글이, 저의 초라한 속내가 담길 수밖에 없는 이 글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끔찍하게 싫은 이 글을 아트인사이트에 올리는 게 무서웠습니다.

 

오늘은 기념비적인 날입니다. 아주 오랜만에 하루 종일 혼자 있는 날이며 오랜 기간 저를 괴롭혔던 이 글을 드디어 끝내는 날입니다. 이렇게 빨리 완성할 수 있었다니. 기쁨과 동시에 허무함도 밀려옵니다. 이 쉬운 일을 애써 회피했던 지난날의 제가 원망스럽습니다.

 

요즘 많이 듣는 말이 있습니다. 그날 티타임에서도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너는 문제가 뭔지 다 아니까 이제 해결하기만 하면 되겠네.”

 

네. 저는 뭐가 문제인지 다 압니다. 골머리를 앓게 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은 다 제 마음가짐입니다. 조금만 덜 자책하고 덜 조급하면 해결될 것이 훤합니다. 알면서도 더 나은 해답을 갈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실행해야 할 때입니다. 실행의 첫걸음은 잠들기 전 아무도 없는 방에서 일기를 쓰며 제 진심과 마주하는 일입니다.

 

좋은 시간이었지만, 고민을 털어놓기에 급급해 경림님을 더 알아가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경림님이 아트인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저와의 공통 분모를 많이 찾았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 진하게 남습니다. 결과적으로 경림님이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인지 알려주기는커녕 이렇게 제 얘기만 가득한 글을 남기게 됐다는 것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각자의 일정상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다다랐을 때 경림님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궁금한 게 있으면 어서 질문해달라고 했습니다. 다급하게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물었습니다. 영화 취향을 듣고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시리즈를 좋아하냐고 묻자 환한 미소와 함께 하이파이브가 돌아왔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만나 에디터라는 주제에서 벗어나 영화 얘기를 포함해 여러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땐 제 마음도 전보단 안정적일 것입니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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