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노동과 정체성의 회복에 대한 잔잔한 이야기, 영화 '파도를 걷는 소년'

글 입력 2020.05.2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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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 노동감독의 특이한 소재


 

최창환 감독은 '노동 영화감독'이다. 그는 대구를 기반으로 비서울,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의 하층부에 몰린 자들이 서로를 착취하는 서글픈 상황을 잡아내는 작품을 발표해왔다. <그림자는 없다> <호명인생>은 노동현장에서 그려지는 차갑고 냉혹한 노동자의 현실을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고, 최근 전태일 재단이 운영하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노동영화제'로 부터 제안을 받은 <내가 사는 세상>에서는 막 사회에 진입한 주인공들이 노동현장에서 마주한 차가운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그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그의 영화철학을 알 수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숭고했던 노동의 가치가 점점 퇴색되고 있다고 느낀다. 자본이 자본을 만드는 대한민국 경제구조가 노동의 가치를 절하시켰고, 자본 아래 놓인 법과 체계가 노동자들의 꿈과 인권을 지키지 못하게 만들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최창환 감독은 동시에, '악'으로 위치한 고용주에게 모든 화살을 돌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엄밀히 말하면, 그들 역시 사회 시스템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창환 감독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현대사회의 경제구조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그의 철학은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최창환 감독은 기업 '아사히글라스'의 해고자들을 응원하는 조끼를 입고 레드카펫에 섰다.

 

이런 감독 정보를 처음 접하고, 이번 영화의 시놉시스를 보았을 때 처음 의외라고 생각한 부분이 있었다. 우선 <파도를 걷는 소년>의 시놉시스는 아래와 같다.

 


제주에서 외국인 불법 취업 브로커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 2세 김수. 폭력전과로 출소한 수는 사회봉사로 해안을 청소하다가 바다에서 서핑하고 있는 서퍼들의 모습에 빠진다.

 

쓰레기통에서 우연히 주운 보드를 가지고 무작정 바다에 뛰어든 수. 그런데 제주 서퍼 해나가 위험하다며 수에게 태클을 건다.

 

수는 서프숍을 운영하는 똥꼬와 서퍼 해나에게 천천히 서핑을 배우게 되고, 서핑에 빠져들수록 외국인 불법 취업 브로커 일은 점점 잊게 되는데….


 

이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파도를 걷는 소년>의 소재는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이주노동자 2세. 두 번째, 서핑. 첫 번째 소재의 경우, 이주노동자는 오늘날 회자되는 중요한 이슈 중 하나다. 사회는 물밀듯 들어오는 이주 노동자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 이들에 대한 혐오 문제는,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창환 감독의 작품으로서도, 노동을 착취당하는 인물들을 그린다는 점은 일관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서핑'?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서울에 사는 평범한 20대로서 서핑의 이미지는 부유한 청년들이 즐기는 고급 취미다. 물론 서핑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낭만적이다. 가끔 거세게 몰아닥치는 파도에 몸을 맡기는 이 오락 행위는, 그 자체로 인생에 대한 낭만적 비유이면서 청춘의 이미지를 적절히 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주노동자와 서핑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결합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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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정체성 회복에 대한 이야기


 

김수는 이주민 노동자 2세다. 영화의 영어 제목(The Boy From Nowhere)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간다. 심부름이란 불법 브로커일과 같은 위험천만한 일로, 타고난 근력으로 주먹을 휘두르기도 하였다. 그는 매일 밤 윤리적이라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자신의 손을 보면서 고독함을 느낀다. 이러한 김수의 삶을 영화는 처음부터 뚜렷하게 드러낸다. 김수는 바다에서 헤엄치는 사람들을 불만스럽고 약간은 질투하듯 바라볼 뿐, 그들과 함께 어울려 놀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김수 삶에도 따뜻한 빛을 안겨주는 것들이 있다. 하나는 고향인 하이난에서 어머니가 보내온 편지고, 다른 하나는 김수를 친형같이 따르는 필성이다. 이 영화에서 필성은 보다 약하고 의존적인 김수로 그려진다. 필성은 김수를 동경하는 인물로, 서핑하는 형을 따라 서핑을 배우는 의존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성은 김수와 구분될 수 없는 '또 하나의 김수'로 비춰진다. 하지만 필성은 동시에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김수와 마찬가지로, 영화의 두 번째 주인공이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영화의 후반 부분 때문이다. 김수가 고향을 가겠다는 말에, 필성은 김수에 대한 의존을 관두고 김수의 앞길을 축복하기 위해 그를 잡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김수의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필성의 성장을 보는 것도 이 영화의 묘미이다.

 

이와같이 '세상의 주류'로부터 소외된 김수와 필성을 둘러싼 세계는 두 개다. 하나는 갑보의 세계로, 이곳은 냉혹한 노동의 세계다. 민족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갑보는 '가족 같은 회사'라는 말로 김수를 회유한다. 하지만 사실 갑보는 경제적 이득을 위해 김수와 필성을 이용하고, 나아가 폭력을 행사하는 잔인한 '사장님'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블루 웨이브의 세계가 있다. 똥꼬와 해나, 그리고 서핑이라는 관심하에 평등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떠드는 청년회가 있는 관계의 공간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똥꼬는 '형'으로서 존재하며, 아무런 조건 없이 김수와 필성에게 호의를 베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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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가 서핑에 관심을 두게 되고, 이후 블루웨이브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 계기가 꽤 흥미롭다. 처음 김수가 서핑에 대해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어머니의 편지로부터였다. 어머니의 편지는 그의 고향, 그가 '소속되어야 할 가족'을 의미한다. 소속감에 대한 욕구는 어머니의 편지에 그려진 서핑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즉, 그에게 서핑이란 '소속감의 회복'이라 할 수 있다. 고향의 그리움을 상징한다는 면에서 '정체성의 회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김수가 부러진 서핑보드를 어설프게 고쳐 파도 타는 연습을 하는 것도, 어설프게나마 그러한 욕구 풀려는 유아적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보통이라면 김수의 어설픈 서핑보드가 부러지면서 끝났을 테지만, 김수의 어설픈 서핑은 블루웨이브의 사람들의 눈에 띈다. 그의 부족한 욕구를 채워주려는 듯이, 해나와 똥꼬는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푼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김수는 정체성을 회복한다. 주먹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그의 변화가 감지된다. 이전의 김수는 자신의 주먹을 후회스럽게 바라보았지만, 정체성이 회복된 김수는 자신의 힘을 확인하듯이 자신의 주먹을 바라본다.

 

김수가 하이난으로 돌아가 서핑샾을 운영하는 것은, 그야말로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그는 갑보가 강요하던 '냉혹한 노동의 세계'를 떠나, 스스로 즐겁게 노동하는 '주체적 노동의 세계'에 편입된다. 나는 이 부분에서 '노동의 가치를 잃어버린 현실'에 대한 감독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이러한 맥락에서 '엄마, 나 일 다녀올게'는 그야말로 관객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선사한다. 시사회에서 감독은 김 수를 맡은 배우의 잔잔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반복해서 듣게 하기 위해서라 밝히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중국어로 한 번, 한국어로 한 번 대사를 한 것이 좋았다. 그것은 한국에서 그가 느낀 회복의 기억-일례로 싸웠던 똥꼬와 함께 서핑을 타던-을 반영하는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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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아스러운 엔딩, 부족한 서사, 그래도 좋은 성장 영화


 

기본적으로 영화는 '김수의 정체성 회복'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하지만 관객으로서 김수가 하이난으로 돌아가는 것은 다소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물론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은 표현되지 않아도 내재해있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이는 영화 바깥에서 가질 수 있는 생각이다. 영화 내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표현되지 않는다. 어머니가 보내온 편지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그리움을 유추할 수는 있지만, 그 외에는 자세히 묘사된 바가 없다. 영화에서는 김 수가 따뜻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수가 갑자기 필성에게 한국을 떠난다고 선언하는 것은 당황스럽게 느껴진다.

 

또 앞서 기술했듯, 이 영화가 '김수의 정체성 회복'에 초점을 맞추느라, 다른 캐릭터들의 서사가 부족해졌다는 점이다. 필성의 경우, '연약한 김수'로서 존재하다가 분화되었다는 점에서 꽤 명확한 캐릭터 서사를 가졌다. 하지만 다른 캐릭터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 묘사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똥꼬, 해나, 갑보 사장은 단순히 김수를 둘러싼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할 뿐, 그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시사회에서 어떤 관객이 똥꼬를 '절대자'로 표현하려 했느냐 라는 질문을 하였는데, 아마 이는 똥꼬의 서사가 매우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왜 아무런 조건 없이 김수를 도왔는지 알 수 없으며, 그가 관대하고 유쾌하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서사가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말 그대로 '미스테리한 신적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해나는 배우의 맛깔나는 연기를 통해 나름의 친숙성을 획득하였으나, '개과천선한 일찐 누나'이상의 서사를 획득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정말 아쉬웠던 캐릭터가 해나다. 해나의 경우, 본래 서핑을 하다 죽은 오빠가 있다는 설정이 있었다. '서핑을 하다 죽은 오빠'의 존재는 조금 더 두드러졌다면 이야기를 또 다른 방식으로 전개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해나를 좀 더 입체적인 캐릭터로 만들었을 것 같다. 갑보의 경우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는 단순히 가해자로 표현되었을 뿐이다. 이런 주변 캐릭터의 부족한 서사는 이 영화가 근본적으로 '김수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 인물의 서사는 아쉬움으로 남을 뿐, 이 영화의 흠은 아니다.

 

이런 서사적인 부분 외에도, 소재에서 다소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영화에서 '이주 노동자의 문제', '서핑'에 대한 주제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독특한 억양과 캐릭터의 설정 외에 특별히 '이주 노동자'로서 드러나는 특성은 거의 없었다. 그들이 그냥 불법브로커일을 한다는 점만 드러날 뿐이다. 앞서 엔딩의 설득력에서 기술했듯이, 김수에게서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대한 묘사는 어머니의 편지뿐이었다. 사실 김수와 필성이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미 '이주 노동자'이야기로서는 힘을 잃은게 아닐까 싶다. 서핑도 비슷한 문제가 전개된다. 김수나 필성이 서핑하는 모습을 카메라상으로도 잡지 않은 이 영화가 굳이 서핑을 주제로 할 필요가 있었을까? 개인적으로 좀 오버해서 생각해보자면, 감독은 가장 소외된 계층에게 호화스러운 취미를 안겨주는 어떤 이미지의 전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또 개인적으로 음향이 뚜렷하게 들리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제주도 방언과 조선족의 억양이 섞인 말은 잘 들리지 않아 대사를 놓쳐버리는 상황이 많았다. 또 결국 어머니의 편지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음에도, 그 내용이 아주 짧게, 심지어 어두운 배경에 어두운 글씨로 쓰였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된다. 이러한 부분은 자막을 새로 달면 되는 점이고, 제작 측에서도 고려하겠다고 했으니 고쳐질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에 좋은 점수를 주고싶다. 영화는 '김수'라는 인물의 성장을 다루는 데 있어서 매우 훌륭한 전개를 보여줬다. 무엇보다 노동과 정체성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감독의 솜씨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하이난에 돌아간 김수의 이야기는 감독이 노동과 정체성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알 수 있는 영화였다. 또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어렵지 않은 영화적 언어로 관객들에게 전달한 점도 좋았다. 상영관을 나왔을 때 관객으로서 뭔가 훈훈한 마음을 가지고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오늘날에 시사하는 바가 컸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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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를 걷는 소년

The Boy From Nowhere


 

배급

매치컷㈜

 

제작

㈜컬쳐플랫폼

 

러닝타임

97분

 

관람등급

15세이상 관람가

 

국내개봉

2020년 5월 14일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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