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장 너다운 글 -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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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어렵다. 가볍게 끄적이는 일기 외에 무언가를 글로 써낸다는 것은 꽤나 골치 아픈 일이 되어버린다. 다른 누군가가 내 글을 읽는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되는 순간 어떠한 의미를 전달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크던 작던 어떤 식으로든 다소 진지해지기 마련이다. 타인의 시선이 개입되는 글쓰기가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이유다. 각자의 의도는 천차만별이겠지만 궁극적으로 특정한 ‘가치’를 전달하려는, 적어도 어떤 ‘가치’가 있는 글로 평가받고 싶은 욕심을 떨칠 수 없게 된다.
좋은 글에 대한 한 가지 확실한 답변이 있다면 그건 바로 가장 개인적인 글이라고 답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게 가장 ‘정직한’ 글을 의미한다. 뛰어난 작법과 수사학에 관한 논의는 차치하고 가장 가치 있는 글의 요소는 바로 ‘개별성’이다.
물론 개별성이라는 단어 자체가 굉장히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들리겠지만 적어도 글쓰기의 고단함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글쓰기가 가장 어렵다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
에세이, 논픽션으로서의 문학
에세이나 칼럼, 서평과 같은 글들은 픽션만큼의 예술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시나 소설과 같은 은유를 담고 있지 않아서 일까. 어떻게 보면 가장 개인적인 시선으로 서술되는 문장들이 문학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도 아이러니다.
미국의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는 에세이와 같은 논픽션 장르의 글들이 가장 자주적인 자기표현적 예술행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상당히 독특하면서 난해하다. 당신이 머리에 두건을 쓴 표지 속 남자에게 특별한 애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 글은 그저 자의식 과잉의 여느 꼰대 아저씨가 쓴 글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월리스의 글이 매력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닌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글을 썼던 사람. 스스로 사유하고 실존적 삶의 방식으로서의 글쓰기를 보여주었던 작가이다. 다소 편파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그의 문장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일상 이면에 잠복하고 있던 불편한 생각들을 자극하고 발견되도록 부추긴다.
그의 글에 대한 반응은 세 가지로 나타날 것이다. 잊고 있던 무언가를 밝혀줬다는 것에 대한 희열을 느끼거나 반대로 과격한 표현으로 인한 불쾌감과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아니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거나.
글 쓰는 삶에 대해
책에는 기존의 산문집에 실렸던 대표적인 글들과 함께 영화평론가적 기질이 드러나는 《데이비드 린치, 정신머리를 유지하다》, 책 <시간의 종말을 향하여>에 대한 가혹한 서평을 확인할 수 있는 《무엇의 종말인지 좀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종말인 것만은 분명한》, 정수론을 통해 수학 장르 문학을 예술적으로 해석하는 《수사학과 수학 멜로드라마》 등의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다양한 대상을 그려내는 월리스의 에세이를 통해서 인간과 삶에 대한 본질을 찾고자 분투했던 한 관찰자의 시선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글은 오직 그만이 전달할 수 있는 통찰과 통쾌함을 안겨준다. 일리노이주 축제 취재기로 시작하는 그의 글은 주변 사물과 사람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현시대의 부조리함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파악할 수 있다.
그는 자신만이 낼 수 있는 특유의 목소리를 통해 세상을 해석하고 모순, 갈등, 불안정을 마주하며 자신에 대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글을 썼다. 방대한 사물과 경험의 잡음 속에서 오류를 발견하고 이를 표현해내는 글들을 통해 그는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끊임없이 재현해내고자 했던 것이다.
월리스는 가장 괴짜스러운 방식으로 존재론적 글쓰기를 가능하게 한다. 《2007년 미국 최고 에세이》에 쓴 서문에서 좋은 에세이에 대한 기준을 설명하지만 도리어 인간다운 삶에 대한 시사점을 던져주기도 한다.
그의 표현대로 “완전 소음”, “정보와 맥락의 굉음” 즉 압도적인 정보량과 편협한 도그마에 의해 후퇴하는 현세대에서 자유롭고 교양 있는 성인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다.
그의 글은 여러 차원에서 불편하다. 그만큼 글 뒤에 자신을 숨기지 않고 진정성 있게 스스로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글은 자신의, 자신에 의한, 자신을 위한 활동이며 이로써 존재적 자아에서 떠나온 상태로부터 다시 떠나오기 위한 몸부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 David Foster Wallace Essays -
지은이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옮긴이 : 이다희
출판사 : 바다출판사
분야문학>에세이
규격138*214mm
쪽 수 : 288쪽
발행일2020년 04월 17일
정가 : 15,000원
ISBN979-11-89932-53-4 (03840)
[김지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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