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당신의 밤은 평온한가요?

수면과 나
글 입력 2020.05.14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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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이론’은 너무나 유명하다. 가장 하위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그 다음, 또 그 다음 욕구가 충족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 욕구 피라미드의 최하위에 존재하는 것은 바로 생리적 욕구이다. 식욕, 배설욕, 수면욕 등등 인간이라면 가지게 되는 생리적인 욕구를 의미한다. 가장 기본적인 이 욕구들이 충족되지 못한다면 그 다음에 존재하는 고상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욕구의 충족은 꿈꿀 수도 없어진다.

 

이 사실에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들은 본능적으로 이런 욕구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고 이겨보려 하지만 번번히 실패하곤 한다. 할 일이 산더미 일 때의 수면욕, 다이어트 중의 식욕, 중요한 시험 중간의 배설욕은 우리를 시험하는 듯 한계까지 몰아붙인다. 때로는 못이기는 척 넘어갈 만큼 그들의 유혹은 달콤하다. 그런데 이들 중 충족되지 못하는 욕구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닥 알지 않아도 될 듯한 이 궁금증을 나는 수면에 의해 알게 되었다.

 

 

[크기변환]앙리루소 잠자는 집시.jpg

 

 

나에게 있어 수면은 친한 듯 어색한 친구처럼 생각된다. 손쉽게 다룰 수 있게 느껴지면서도 막 다루기에는 불편하다. 나는 기본적으로 잠이 ‘아주 많은’ 사람은 아니다. 여행지에 가면 가장 먼저 일어나 준비를 마친 뒤 친구들을 깨우는 것은 내 역할이다. 아주 늦게까지 늦잠을 자는 일은 잘 없다. 낮잠도 자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일들은 사실 내가 그리 늦게 자지 않기 때문이다. 친구들보다 상대적으로 일찍 잠자리에 드니 일어나는 시간이 당겨질 수 밖에 없다. 낮잠은 졸려도 참는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시간이 날아가버렸다는 사실에 남은 하루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는 낮 시간의 잠은 나름대로 잘 다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밤 시간의 잠이었다. 원래 나는 잠에 대한 고민이 거의, 아니 전혀 없었다. 고3까지는 말이다.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 비교적 일찍 일어나는 수면 패턴과 한번 잠들면 잘 깨지 않는 안정성까지 가지고 있었다. 꿈을 좀 지나치게 많이 꾸긴 했지만 딱히 문제로 느껴지진 않았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의 수험기간을 보내면서 나의 수면패턴과 체질은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여전히 큰 문제가 없었다. 때로는 오히려 더 쉽게 느껴졌다. 밤에 깊이 잠들지를 못하니 깨기도 어렵지가 않았다.

 

수면의 패턴은 두 가지로 나타났다. 잠들지를 못하거나,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수험 생활에서 수면패턴을 무리해서 바꾸려 시도한 적도 없었기에 더욱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마 수험에 대한 부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할 뿐이었다. 덕분인지 수능 전날에는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수험장에 들어섰다.

 

 

[크기변환]도시위에서.jpg

 

 

문제는 대학에 온 이후로도 이 예민해진 수면이 마치 체질처럼 굳어져버렸다는 점이다. 잠귀는 점 점 밝아지고 잠이 오지 않는 날들과 새벽에 깨는 날들이 생겼다. 때로는 알람을 맞춘 시간보다 몇 시간은 일찍 깨버려 잠이 오지 않아 여유롭게 준비를 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애매한 상황들도 많았다. 내가 잠에 잘 들지 못한다고 말하면 아직 덜 피곤해서 그런 것이라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최고로 지쳤던 날에는 오히려 더 똘망똘망해지는 나를 발견했다. 몸은 너무나 지치고 피곤한데 정신은 각성되는 아이러니에 헛웃음이 나왔다.

 

원래도 많은 꿈을 꿨던 나는 점점 격한 내용의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꿈 속에서는 늘 누군가와 싸우거나 배신당하고 배신한다. 불길한 일에서 도망치기도 하고 아무리 풀어도 끝나지 않는 시험을 보기도 한다. 깨어나서 몇 초간은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아 황급히 핸드폰을 확인하기도 했다.

 

사실 이런 불면의 밤에 가장 힘든 것은 다음날의 일정과 체력이 아니었다. 방안이 물에 잠긴 듯 고요할 때도, 잠이 잘 온다는 소리를 유튜브에서 찾아 틀어놨을 때도, 무엇보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끊어낼 수 없는 생각의 꼬리잡기였다. 흔히들 새벽에 전 애인에게서 오는 ‘자니?’라는 문자를 유머로 종종 이야기하곤 한다. 실제로 밤에는 이런 일이 많은데, 새벽의 시간은 후회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많아질 때 우리들은 자연스레 과거의 만족하지 못했던 일들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후회는 마치 수렁처럼 저항할수록 더 옭아맨다. 생각을 끊어내지 못하면 숙면과는 점점 멀어진다.

 

 

[크기변환]살바도르 달리.jpg

 

 

새벽은 어떤 의미에서는 영감의 시간이기도 했다. 감정이 풍부해지며 낮에는 떠오르지 않았을 수 많은 이야기가 떠오르고 그것들을 글로 적는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개인적인 이야기라도 밤의 그것은 무언가 깊이가 달랐다. 더 극적이며 더 섬세했고 더 쓸쓸했다.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자 나에게서 도망치듯이 무언가 쏟아져 나오는 일은 알지 못했던 나 자신의 한계에 새로운 선을 그어주었다. 영감에는 아픔이 필수의 요소인가? 그렇기에 수 많았던 예술가들이 그리도 아팠던 것일까?

 

그러나 이런 오만한 생각은 얼마 가지 않았다. 결국 예술은 행복하기 위한 것이다. 슬픔이던 기쁨이던 오롯한 감정을 쏟아내거나 절제하기 위한 것이며 건강함이 없다면 이는 지속되지 못한다. 원하는 바를 추구하다 보면 마치 이끌리듯 병적인 순간에 다가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 시간은 너무나 강렬해 더 이상 그러한 상태가 아닌 한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못하리라는 비약에 가까워진다. 이 순간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이 되어줄까? 파멸적인 감정은 결국 내가 무엇을 추구하고 있었는지 조차 잊게 만든다.

 

 

[크기변환]내가 걸어잠근 마음의 문.jpg

 

 

결과적으로 나는 요즘 훨씬 잘 잔다. 가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면이 찾아오기는 하지만 뭐, 그 정도는 이제 일상 속 약간의 드라마랄까. 마음을 조금 가볍게 먹는 법을 터득해가고 있다.


감정이 안정된 후 나의 삶은 오히려 더욱 생산적으로 흘러갔다. 안정적인 일상이 돌아오면 더 이상 내 안의 강렬함은 남아있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정말로 나에게는 무엇도 남아 있지 못하며 무언가를 만들어내지도 못 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불안과는 반대로 지금의 나는 글을 규칙적으로 기고 중이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기도 한다. 노력이 필요한 순간에 더 이상 죽을 만큼 고통스럽지도 않다.

 

여전히 나는 잠과 완전히 친해지지 못했다. 어쩌면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역으로 숙면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고, 다른 이들의 잠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 누군가의 잠들지 못하는 밥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어졌다. 그로 인해 마음이 이 거친 시간에 조금은 부드럽게 녹아나기를. 당신의 오늘 밤은 편안하셨나요?

 




[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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