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유럽 여행 되감기 (1) [여행]

랜선 유럽 여행
글 입력 2020.05.1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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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내 방, 집 안, 베란다, 기껏해야 아파트 단지 산책길까지가 생활반경인 요즘. 해야 할 일은 쌓이는데 이상한 무력감이 찾아왔다. 이번 달 테마는 영화인데 관련해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주제는 쌓여가는데 글은 써지질 않았다. 그래도 마감일까지 꽤 시간이 있다. 학교 과제부터 해치우자는 마음으로 사진첩에서 즐겨찾기 폴더를 들어갔다. 기한이 지난 것들을 정리하다가 한 사진에 닿았다.


예전에 홀로 떠났던 유럽 여행 기록의 아주 작은 파편. 과일이며 주전부리를 잔뜩 사서 돗자리를 깔고 느직느직 시간을 보냈던 어느 가을날. 이 사진을 시작으로 여행하며 찍은 사진들을 쭉 둘러보았다. 사진 한 장마다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무슨 일이 있었고, 무엇이 그리도 좋았고, 뭐가 머쓱했는지.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질 않았다. 마지막 사진까지 감상하고 나서 이 생각을 했다. 당장 글을 써야겠다.

 

*


두 번째 수능이 끝나고 한창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며 핸드폰 할 무렵의 이야기다. 대학생이 되면 꼭 해봐야 할 TOP 10'이 온갖 커뮤니티와 포스팅에 오르던 어느 겨울, 리스트마다 빠지지 않은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유럽 여행 꼭 가라.

이때 아니면 시간 없다.

젊을 때 가야 체력도 있고, 시야도 넓어지고,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이국적인 건물과 맛있는 음식의 조합 때문에 이렇게들 좋아하는 걸까? 단순한 물음에서 찾아본 여행 후기였다. 후기를 쓴 모든 사람의 글에서 행복이 잔뜩 묻어났다. 대체 어떤 곳이길래 이십 대든 삼십 대든 사십 대든 오십 대든 좋다고만 할까. 보면 볼수록 설렜다. 누구는 인생이 바뀌었고, 누구는 외국인 친구를 사귀었고, 누구는 한국에서는 겪지 못할 에피소드가 생겼다. 처음으로 생각했다나도 유럽 여행 가고 싶다!


단순한 바람이 포부처럼 바뀐 것은 3년 전, 그러니까 2017년이다. 당시 2학년인 나는 학교 다니기를 아주 싫어했다. 물론 좋아서 다니는 사람이 몇이겠냐만은, 학벌 콤플렉스 때문에 힘들었다. 첫 번째 결과가 마음에 안 들어 학교를 관두고 다시 수능을 쳤건만 두 번째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서울 내 4년제면 괜찮지 않으냐는 주변의 위로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당시 나의 관점은 고3 때와 변함없었다. 학교 네임밸류가 인생 전부라 생각하고 출발선부터 글러 먹었다며 자책했더라지.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뭐가 될 리 없다. 1학년 때야 버릇처럼 공부해서 장학금도 탔지만, 유효기간은 1년이었나 보다. 공부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그렇다고 다른 활동을 하고 싶다는 의욕도 사라졌다. 평일에는 학교, 주말에는 아르바이트, 집에서는 누워서 핸드폰 하기며 새벽 느지막이 잠들기. 삶이 재미없었다. 공부를 안 하니 당연히 학점이 뚝 떨어졌다. 예상했던 일이라 딱히 감흥 없이 넘겼다. 그냥 쉬고 싶었다. 쉼, 휴식, 그럼 휴학할까?


엄마와 아빠는 당연한 것처럼 반대했다. 너 1년 늦었는데 더 뒤처지려고? 예상한 반응이라 멈칫하지도 않았다. 내 인생이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곧바로 날 선 말이 이어졌지만 무시했다. 나는 내가 잘 안다. 남들 보폭에 맞춰 달리려고 해봤자 나는 달리기는커녕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세세한 방향은 둘째치고, 어디가 앞인지 뒤인지조차 몰라서.


이미 휴학하겠노라 언질을 줬으니 계획을 세워야 했다. 충동적인 행동에는 더욱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결론적으로 휴학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휴식, 그리고 나를 알아가는 것. 아, 하나 더. 돈 모아서 유럽 여행 가기. 여행을 대학 생활을 중 가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만 했지 실행에 옮길 줄은 몰랐다. 이 결정에 영향을 준 건 뜻밖에도 성우 서유리 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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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언제 되새겨도 좋은 추억 하나쯤은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2018년 가을, 첫 혼자 유럽 여행이 시작되었다.

 

*

 

3주 동안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을 다녀왔다. 나라별로 좋았던 점을 꼽자면 순서대로 공원과 미술관, 강과 바다,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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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비싸고 맛없다길래 과감하게 영국에서는 식비를 아끼기로 했다. 그래서 매일 아침은 단돈 5파운드, 샌드위치와 과일이었다. 식사 장소는 숙소 앞 작은 공원이었다. 나뭇잎이 건물을 가리는 곳에서 잠이 덜 깬 채로 맞이하는 하루의 시작이란. '숲세권'을 문득 떠올렸던 것 같다. 집 앞에 푸른 곳이 있으면 이런 아침을 맞이할 수 있으려나. 아니다, 한국에서는 바빠서 못하려나. 사람들이 여행을 왜 좋아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영국에서 포르투로 떠나는 날은 다른 공원을 찾아갔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놀라운 경관에 숨을 급히 들이켠 이곳, 리젠트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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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가장 큰 공원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말인즉슨 나는 그 공원의 아주 일부만 거닐었다는 것이고. 이른 토요일 아침인데도 사람들이 꽤 있었다. 부메랑 던지기를 하며 노는 가족, 조깅하는 사람들, 뛰어다니는 커다란 개 두 마리. 그렇게 빨리 달리는 개를 처음 본 것 같았다. 목줄 없이 자유롭게 풀과 흙을 누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작은 땅덩어리가 인간뿐 아니라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들에게도 많은 제약을 준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자연이 얼마나 큰 존재인지도.


자연만큼이나 인간에게 큰 이로움을 주는 것도 있다. 미술관.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총 3곳을 방문할 예정이었는데 생각보다 나는 더 여유를 부리는 사람이었고, 한 곳이라도 즐거이 갔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했다.


테이트 모던은 생김새가 별나다. 붉은 벽돌 외관과 미술관이라기엔 약간 독특한 내부구조. 그 비밀은 영국의 밀레니엄 프로젝트에 있다. 이는 2000년을 맞이하여 추진한 사업으로 런던 아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밀레니엄 휠, 밀레니엄 돔, 밀레니엄 브리지, 그리고 테이트 모던 건설했다. 런던의 동남부는 북서부보다 인건비가 저렴하여 공장이 많았고, 그중 화력발전소를 내부 개조하여 테이트 모던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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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미술관 규모가 크고 작품이 다양했다. 처음 알았다. 뻑뻑한 눈으로 점심도 걸러 가며 머물 정도로 내가 미술을 좋아한다고. 특히 유화의 매력을 느꼈다. 작가의 붓 터치가 진득하게 묻어나온 작품 표면이 사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오묘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제각각인 캔버스 크기도 매력적이었다. 이 그림이 커다랬으면 어땠을까 혹은 이 그림이 작았으면 어땠을까 상상하며, 한 작품을 가까이에서도 보고 멀리서도 봤다. 작품을 보는 관점을 바꾼다는 것은 아마 이런 의미가 아닐까. 위치와 거리에 따라 시야도, 생각도 변한다. 모든 작품을 이런 식으로 살펴보고는 싶었지만, 관광객의 하루는 유난히 짧았다. 작품 앞에 길어야 3분 서 있었을 거다. 그러다 오래 톺아볼 만큼 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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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오기 전, 런던 미술관 산책이라는 책에서 이 작품을 봤었다. 그러나 책 사이즈에 맞춰서 작게 실려있었던 터라 무의식중에 작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훨씬 컸다. 작품 아래 선 내가 아주 작아 보일 정도로. 그리고 초록색이 다르게 보였다. 내가 생각하는 초록은 밝음과 생기였다. 여름날 무성한 녹음도, 푸릇푸릇한 새싹도, 모두 초록의 몫 아니었나. 색채의 이미지가 정반대로 바뀐 경험은 처음이었다. 초록이 '악'이라는 메타포로 많이 쓰인다는 것을 안 후에 왠지 모를 실망감을 느끼긴 했지만, 여전히 좋아하는 작품이다.


뭉크는 어려서부터 상실과 가까운 삶을 살았다. 다섯 살에 어머니의 죽음을, 열네 살에 그가 많이 따랐던 누이 소피아의 죽음을 겪었으니 말이다. 작품은 라는 제목답게 병상에 앉은 소피아와 그의 손을 잡고 절규하는 이모 카렌을 떠올리게 한다. 인물의 표정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서 오히려 선명하게 느껴진다. 아이의 몸이 어둑한 배경에 사그라지고, 세로 선으로 굵게 쏟아지는 초록색이 그 아이를 보며 울음을 쏟는 느낌.


후에 이 작품에 관해서 찾아보니, 같은 제목으로 색채 등이 조금씩 다른 여섯 개의 작품이 있다고 한다. 나머지 다섯 버전은 실제로 본 적 없지만, 아마 나는 이 그림을 가장 좋아할 것 같다. 가장 적당한 초록, 가장 적당한 슬픔, 가장 적당한 우울.

 

드넓은 리젠트 파크의 녹음와 뭉크의 초록을 뒤로한 채 어느 저녁, 포르투로 떠났다.

 

 

— 다음 주에 계속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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