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알고 있어서, 오히려 모르게 되는 것들 -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전시]

글 입력 2020.05.14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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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함에 물음표를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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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하고도 수개월 전, 영화 한 편을 보았었다.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이라는 흥미로운 제목보다 흥미로운 영화였고, 심지어 영화를 다 본 뒤의 생각거리들이 더욱 흥미로운 영화였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서로를 잘 안다’라고 확신했던 한 커플이 헤어지고, 남자는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어 결국 여자와의 재회를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다시 만난 두 사람, 그런데 남자 앞에 다시 선 여자는 자신이 전혀 다른 사람임을 주장한다. 모든 게 다 같은데, ‘이름’하나 다르다고.

 

그러니 이 영화에서 남자가 기억하는 여성의 이름과 관객인 내가 알고 있는 이 여성의 이름 ‘민정’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여성인 본인이 아니라고 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게 관객인 나도, 전 애인이었던 남자도 이 여성을 ‘민정’이라고 규정했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 그녀를 바라보아야만 했다. 우리가 “알던” 그 여성은 없다. 영화 말미에 이 남자는 민정 같지만 민정이 아닌 이 여성에게 이야기 한다. ‘당신이 당신임에 고맙다’고.

 

이 영화는 내게 당시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사실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었던 계기였다 . 태어날 때부터 모두에게 주어지는 이름, 그 이름부터 과연 ‘나’라는 사람을 말 할 수 있는 건지, 이름으로부터 시작되어 내 스스로가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나'인 것들, 이를테면 딸, 언니, 학생, 선배…이 모든 이미지가 과연 '나'일 수 있는지 말이다.

 

낯설었다. 내가 알던 내가 아니게 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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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 라는 이 그림을 첫 마주했을 때 황당함도 위 영화를 보고난 후와 다를 바 없었다. 이게 대체 파이프가 아니면 뭐람. 그림을 그린 르네 마그리트는 그럼 무엇을 보고 그렸고, 무엇을 그리고자 했을까. 알고 보니 그림의 제목은 <이미지의 배반>이었고 제목처럼 대단히 역설적인 작품이었다.


정말 사실적으로 잘 묘사된 이 그림, 이미지는 역시 그 대상의 재현에 그칠 뿐 정말 파이프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작품이었다면 그려진 그 이미지 그대로를 인식하곤, 그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했겠지만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은 다른 방식으로, 다르게 보고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장치처럼, 모든 그림에 하나씩 당연함 그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장치가 그의 그림 곳곳에 숨어있었다.

 

 

 

알고 있어서, 오히려 모르게 되는 것들. 작가 르네 마그리트의 시같은 작품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림에 가장 적절한 제목은 시적인 것이다. 우리가 그림을 감상하면서 느끼는 다소 생생한 감정에 비교될 수 있는 제목을 의미하는 것이다. 시적인 제목은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우리를 놀라게 하거나 마법에 빠져들게 한다” - 르네 마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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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눈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는것만 같은 위 그림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잘못된 거울>이다. '거울'이란 대상을 표현한 형용사가 둥그런, 오목한, 혹은 깨진, 깨끗한.. 등이 아니라 '잘못된'이라니. 조금 의아하다. <잘못된 거울>이라는 이름이 붙혀진 이 그림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일반적 사실은 눈의 주인은 분명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을 거라는 사실 하나다. 안구에 비친, 잘 재현된 구름과, 잘 재현된 누군가의 시선이 마치 제목 속 거울을 뜻하는 듯 하다.

 

하지만 르네 마그리트는 <잘못된 거울>이라는 작품명으로 우리에게 질문을 하나 던진다. "하늘과 구름이 잘못 비춰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보이는 그대로, 굉장히 수동성 짙은 우리의 시선이 하늘과 구름이 가진 무한한 의미들을 가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 이렇게 굉장히 일상적인 사물을 통해, 일상적이지 않은 의미로 우리의 일상을 뒤트는 그런 작업들을 하고 있었다. 위 그림 속 눈, 그리고 하늘과 구름처럼 묘사는 최대한 사실적으로 하되, 나머지 요소들을 우리의 ‘사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장치로 활용하였다. 데페이즈망(depaysement) 기법이다. 불어로 데페이즈망은 고국으로부터의 추방, 즉 낯선 느낌을 의미한다고 한다. 고국에서 느낄 수 있는 익숙함, 안정감과는 반대로 굉장히 낯설고, 가끔은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는 그의 작품이 마치 우리의 일상 속 시의 역할과도 비슷하다고 생각 되었다.

 


"원뿔은 위에서 보면 점, 아래서는 원, 옆에서는 삼각형, 비스듬히 자르면 타원이 돼요. 그 모두이면서 그 무엇도 아닌 것, 시도 그렇지 않을까요. 시는 꽃이 닭이라고, 더 정확히 말해 꽃이 닭이었고, 닭일 거라고 말하는 거에요" - 책 무한화서 255


 

 

'생각하는 사람' 르네 마그리트, 그의 생각의 흔적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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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총 다섯 가지의 큰 주제로 이뤄져 있다. ‘어바웃 르네 마그리트 About Rene Magritte’에서는 르네 마그리트라는 사람를 조명한다. 작품 이전에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생각하는 사람’인 그를 있게 만든 인물, 상황 등은 무엇이었는지. 무엇보다 르네 마그리트라는 사람을 이해함으로서 그가 가진 시선에 대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에이터로서의 르네 마그리트의 시선과 생각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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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섹션인 ‘플레이 르네 마그리트 Play Rene Magritte’ , ‘마그리트와 시네마 Magritte & Cinema’, ‘인사이드 마그리트 Inside Magritte’ 에서는 그가 남긴 다양한 형식의 다양한 작품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특수 효과, 영상, 공간이 마련되어있다. 단순 화가가 아닌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보다 입체적으로 르네 마그리트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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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섹션인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Magritte’s Surrealism’는 초현실주의 작가들에 대한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기회다. 막스 에른스트, 호안 미로, 이브 탕기, 살바도르 달리, 메레 오펜하임 등 르네 마그리트와 더불어 쟁쟁했던 당시의 화가들을 함께 비교하며  관람할 수 있는 재미가 있다. 또한, 마그리트의 작품의 기반이 되었던 ‘사물과 언어’ 에 대한 그만의 깊은 고찰을 들여다볼 수 있으니, 그의 생각의 흔적들을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가 되었다.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 Inside Magritte -

 

 

일자 : 2020.04.29 ~ 2020.09.13

  

시간

오전 10시 ~ 오후 8시

(매표 및 입장마감 오후 7시 20분)

  

*

휴관일 없음

 

장소

인사센트럴뮤지엄

 

티켓가격

성인(만19~64세) : 15,000원

청소년(만13~18세) : 13,000원

어린이(만7~12세) : 11,000원

미취학아동, 만65세 이상 : 6,000원

 

주최

크로스미디어

지엔씨미디어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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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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