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도서 '예술과 나날의 마음' -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예술을 향유하는 걸까.

글 입력 2020.05.1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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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은 아마도 어떤 풍경과 또 다른 하나의 풍경 사이에서 좀 더 나은 풍경을 찾고 꿈꾸는 가운데 끝날 것이다. 더 나은 그 풍경의 성격은 ‘시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략) 우리가 만나는 풍경에서 우리는, 그것이 그림이든 책이든, 음악이든 철학이든, 그 풍경이 나를 감싸고, 나를 끌어주며, 내가 그 풍경으로부터 위로받을 수 있는, 그래서 좀 더 크고 더 깊으며 더 넓은 무엇을 보고자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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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예술과 나날의 마음’의 머리말 중, 이러한 제목을 지니게 된 이유에 대해 친절히 설명하는 구절이다. 그 중 몇 마디를 발췌해보았는데, 이 몇 마디는 나아가 이 책 전체를 대표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정확히는 저자가 도서, 미술, 음악 이 모든 예술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개인적으로, 넓게는 삶속에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위의 이유로 읽혀지기도 했다.

 

사람은 대부분 모든 행위에 대해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은가. 나 또한 그렇다. 매번 이유가 있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모든 것이 내 삶속에서 유의미한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니까 일종의 합리화일지도 모르지만, 의미를 찾지 않거나 부여하지 않으면 그것대로 주체할 수 없는 허망감이 머릿속을 잠식해버려 우울해진다.

 

모든 것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 쿨한 척, 자주 내뱉던 나의 입버릇과는 다르게 모든 행위에 있어 목적이나 의미를 부여하려는 강박관념 같다고도 느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늘, 다른 이들이 예술을 접하고 나면 어떤 식으로 의미를 해석하는지 궁금했다. 특히나 미술 작품에 있어서는 더. 물론 보는 사람의 세계에 따라 해석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게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여기서 나아가 저자는 이런 말을 한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자기 자신을 아는 데 있다. 그것은 어쩌면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적 진리는 세상이나 사물의 본질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아는 데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자기 자신의 ’모름‘을 아는 데 있다.”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소개하는 장에서 나온 구절이다. 어쩌면 이 책이 내가 의미를 부여하려는 행위에 대해 희미한 답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알기 위해 무엇인가를 알아간다지만 정확히는 나의 모름을 아는데 있다는 것. 우리는 일상생활 속 모든 것에 익숙해져 있다.

 

가면 갈수록 웬만한 것에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 우리의 감정체계는 우리의 삶 속에서 계속해 뿌리를 내려간다. 그렇게 무뎌지고, 익숙해지면 딱 그만큼만 바라보고 느끼게 된다. 어쩌면 거창한 의미나 목적을 찾는 게 예술의 본질이 아니라, 사소하더라도 일상 속 균열과 변화를 가져다주는 정도면 예술의 본질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새롭게 느껴진 만큼 어제의 나와 변화를 느낀 나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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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이 책은 미술 작품을 통해 철학적인 고민을 하게끔 이끌어준다. 일상 속 바쁘다는 핑계로 지나쳐갔을 사소한 고민들, 관념들을 미학 속에서 가져와 우리의 삶에다 이어주는 식이랄까.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이 고민하는 문제들은 늘 반복된다. 그리고 그 반복성은 곧, 결국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은 진지하게 고찰해보아야 할 무언가라는 증거이다. 이 책에서 「맨스필드 파크」 저자로도 유명한 ‘제인 오스틴’을 살펴보는 방식이 그러했다.

 


“현실은 늘 크고 작은 ‘한계 속의 현실’인 까닭이다. 인간의 삶이 신의 삶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삶의 한계 속이서도, 그 한계가 불가피하다고 해서 유야무야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불가항력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나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맨스필드 파크」에는 신분 사회적 제약이 있지만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삶인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이 몇 가지 들어있는 것 같다.


 

이 몇 마디 말처럼, 인간이 살아가는 한 현실사회와 유토피아와의 간극은 완전히 좁혀지지 못할 것이며 늘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책에서 언급했듯, 불가항력적 한계에 맞서 삶 속에서 견지해야할 나만의 가치관은 무엇일지 끊임없이 고민해봐야 한다. 그러한 고민이 없이는 각종 크고 작은 현실의 한계에 부딪혀 늘 무너지기 마련일 테니 말이다. 이렇게 예술이 제공한 고민의 계기를 내면의 단단함으로 승화시키려면 부단히 생각하고 공부하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예술에 대한)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다.

 

*

 

최근 들어 나는 무엇을 위해 예술을 끊임없이 접하려고 노력했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줄곧 들었다. 굳이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예술을 바라보아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예술을 꾸준히 접한다면, 어느 정도 나의 것으로 느껴지는 무언가가 생길 것이라 생각했던 거 같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는 결과주의, 성과주의지향 사회에서 너무 조급한 방식으로, 어쩌면 잘못된 방식으로 예술을 바라보지는 않은걸까 반성하기도 했다. 예술의 존재 이유는 무엇을 해내기보다 무언가를 느끼고 바라보고, 고민해보는 그 과정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 미학에세이를 읽다보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고 여러 번 그 말을 곱씹으며 예술을 향유하겠다 다짐 아닌 다짐도 했다. 작품을 그려냈던 작가의 배경, 가치관, 당시의 시대배경 알면 알수록 보이는 것이 달라졌고 넓어졌다. 단순히 즐기기만 할 게 아니라 더 파고들고 알아나가는 행위 자체도 중요하다고 느껴진다.

 

*

 

시간이 갈수록 체감 상 향유할 수 있는 예술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고 느낀다. 확실히 이제는 예술이라는 것이 특정한 공간이나 시간에만 머물러있지 않고, 일상 속에 스며들어 전보다 접하기가 쉬워졌다. 그러나 넓어진 만큼 우리는 예술을 충분히 향유하고 이해하는 걸까. 그러니까, 우리는 예술을 순간의 재미거리로만 흘려보내고 있진 않을까.

 

거창한 목적의식을 가져야한다는 게 아니라, 예술을 향유하는 데 있어 휘발성이 다분한 행위로만 지니기엔 아쉽다는 말이다. 사소하게나마 예술이 자신의 삶에 가져다주는 작은 변화가 무엇인지, 그 변화가 어떻게 느껴지는지, 오래도록 그 새로움을 간직하려면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할지. 그런 고민을 갖고 이 책을 읽다보면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찬찬히 살펴볼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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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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