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순수의 상징이 아닌, 주체로 [영화]

한국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글 입력 2020.05.12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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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상징이 아닌, 주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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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들>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윤가은 감독은 한국의 고레에다 히로카즈라 불릴 정도로 아이들의 세계를 섬세하게 포착해 내는 감독이다.

 

실제로 가장 좋아하는 감독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꼽았는데, 이유가 ‘아이들’이 나와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영화학교에 떨어졌을 때 본 영화가 <아무도 모른다>였고, 그때 처음으로 자신도 이러한 시선을 가진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그의 영화세계에 방향성을 잡아 준 감독이 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다.

 

그래서인지 윤가은 감독을 보면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본 어른과 세상, 무조건적으로 천진난만하게 그리기보단 실제로 존재하는 아이들을 담는다.

 

다만, 아이들과 촬영을 진행하는 방식은 약간 다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최대한의 자연스러움을 담기 위해 대본도, 구체적인 역할도 설명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상황 정도만 설명하며 촬영을 진행한다.

 

이에 반해 윤가은 감독은 아이들에게 촬영장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되, 영화의 목표를 위해 선생님처럼 지도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 아이들의 보호자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이끌어주는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영화 <콩나물>은 윤가은 감독의 단편으로 베를린 영화제 최고단편영화상을 수상했다. 그의 유년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된 <콩나물>은 윤가은 감독 특유의 색채가 진하게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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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보리는 제사 준비로 바쁜 엄마를 돕기 위해 어른들 몰래 시장에 콩나물을 사러 간다. 그 과정에서 보리는 다양한 어른들을 만난다.


어린 보리를 친절하게 대해주는 아주머니, (보리의 시선에서) 뭔가 수상쩍은 택배 아저씨, 동네 일진과도 같은 꽤나 노는 할머니, 할아버지, 귀가 안 들리는 할머니, 보리가 울든 말든 관심도 가지지 않는 남자 무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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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았던 보리의 세계가 다양한 어른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넓어져 갔다. 무릎이 까지고 상처를 치료 받으면서 보리는 할머니를 따라 고추를 넌다. 술을 배우기도 한다. 친구들과의 놀이와 다툼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콩나물은 잊혀지고 만다. 콩나물은 사실, 보리를 세상 밖으로 이끌기 위한 자그만 수단이었다. 임무를 다했으니, 더 이상 중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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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은 당연히 아이가 자신이 끄는 대로만 움직일 거라 하지만, 아이는 어른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와 같이 여기며 그 안에서 자기가 소화하려 한다.


영화 속 보리 역시 엄마가 많이 바빠보여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 길을 나섰다. '애가 뭘 한다고'라며 핀잔을 준 엄마 몰래 나선 길은 문제 투성이었지만 보리 나름대로 해내서 돌아온다. 아이들도 안다. 어디가 문제고, 어떤 게 이상한지.



윤가은 감독의 영화 속 아이들은 단순히 천진난만함의 상징이 아닌, 직접 움직이는 주체다.


 

아이의 용기, 거리의 장애물을 씩씩하게 해치고 또 나름대로 고민하며 보리는 그 짧은 사이에 쑥 성장했다. 마치 콩나물처럼.

 

 

[김명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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