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툰 진심, 영화 '책상 서랍 속의 동화' [영화]

어질러졌어도 완전한 마음
글 입력 2020.05.0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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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기억 속 일요일 오후, TV 채널을 돌리다 스치듯이 본 영화가 있다. 제목도, 내용도 불확실했던 그 영화를 최근 우연한 기회로 다시 봤다. 영화는 흐릿했던 기억을 차근히 밝혀갔다. 예상치 못한 작은 기억 때문인지, 영화 <책상 서랍 속의 동화>(1999)는 조금 특별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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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책상 서랍 속의 동화’는 1999년 개봉된 장예모 감독의 작품으로, 13살의 어린 대리 선생, 웨이 민쯔가 시골의 초등학교를 한 달 동안 맡으며 생기는 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28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인 쑤시앤 학교에 근무하는 유일한 선생님, 가오 선생님은 학교를 한 달 동안 떠나기 전에 대리 선생인 웨이 민쯔에게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학생 수가 그대로라면 급료를 더 쳐주겠다고 약속한다. 애초에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온 웨이 민쯔는 급료를 더 받기 위해 학생 수를 유지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수업을 진행한다.


목적이 이렇다 보니 웨이 민쯔는 수업 내용, 수업 분위기, 학생 상태 등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표면적인 문제, 즉 아이들이 학교를 이탈하지 않게 하는 것에만 신경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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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학교의 문제 학생인 장휘거가 반장 장민싼의 일기를 훔쳐읽는 일이 생긴다. 평소 가오 선생님을 존경했던 장민싼이 자신에게 느끼는 서운함을 알게 된 웨이 민쯔는 그날부터 아이들에게 더 깊고 심층적인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하지만 다음 날, 장휘거가 돈을 벌러 학교를 그만두고 도시로 넘어간 것을 알게 되고, 그를 찾기 위해 끈질긴 여정을 시작한다.


장휘거를 찾아갈 차비가 없어 아이들과 벽돌을 나르고, 차비가 턱없이 부족하자 결국 도시까지 걸어간다. 도시에 도착해서는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벽보를 만들 재료를 사고, 장휘거를 찾는 방송 광고를 부탁하기 위해 노숙을 하며 방송국 국장을 기다린다. 이 믿기지 않는 무모함은 결국 방송국 국장에게 통했고, 웨이 민쯔는 방송에 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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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선 세 가지 부분들이 돋보인다. 우선, 시골과 도시의 속도감 대비이다. 웨이 민쯔는 목표를 끈질기게 뒤쫓는 성격이다. 이 때문에 촌장의 트럭도, 달리기 영재 밍신홍을 도시로 데려가는 자동차도,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교실에서 나온 장휘거도 끝까지 뛰어가 따라잡는다. 하지만 이랬던 그는 도시에서 멍하니 서있거나 앉아서 기다리고, 기껏해야 바삐 걸어 다니는 것이 전부이다.


특히 자동차들, 자전거들, 인파 사이에서 길을 잃은 아이처럼 가만히 서있는 웨이 민쯔의 장면이 많은데, 이를 통해 도시가 갖는 속도의 역설이 나타난다. 도시는 항상 어떤 이유로 바삐 움직이고 분주하면서도, 목표를 이루는 데에 있어서는 단순히 달려가면 되는 시골보다 그 과정이 더욱 복잡하고 느리다. 영화에서 물리적인 속도감은 도시에서 더 나타날지 몰라도 실리적인 속도감은 시골에서 더 나타난다.

  

다음으로 뇌리에 남은 것은 도시의 이면을 꼬집는 장휘거의 마지막 대사이다. 도시의 화려함에 반한 어린 이는 그 고생을 하고도 도시가 막연히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엇이 가장 좋았냐고 물었을 땐, 오묘한 표정으로 구걸했던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는 그것이 진정 행복했던 것이 아니라, 도시에서의 기억이 구걸했던 것 밖에 없어서 일 것이다. 도시의 화려함은 부의 증거가 되기도, 발전의 과시가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곧 소외의 부재, 불평등의 제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눈에 띄는 것은 가오 선생님과 웨이 민쯔의 관계이다. 가오 선생님은 학교와 학생을 아끼며, 반장과 동네 사람들에게 인품을 인정받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훌륭한 교육자인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웨이 민쯔는 돈을 우선시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꾸지람을 들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치기는커녕 아이들의 계산 실수도 잡아내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강의력 면에서 좋은 교육자라고 보기 어렵다. 웨이 민쯔는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이기 때문에 강의력의 부재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실력적 측면이 아닌 자질적인 측면에서 그는 가오 선생님과 같이 훌륭한 교육자의 자질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메시지는 가오 선생님의 분필과 웨이 민쯔의 잉크를 통해 뚜렷하게 나타난다. 가오 선생님은 자신의 교탁 수리비로 받은 돈을 모두 분필 사는 데에 쓰고, 손에 묻은 가루까지도 털어내지 않고 한 획을 긋는 데에 쓴다. 이는 웨이 민쯔가 도시에서 벽보를 만들기 위한 재료를 사는 데에 망설임 없이 전 재산을 다 쓰는 모습, 그리고 잉크가 부족한데도 물을 섞어 끝까지 사용하는 모습과 겹쳐지며 웨이 민쯔의 교육자적 자질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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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툴고, 어질러져 그 형체를 분간하기 어렵던 어렴풋한 마음이었지만 결국 진심이었다. 서로를 향한, 자기 자신을 향한 추구였다. 앞뒤 따지지 않고 마음만을 붙잡고 떠난 기행은 막막하고 결과를 알 수 없는 미지의 갈래였다. 그럼에도, 그 미지는 어느 곳보다 밝고 충만하다. 벽보의 글자색이 옅어질수록, 짙어져 가는 진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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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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