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으로 편지 쓰기 - 『비너스에게』 [도서]

글 입력 2020.05.0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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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에게』의 주인공 ‘강성훈’은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열여덟 살의 남자 고등학생이다.


성훈은 주위 친구들과 달리 이성에게 관심이 전혀 없었다. 자신은 왜 또래 남자들과 다를까 자책도 하며, 사랑하지도 않는 여성들과 연애를 하고, 이성과 교제를 했음에도 사랑의 감정이 생기지 않아 자주 그만둔다. 여러 여성들의 연애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면서 성훈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자각한다. 그러나 빈번히 교제 상대가 바뀌는 성훈을, 주위 사람들은 경험이 많은 문란한 인물로 오해한다.

 

성훈은 고등학교 체육대회에서 처음 만난 "군"이라는 남학생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성훈은 군이 이성애자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여름 방학 때 성훈이 군의 집에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군에게 키스하고 도망쳤다. 결국 학교에 이 사건이 알려지게 되면서 성훈은 고등학교를 자퇴하게 되고 성훈의 어머니인 운수는 성훈에게 유학을 강요한다.


결국 운수는 현재 상담소를 운영하는 대학교 친구 양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양나 역시 동성애자이기 때문이다. 상담소를 다니면서, 성훈은 비너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비너스에게』는 성훈이 ‘비너스에게’ 쓰는 편지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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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역경을 견뎌내고 성장한 성훈. 결말은 어쩌면 해피엔딩이다. 다른 청소년 성장 소설과 비교하여 『비너스에게』에서 주목할 부분은 무엇인가. 바로 청소년 퀴어의 서사이다.


지금까지 여러 매체에서, 특히 청소년 퀴어를 다룬 작품의 경우 청소년의 동성애를 단순히 ‘열병’으로만 주목했다. 중학교 동기를 보고 사랑에 빠진 학생, 그러나 이성애자인 짝사랑 상대를 보며 단념하고,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두 인물은 각자 이성과 사랑을 이루며 "그때 널 좋아했었어."라고 말하는 결말. 이런 서사는 퀴어를 그 자체로 주목한 것이 아니라 서사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바라본 것이다. 그러나 『비너스에게』에서 성훈의 사랑은 단순한 사춘기의 열병이 아닌 사랑 그 자체이다.

 

성훈은 사랑을 통해 성장한다. 그의 첫사랑인 군에게는 잘못된 방식(동의 없는 키스)으로 애정을 표현했기는 했지만, 성훈은 군과 친해지기 위해 설문조사 아르바이트를 핑계로 댈 정도로 3학년 대부분 학생의 고민을 들어준다. 또한 군에게 보이는 성훈의 심리를 보면


 

“그를 안는다면, 그가 나를 안아준다면,

...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어.”

 

 

라고 말하며 군에 대한 욕망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이는 혼란스러운 감정이 아닌 사랑 자체에 몰입한 청소년을 보여준다.


 

 

성장 소설


 

『비너스에게』는 퀴어 소설만으로 주목하기는 다른 요소가 존재한다. 양나, 현신과 같은 동성애자가 등장하고 있지만, 카테고리로 분류하자면 『비너스에게』는 성장 소설에 가깝다.


성훈이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상담했던 고3들의 고민 내용은 우리 주위에서 혹은 당장 내가 겪었던 경험들이다. ‘하루에 열두 시간씩 앉아 있어 치질이 걸린 학생’, ‘강박증을 겪고 있지만 자신 외에는 강박증을 겪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자신을 특별하다고 믿는 학생’, ‘버스에서 방귀를 뀐 것 말고는 특별한 사건이 없는 학생’ 등은 현대 고등학생들의 삶을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성장 소설로 볼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성훈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청소년, 한부모 가정에서 어머니와의 갈등, 상담소 아이들과의 이야기 등은 성훈을 성장시키는 요소들로 등장한다. 예를 들자면, 상담소 아이들과 놀이공원을 갔다가 오랜 친구인 영무와 마주친 성훈의 감정이다.


성훈은 그때 영무와 다른 자신의 무리를 보며 부끄러움을 느꼈다. 성훈은 영무가 정상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으며 자신은 정상적인 범주에서 벗어나 어떤 문제가 있어 상담소에 다니는 낙오자라고 생각했다. 이렇듯 자폐적인 성격을 보이는 성훈을 성장시키는 역할은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소설 속에서 양무와 현신은 단순히 성인의 관점에서 미성년자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아닌, 성훈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해서 직·간접적으로 조언만을 해주는 인물들이다. 성훈과 상담소의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어른들은 그들의 잘못을 질타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는 모두 이런 식으로 배워가는 거야.”라는 말을 할 뿐이다.


양나는 성훈을 이름이 아닌 "소년"이라고 부르며, 운수가 성훈에게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미성년자 한정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여러 번 등장한다. 이는 독자에게 성훈이 아직 성장 중인 청소년임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이 소설은 청소년만의 불완전성을 주목하지 않는다. 작가는 성인으로 등장하는 운수, 양나, 현신 또한 불완전한 존재들임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양나는 연인과의 관계로 힘들어하며 싸우다가 계단에 굴러떨어져 다치는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어른스러운 연애로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수의사인 현신이 시골에 있는 이유도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서이다. 성훈의 어머니인 운수 또한 성훈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으며 그토록 새로운 연인을 바라지만 삼 년 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소설의 후반부에서야 생긴다. 성훈은 불완전한 어른들을 바라보면서, 불완전한 성훈을 어른들이 바라보면서 그들은 각자 다시 성장한다. 결국,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성장하게 된다.

 


 

비너스에게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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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훈은 왜 비너스에게 편지를 쓸까. 성훈이 비너스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모두를 사랑하는 존재가 비너스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 소설 전체의 주제와 연관이 있다. 보티첼리의 그림인 <비너스의 탄생>은 상담실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비너스는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이다. 그리고 양나가 있는 상담소의 이름 또한 애미(愛美) 청소년 상담소이다. 비너스는 사랑의 신이기 때문에 세상 모두를 사랑할 수 있다.

 

비너스는 바다 위에서 태어났다. 청소년인 성훈과 성인이지만 불완전한 사랑을 하는 운수, 양나, 현신의 모습을 다 안아줄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는 비너스이다. 비너스는 모두를 사랑한다. 비너스를 육지로 보내기 위해 제피로스가 바람을 일으켜 비너스를 데려간다. 제피로스는 정신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이는 비너스처럼 성숙한 어른으로 태어났음에도 정신과 육체가 합쳐졌을 때만 완전한 성숙을 이룰 수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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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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