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도심속 방치된 아이들 : [영화] 아무도 모른다

거대도시속 팽배한 무관심속에 어느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다.
글 입력 2020.05.0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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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는 곧 도시의 특성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많지만 저마다 바쁜 삶에 남에게 관심을 둘 여유가 없다. 더불어 선 넘는 공동체주의의 영향으로 개인주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무관심의 도시에는 자극적인 연예뉴스나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를 뿐이다.

 

당신에게 관심을 끌 테니 나에 대한 관심을 꺼줘요 식의 개인주의를 옹호하지만 '-주의'로 끝나는 것들은 극적인 방향성을 띌 때에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수 없듯, 개인주의는 어쩌면 도움을 청할 수 없는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2년 전에 우리 사회에서 빚 독촉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모녀가 자살했지만 아파트 관리비가 연체된 것으로 석 달이 되어서야 주위에 알려졌다. 1988년 일본에서는 실제로 도심 속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었던 아이들이 있었다. '나시 스가모의 버림받은 4남매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 의해 <아무도 모른다>로 영화화되었다.

 

 

 

도심 속 방치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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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집으로 이사 왔기 때문에 다시 한번 규칙을 설명합니다. 약속을 합시다. 먼저 큰 소리로 시끄럽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밖에 나가지 않는다. 베란다도 안돼. 모두 지킬 수 있습니까?"



한 도심 속 12평짜리 아파트에 젊은 엄마와 아들이 큰 캐리어를 들고 이사를 온다. 엄마인 게이코와 아들 아키는 주인집에 인사를 가 '남편은 해외에 있고 아들과 자신만 살며 아들은 모범생이라 조용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온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캐리어를 열었고 거기에는 아이 두 명이 있다. 그리고 밖에서 한 여자 꼬마 또한 몰래 집으로 들어온다.

그렇다. 이 가족은 총 5명이며 각자 아빠는 다 다르다. 하지만 이런 사연이 전해지면 집을 구하기 곤란해지기 때문에 이들은 계획하에 몰래 입주했다. 엄마 게이코는 아이들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위와 같은 룰을 정한다. 존재하지만 존재함을 숨기기 위해 12평이라는 작은 공간을 벗어날 수 없는 아이들은 엄마를 너무 사랑하기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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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에게.. 엄마는 한동안 집을 비울 거야. 쿄코, 시게루, 유키를 잘 부탁한다"



어느 날 엄마는 아키라에게 다른 남매들을 맡기고 떠난다. 소정의 돈을 남기고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돌아올게'라는 약속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점점 돈이 줄어들어 얼마 안 남게 되었지만 엄마와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매일 폐기되는 식품들을 챙겨주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이런 아키라를 딱하게 여겨 경찰에 도움을 요청할 것을 제안하지만 이미 각자 다른 고아원으로 찢어졌던 경험이 있던 아키라는 거절한다.
 
서로에게 유일한 버팀목이던 남매들은 이웃 모르게 조용히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결국 있는 돈이 다 떨어지고 전기와 물마저 끊어지자 아이들은 공원에서 몸을 씻고 옷을 빨며 지낸다. 매일 입는 옷은 점점 헤지고 더러워졌으며 머리는 덥수룩해진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무더운 더위가 찾아왔고 아이들은 점점 지쳐간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 유키가 좀처럼 잠에서 깨지 않는다. 눈을 감고 있는 유키의 손은 한 없이 차가웠고 그렇게 유키는 세상을 떠났다. 유키가 이 집을 처음 왔을 때 캐리어에 실려왔던 것처럼 유키는 떠나는 길도 캐리어에 실려간다. 서류상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인 유키는 그렇게 바람이 스쳐 지나간 것처럼 세상을 떠나게 된다.
 
아이들에게 세상이란 엄마와 남매들뿐이었다. 학교 다니면서 친구들을 만나고 싶고 밖에 나가 뛰어놀고 싶었지만 남매들은 서로에게 유일한 세상이었기에 욕망을 누르고 집이지만 어쩌면 학대의 공간이었을지도 모를 집에서 머물렀던 것이다. 임종교 아동인권옹호전문가에(CRA)에 따르면 '아동은 신체적 발달을 위해 보호받아야 하며 자신의 의지대로 적절한 사회활동을 할 권리가 있다.'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기한 없이 방치되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엄마인 게이코만을 비난할 수는 없다. 아이는 혼자 낳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에 대한 책임은 부모가 지어야 함이 마땅함에도 그녀의 남자 친구들은 책임의식이 전혀 없다. 현재 미혼모 보호의 일환으로 덴마크나 핀란드에서는 '히트 앤드 런 방지법'이라고 하는 양육비 대지급 제도가 있다. 하지만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국가에서는 대체로 시행되고 있지 않아 온전히 미혼모가 모든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  복지 제도가 정작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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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에게... 다들 잘 있지? 너만 믿는다"



동생 유키가 죽고 집에 봉투 하나가 도착했다. 그 봉투에는 짧은 안부와 돈이 담겨있을 뿐이다. 분명 엄마 게이코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인지하고 있음에도 남은 아이들의 허무함 그중에서도 장남인 아키라의 허무함을 알 것 같아서 분노가 치밈과 동시에 눈물이 흘렀다.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아이를 낳기 전에 '부모 자격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었는데 가끔은 정말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아이들이 부모의 한낱 쾌락에 의해 세상에 내던져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남으로서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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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다른 여타의 영화보다 좋았던 이유는 캐릭터들이 극적이지 않고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엄마를 대신해 남매들을 돌볼 수 없었던 장남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인상 깊었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엄마 고민을 들어주는 친구이자 남매들에게는 부모이면서도 아직 어린기에 할 수 있는 치기 어린 행동들을 하는 청소년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엄마 학교는 언제 보내줄 거야?"

"그놈의 학교, 학교 안 가도 별로 상관없잖아."
"엄만 너무 제멋대로야!"
"제멋대로라니.. 누가 제일 제멋대로인데? 네 아빠가 제일 제멋대로잖아! 혼자 사라져 버리고 뭐야 정말 엄만 행복해지면 안 돼?"



아키라는 나이로 치면 초등학교 고학년이지만 서류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이기에 학교를 다닐 수 없다. 하지만 아키라는 항상 학교 주변을 서성이며 먼발치에서 자신과 또래 아이들을 지켜본다. 어리기에 더 떼를 쓸 수도 있을법하지만 엄마의 한마디에 아무 말할 수 없는 아키 라이다. '네 아빠가 문제야!'라는 말에 아이는 더 이상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엄마가 떠나간 자리에서 아키라는 보호자 역할을 성실히 수행한다. 이는 엄마가 믿는 장남이기에, 엄마가 크리스마스에 돌아오기 전까지 남매들을 잘 돌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추운 날씨에도 돌아오는 엄마를 맞이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며 시간이 지나 저렴해진 케이크를 들고 집에 돌아가 엄마를 기다렸지만 그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아키라의 표정은 점점 인생에 허망함을 느낀,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초점 없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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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쟤네 집 썩은 내 나"



아키라는 동네에서 만난 질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된다. 항상 누군가의 보호자 역할을 맡아야 했던 아키라에게 또래 친구가 생긴 건 처음이기에 잃고 싶지 않은 탓인지 항상 그 아이들에게 맞춰준다.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 놀면서 집안 꼴은 엉망이 되어간다. 동생이 친구한테 발로 차이는 걸 보지만 그저 방관한다. 그만큼 아키라에게 그 친구들은 비록 질은 안 좋지만 분명 놓고 싶지 않은 곁에서 다른 또래의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친구의 도둑질 권유를 거절한 이유만으로 친구들에게 버려지게 된다. 그것도 자신의 집에 썩은 내가 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말이다.
 
아키라의 집안 사정이 점점 안 좋아지자 아키라의 남매들과 친했던 사키라는 여자 친구는 이들을 위해 나이 많은 남자와 노래방을 간 후 돈을 받아 아키라에게 건네준다. 그녀는 단지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겠지만 아키라는 너무 치욕스러웠을 것이다. 유일하게 남은 친구이자 항상 도움을 줬던 여자 친구 사키가 좋지 않은 일로 자신을 도와주게 되는 그 상황이 너무 절망적이었을 거다.
 
힘든 상황을 겪고 있던 아키라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막냇동생을 잃게 된다. 처음으로 주변인의 죽음을 맞이한 아키라는 사키에게 도움을 청한다. 간단하게 집에서 장례를 치르고 처음 막냇동생 유키를 데려왔던 것처럼 캐리어에 실어 하네다 공항까지 모노레일을 타고 갔다. 아키라는 유키의 생일날 언젠가 모노레일을 타고 비행기를 보러 가자고 약속했었기에 유키를 그곳으로 데려간 게 아닐까 싶다.
 
성인도 견디기 힘든 일을 아키라는 너무 어린 나이에 겪게 되었다. 떠나간 부모, 배신한 친구, 떨어진 돈, 죽음을 맞은 동생.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키라는 다시 남은 동생들과 삶을 살아간다. 장남으로서 자신이 이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그 책임의 무게가 크기 때문에 매일매일을 다시 성실히 살아갈 수밖에 없다.
 
*
 
마지막 장면에서 아키라의 남동생 시게루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영화는 끝이 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아이들을 그저 뒤에서 훔쳐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저 힘든 이들을 방관하고 있는 한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실제로 동생들과 공원에서 물을 떠서 가는 아이들을 봤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주의 깊게 바라볼까? 그럴 것 같지 않다.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잠시 시선을 두었다가 금세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을 거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대도시의 개인주의의 부작용을 그린 영화로 사회에 대한 관심을 독려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사회적 관심이 필요합니다라고 선전하기보다 실화보다 더 현실 같은 마무리로 영화가 끝난 뒤 아무 말도 할 수없게 한다. 그저 개인이 생각하도록 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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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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