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우는 어른

어른은 그래도 돼
글 입력 2020.05.0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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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 주신다


 

어린이가 어른에게 선물을 기대하는 날이 있다. 생일, 어린이날, 그리고 크리스마스. 나는 당연히 어른이 아이에게 선물을 줘야한다고 생각했고, 나만하면 괜찮은 어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물을 받기 위해서 착한 일을 한 기억이 없다. 산타 할아버지-분장을 하고 유치원에 온 누군가-가 나에게 선물을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전달 받고 ‘올해는 이랬구나 허허허’할 때서야 내 단점을 깨달았지만, 손에 이미 선물이 들어왔고, 포장지 뜯기라는 긴급한 일을 처리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반성은 발도 들이밀지 못하고 떠났다.


울면 안 된다는 캐롤을 배우고 수 십 수 백 번 부르며 자랐고, 크리스마스마다 아무렇지 않게 들었는데, 어느 순간 반발심이 들었다. 우는 게 뭐라고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준다는 노래까지 만들었을까. 어른도 세상 서러운 일이 많은데 여린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지 않는다고 말하면서까지 울지 말라고 하다니 어른들이 나빴다.


아기들은 의사표현을 못해서 우는 거라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는 나이가 되었는데 우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제대로 울지 못하고 탈이 나기도 한다. 언젠가 힘든 일이 있어서 ‘울지 말고 강해지자!’ 하면서 견뎌내려던 때, 친한 언니들이 그럴 땐 울어도 되는 거라고 알려줘서 울어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울지 않는 게 씩씩해지는 방법인줄 알았는데 울어야 할 때라는 게 있었다. 한 사람이 그랬으면 나를 위로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여럿이 그렇게 말해주니 '진짜 그런가?'하고 내 생각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때 그렇게 배우지 않았더라면 수 없이 부딪히고 깨진 다음에야 울어도 된다는 걸 겨우 깨달았을 지도 모른다.

 



참을 수 없는 눈물의 무거움



아직도 생각만 하면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이 몰려와 눈물부터 나는 일이 있다. 시간에 씻겨지지도 않고 그날 그 감정 생생하게 남아 나를 할퀸다. 그럴 땐 일단 울고 본다. 울지 않고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지나간 일로 덮어두고 싶지도 않고, 안 보이는 척 밀어놓고 외면하거나 억지로 괜찮다고 할 수도 없다. 그래서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마주해놓고선 견디지 못해 기어코 울고 만다. 세상엔 씩씩하게 해쳐나갈 수 없는 일이 있고, 나에겐 그 일이 그러해서 나는 울 수밖에 없다.


기쁜 일로만 울면서 살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살다보면 아프고 슬퍼서 우는 날이 찾아오게 된다. 나는 속상해도 울고 억울해도 울고 서러워도 운다. 시도 때도 없이 우는 것도 아니고 울지 말아야 할 때 울어서 상황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울어야 할 때, 울어서 내 기분이 나아질 수 있을 때 운다.


이유도 없이 눈물이 자꾸 나거나, 이유도 없이 자꾸 슬퍼져서 울게 된다면 병원에 가보겠지만, 나는 적당히 잘 울어가며 살고 있다. 가끔은 울 정도의 일이 있다는 게 맘에 들지 않아 나 자신에게 선물을 하며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뒤탈이 없도록 감정을 다독여준다. 나 아니면 누가 내 마음 개운하게 울게 해줄까.


 

 

울음 뒤에 오는 것들


 

몇 년에 한 번은 친구와 얘기하다 우는 날이 있다. 서로 걱정할까봐 못했던 얘기,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삭히던 일을 얘기하다 보면 내가 슬퍼서, 우는 친구를 보니 마음이 아파서. 훌쩍이며 얘기를 나누고 나서 코가 빨개져선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우리 너무 울었다며 웃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누군가가 내 감정을 알아줘서 고맙고, 내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고, 나를 위해 울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고마워진다. 울면 안 된다는데, 울어서 되는 일도 생긴다.

 

울고 싶을 때 펑펑 울고 나면 감정이 정리가 된다. 실제로 울어야 할 때 울지 않으면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카테콜아민이 눈물로 배출되어야 과다분비로 인한 이런저런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니까 슬프면 울어서 나를 덜 아프게 해야 한다.


울면 안 되는 건, 말하지 않고 울면서 떼만 쓰는 미운 다섯 살밖에 없지 않을까. 내 감정이 뭔지 알고, 그 감정 말로 할 수 있는 어른이라면 응당 울어야 할 때 울어줘야 한다. 우리 울어야 할 때는 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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