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를 알고 싶다 - 썸원, 썸웨어

글 입력 2020.05.01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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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져보면 나는 우연을 운명이라고 포장했던 것 같다. 삶을 서사의 일종으로 여겨서 내게 일어나는 일들에 이유가 있다고 믿었다. 벌어질만한 일이었는지 개연성을 따지고 그것들에 어떤 조짐이 흐른다고 생각했다. 그 같은 의식 저변엔 특별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느닷없는 우연인데 해석을 시도했다. 그 우연들이 나를 구제할거라 믿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일어난 일이었다.


관계에서도 그랬다. 이 관계가 나를 구제해줄 거라 믿었다. 저 관계는 나를 빛나게 할 거라 생각했다. 왜냐면 나는 보잘것없는 사람이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평생 시시한 인생을 맴돌 것 같았다. 그래서 지레 포기하고 놓은 관계가 부지기수다. 관계를 유지·보수하려면 노력이 필요한데 나는 논의가 요구되는 시점이면 단념했다.


저 사람들이 알아서 내 속을 알아내주길 바랬다. 내 속을 모르거나 싫은 소리를 하거나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하면 그냥 놨다. 저 관계는 생각만큼 특별하지 않았어. 그렇게 기만했다. 외로움은 또 잘 느끼는 인간이라 이곳저곳 다른 관계를 둘러봤다. 악순환이었다. 그 때는 내가 이렇게 비겁한 사람이라는 것도 몰랐다. 타인에게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글을 쓰면서 나를 알았다. 이렇게 생겨먹은 인간이었는지 이렇게 글러먹은 인간이었는지 알게 됐다. 글엔 자기 생각이 필연적으로 투영되고 잘 쓰려면 뭉쳐 있던 의식들을 정리해야 했다.


사색하는 과정에서 내가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분명해졌다. 특별해지고 싶은데 단념하고, 범람하는 우연들에 이유를 찾는 나는 이만큼이나마 쥐고 있는 삶엔 충실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 썼다. 좀 더 나를 알고 싶어서 글을 썼다. 대부분의 글에 나를 드러내려 했다. 솔직해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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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원, 썸웨어>에 등장하는 라미와 멜라니는 삶이 버겁다. 라미는 본인이 불행을 옮기는 존재라고 인식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다. 자기혐오에 시달린다. 멜라니는 사랑이 지나간 공백에 공허함을 느낀다. 그 공백을 어떻게든 메꾸고 싶어 혈안이 돼 정작 자기는 돌보지 못한다. 이들은 의사와 상담하며 자기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처음 진료를 시작할 때 라미는 의사에게 묻는다. “뭘 어떻게 시작하면 되죠” 머릿속에 떠다니는 것들을 말하고 쓰고 표현하지 않으면 자기 생각이 될 수 없다. 라미는 표현하지 않는 인간이었고 그래서 자기 불행을 온전히 대면하지 못했다. 그럴 거라는 감각만으로 자신을 재단했다. 라미는 말함으로써 자기 불행을 마주한다.


요즘 어떠냐는 의례적인 인사에 좋지 않다고 말한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고 덧붙인다. 불행을 전염시킬까봐 두려웠던 라미는 불행이 그런 속성이 아님을 알게 된 거였다. 자기가 그런 인간이 아니란 것도 알았다. 내 불행을 알아봐달라는 호소가 아니었다. 연민해달라는 구걸도 아니었다. 좋지 않다, 우울하다고 말함으로써 내가 이런 상태임을 인정하게 됐다. 라미는 이제 자기가 어떤지 안다. 라미는 표류했던 관념을 말함으로써 자기 생각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자기가 어떤 인간인지도 돌아본다.


멜라니는 데이팅 앱을 통해 공허함을 충족하려 든다. 무언가 메꾸려는 의도에서 시작한 관계들은 오래가지 못하고 상대는 계속 바뀐다. 자신의 공허함을 관계에서 채우려 하니 유지는커녕 휘발되고 만다. 멜라니는 의사에게 그를 너무 사랑했다고 말한다. “그에게 모든 걸 맞췄다” 그러니 그 관계에서 스스로가 설 곳은 없었다. 멜라니는 자기를 드러내지 못하고 그를 사랑했다. 멜라니 역시 말함으로써 자기를 돌아본다.


영화를 같이 본 친구는 관계에 대해 말했다. 관계맺음은 자아가 확장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관계 맺으며 서로의 세계에 진입하고, 그 일 자체가 내 자아가 확장되는 경험이라는 맥락이었다. 모르는 영역으로 들어가는 경험은 시야를 넓혀주니까. 그러나 건강하게 관계 맺고 자아를 확장하려면 결국 내 자아가 어떤지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나는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게 이것이라고 이해한다. 라미와 멜라니는 자기가 어떤 인간인지 안 상태에서 서로를 만난다. 자기를 알고 자기 삶에 충실하면 어떤 관계든 특별해진다. 라미와 멜라니도 그럴테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나를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썸원 썸웨어
- Someone Somewhere -


감독 : 세드릭 클라피쉬
 

출연

프랑수아 시빌, 아나 지라르도


장르 : 멜로/로맨스

개봉
2020년 04월 29일

등급
12세 관람가

상영시간 : 1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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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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