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아무튼은, [도서]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 ‘아무튼’
글 입력 2020.05.01 10:2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어쩌면 해피엔딩>이라는 뮤지컬의 이름을 ‘어차피 해피엔딩’ 혹은 ‘어쨌든 해피엔딩’으로 자주 헷갈려 부르곤 했다. ‘올리버’와 ‘클레어’, 두 주인공의 결말이 ‘어쩌면’이 아니라 ‘어쨌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이 무의식중에 투영된 듯하다.

 

‘어쩌면’을 ‘어차피’나 ‘어쨌든’으로 바꾸어 말해도 전혀 괴리감이 들지 않는 것처럼, 한국어에는 비슷해 보일지라도 그 의미가 미묘하게 다른 부사들이 무궁무진하다. 그 수많은 부사 중에 ‘아무튼’이라는 이름의 에세이 시리즈가 2017년에 시작해 현재까지 활발하게 출간되고 있다.

 

아무튼 시리즈가 있다는 것을 접하고 책을 실제로 읽기 전에는 <어쩌면 해피엔딩>의 제목을 혼동했던 것처럼 ‘그 시리즈 이름이 뭐였더라... 어쩌면? 어차피? 이런 부사였는데...’라며 헷갈려 했다. 하지만 『아무튼, 예능』, 『아무튼, 잡지』, 『아무튼, 술』 등 책을 몇 권 읽고 난 후에는 ‘아무튼’이라는 이름을 절대 헷갈릴 수 없게 되었다.


[크기변환]47186139354109510_126368229.jpg

 

‘아무튼’은 ‘의견이나 일의 성질, 형편, 상태 따위가 어떻게 되어 있든’을 뜻하는 부사다. ‘어쩌면’도, ‘어차피’도 아닌, ‘아무튼’을 제목으로 한 만큼, 아무튼 시리즈는 ‘생각만 해도 좋은, 그런 한 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피난처가 되는 한 가지’를 가진 각각의 작가들은 그 대상에 대한 이야기를 책 한 권에 걸쳐 마음껏 풀어낸다.

 

그 대상은 피트니스, 요가, 쇼핑처럼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취미로 삼고 있는 것부터 스웨터, 택시, 양말처럼 내 기준에서는 이 소재로 책 한 권을 다 쓸 수 있을까 싶은 것까지 그야말로 다종다양하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해 보이는 대상을 가지고 또 누군가는 책 한 권의 분량을 쓰고도 모자란다고 할 만큼의 이야기를 쓴다. 그 글들 속에 가득한 열정과 애정을 보고 있자면 이 시리즈의 이름은 반드시 ‘아무튼’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렇게 첫 시리즈인 『아무튼, 피트니스』가 나온 지 2년 반 만에 ‘아무튼’의 이름을 달고 28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 아무튼은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크기변환]아무튼,_oo.jpg

 

 

자기계발서나 소위 ‘힐링 에세이’라고 칭해지는 책은 보통 성공을 위한 방법을 개조식으로 제시하거나, ‘사회가 요구하는 정답을 따르지 말고 ‘나’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행복은 나 자신만이 찾을 수 있다‘는 등의 메시지를 나열한다. 하지만 독자 스스로 사유하게는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답을 따르지 말라는 또 다른 ‘정답’을 주입할 뿐이다. 작가의 의견만 존재하는 책은 그다지 좋은 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손을 떠나온 텍스트에는 독자의 몫이 남아있어야 한다. 텍스트가 독자에 의해 해석되고 다양한 의견과 감상이 더해질 때 비로소 책은 완성되는 것 아닐까.


아무튼 시리즈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가져야 한다’고 직접 말하는 대신에, 생각만 해도 좋은 각자의 무언가를 아주 세심하고도 열정적으로 보여준다. 작가의 취향과 그 취향으로 만들어진 작가만의 세계를 마음껏 서술한다. ‘아무튼’의 작가들은 무언가를 단순히 좋아한다는 것을 넘어서 그 애호가 그 사람 자체가 되는 과정을 ‘덕질’ 하듯이 친근하게 서술하여 공감을 이끌어낸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얻은 자신만의 철학을 깊이 있게 녹여내어 그 작가만의 스타일로 소개한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깃든 텍스트는 각자의 ‘아무튼’을 생각하게 하는 독자의 몫을 남긴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시시때때로 벌어지는 세상에서, 다음 스텝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막연하고 막막할 때에 일단 다 모르겠고, ‘아무튼 술!’이라는 명료한 답 하나라도 가지고 있어 다행이다.”- 『아무튼, 술』, <프롤로그>


“싫으나 좋으나 내 시간은 텔레비전과 함께 흐르고 있다. 관 안쪽에 텔레비전을 달 수 있는지, 달 수 있다면 사후 얼마나 유지되는지, 그걸 알아봐야겠다.” - 『아무튼, 예능』, <나의 텔레비전에게>

 


아무튼 시리즈를 처음 접한 독자들은 평소 자신의 관심사와 비슷한 대상을 읽지만, 그 속에서 각각의 작가가 만들어낸 각양각색의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된다.


자신의 일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대상이지만, 평소에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무언가를 누군가는 ‘피난처’라고 부를 만큼 좋아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독자들의 시각도 넓어진다. 그렇게 넓어진 시각에 ‘아무튼’ 좋은 무언가가 그리 거창할 필요 없다는 용기가 더해져 독자들은 자신의 취향과 주관을 고민하게 된다.

 

자신의 취향과 주관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과 그것에 대해 시간을 들여 고민해서 명확히 말할 수 있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 싫어하는지를 정확히 인지하면 ‘나’를 이해하고 스스로 자신의 삶의 방식을 존중할 수 있다. 또한 아무튼 시리즈를 통해 본 다양한 삶의 형태는 타인의 취향과 삶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태도도 갖게 한다.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어차피’ 해야 하는 것들로 둘러싸여 있을 때, ‘어쩌면’ 좋은 것도 아닌, ‘아무튼’ 좋은 무언가가 누구에게나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이 에세이 시리즈가 좋다. 그래서 앞으로 ‘아무튼’을 쓰게 될지도 모르는 잠재적 작가들을, 취향을 가진 모든 이들을 응원하며 계속 읽을 것이다. 아무튼.

 

 

[정다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