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엄마 시선 [사람]

글 입력 2020.04.3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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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 일러스트 손은경f2cb4da72cad942e5e08c05bcc64dfd3.jpg

 

 

올해 들어 종종 엄마와 아주 통하는 부분이 여럿 생겼더랬다.


예를 들면 이런거. 며칠 간 짜장면이 땡겼었는데 딱 마침 저녁을 굶고 집에 온 날, 엄마가 진작 시킨 식은 짜장면이 있었던 것, 요즘 고구마 케이크를 통 먹은 일이 없어 아쉽던 차에, 아주 우연히 엄마가 생일 케이크로 고구마 케익을 사온 것. 딱 한 캔만, 맥주를 고민하던 귀갓길에 ‘맥주 한 캔만 사오라’는 엄마의 말. 어쩌다 보니 거의 먹을 것으로 통하지만, 또 그런 일만큼 통해서 기쁜 일이 없다.

 

‘엄마 어떻게 알았어? 내가 완전 먹고싶어했는데’

 

‘그러게~ 요즘 좀 잘통하네. 엄마가 너 다 꿰뚫어보나보다.’

 

정말 그런가보다. ‘엄마는 내 맘 몰라!’ 라며 방문 닫기가 취미였던 때가 엊그젠데. 내 마음도 제대로 모르면서 괜히 분한 마음에 쏘아냈던 지난 날의 내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엄마는 알게 모르게 다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엄만 진짜 다 알고 있었을까. 언제부턴가 ‘다 안다’ 싶은 그 무심하고도 사려 깊은 엄마의 눈빛을 느끼게 된 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무뚝뚝하다는 첫째인 나는 대학생이 되고 나서, 아르바이트건 인턴이건 근로자가 되고나서, 유독 더 집에서만큼은 말수가 줄었다. 말수가 줄었다기 보단, 마음을 내비치는 일이 잘 없게 되었다.

 

처음엔 그런 내게 엄마는 한 두어 가지씩 조심스럽게 묻는 눈치였다. 아직 단단하긴 커녕 한참을 무른, 나이만 먹은 어린 딸이 밖에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무엇을 왜, 겪고나서 어떤 마음을 떠안고 집에 귀가했는지, 당연히 궁금한 사실이었겠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한참 전부터 묻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내게서 돌아온 답이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유추해본다.

 

대신 요즘은 ‘그려러니’ 하는 엄마의 시선을 등 뒤에서 느끼곤 한다.


*

  

‘저 애 또 또, 안하던 청소를 하네. 뭐가 또 마음에 안드나보다. 주말에 몰아서 하려고 일부로 그대로 둔 건데, 세탁기 문 닫는 소리가 심상치 않은 것 보니까.. 지 스스로 속이 상하는 일이 있었나.’

 

‘밤 늦게 샤워하면서 노래 듣지 말라니까, 아휴. 오늘 고되었나 보구나.‘

 

‘간만에 차 끓여 마시는 거 보니 오늘은 좀 괜찮았나보네. 내일 또 출근해야 할 텐데 늦게까지 책 볼 요량인가보군. 그래, 오늘은 길게 즐기렴’

 

*

 

뭐 이런 시선, 실은 ‘통했다’라고 느끼는 순간에, 어딘가 엄마의 시선이 내게 아주 깊숙히 닿아있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퇴근 후 늦은 저녁 핸드폰 너머로 들리던 허기진 목소리나, 왠일로 유독 생크림 빵에는 인색하던 나의 손이나, 월화수목금. 인턴 출퇴근 후 토. 아르바이트까지 클리어한 딸의 마음을. 짜장면으로, 고구마 케이크로, 맥주 한 캔으로. 엄마의 시선 덕분에 모두 다 괜찮아진다. 엄마 고마워.

 

(글을 쓰는 와중에, 카페 옆 자리의 한 여자아이가 핸드폰의 렌즈로 마음껏 엄마를 담는다. 엄마를 보는 저 딸아이의 시선은 어떨까, 아무래도 360도로 돌아가며 엄마를 야무지게 찍는 것 보니 엄마의 구석구석 곳곳이 궁금한가보다. 아이의 시선이 닿은 엄마의 표정이, 아이보다 해맑아보였다. 우리 엄마 해맑은 모습을 본 지가 언제더라, 오늘은 집에 조금 일찍 들어가봐야겠다.)

 

 

 

권소희.jpg

 

 

[권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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