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부루마블처럼 부자가 된다면, 박소은의 '고강동' [음악]

타인의 사적인 이야기
글 입력 2020.04.27 13:11
댓글 1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KakaoTalk_20200426_175916769_02.jpg

 

 

 

부루마블이라는 상상



하루는 로또에 당첨되는 상상에 빠졌다. 만약 10억이라는 돈이 내 통장에 그대로 들어온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보다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고, 그 돈만 있으면 당장 인생이 바뀔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자동차도 사고, 명품 악기도 사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도 하고, 병원도 같이 갈 수 있었다. 모든 문제가 전부 해결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상상과 현실은 달랐다. 돈이 없는 현실은 당연히 차갑다. 자동차 없이 먼 거리를 가야 하며, 낡은 악기를 쓰며, 몸이 아파도 쉽게 병원에 가지 못한다. 복권은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복과 행운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게 복권이 아니었나.


그래도 이러한 상상을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부자가 되는 상상은 일종의 위안이기 때문이다. 실현 불가능한 계획일지라도, '행복 회로'는 일종의 진통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역전 이야기를 좋아한다. 흥부와 놀부, 신데렐라 이야기, 성공한 사업가 이야기를 듣고 위안을 얻는다. 이러한 이야기는 듣고만 있어도 즐거워진다.


사람들은 심지어 게임에서도 새로운 인생에 도전한다. 부루마블은 이러한 인생역전의 서사를 담고 있는 게임이다. 부루마블에서는 아무 자본 없이 시작해도, 종이 몇 장만으로도 가볍게 '억' 소리가 난다. 거금을 투자해 몇 배로 벌고, 잃기도 한다. 비록 가짜 종이돈일지라도, 이렇게 많은 돈을 다루는 기분은 짜릿하다.


그래서 우리는 부루마블이라는 상상을 한다.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그 상상은 즐거움이자 위안으로 충분하다. 또는, 부루마블에서 진짜 희망을 품을 수도 있다. 정말 부자가 될지 누가 알 수 있을까. 부루마블이라는 상상은 현실 속 냉소와 희망이 뒤섞여 있다.


여기 부루마블을 깔고 누워 가짜 종이돈에 파묻힌 싱어송라이터가 있다. <고강동>은 싱어송라이터 박소은의 첫 정규앨범이다. <고강동>의 앨범커버는 술병과 부루마블, 지도와 지구본이 놓여있다. 세상, 돈, 술과 우리의 모습은 현실을 살아가는 솔직한 모습이다.

 

 

 

고강동


 

KakaoTalk_20200426_175916769_01.jpg



나는 돈을 아주아주 많이 벌어서

고강동을 통째로 다 사버릴 거야

할아버지 할머니가 거기 살거든

서울 의원도 마트도 당신들 거예요.


 

앨범의 동명 타이틀, '고강동'의 제목은 경기도 부천시의 행정구역을 의미한다. 박소은은 가사에서 고강동을 통째로 다 사버린다고 말한다. 동네를 통째로 사버린다니, 정말 비범한 발상이다. 토지만을 매입해도 동네를 전부 사기에는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 또한, 나라를 사고 비행기를 산다는 다짐은 부루마블 게임에서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고강동'은 원대한 다짐에 의심이 없다. 실현 불가능한 일을 당당하게 약속한다. '아주아주 돈을 많이 벌고', '아주아주 지독하게 유명해질' 것이라 이야기한다.

 


저는 보통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것저것 퍼다 주며 행복함을 느끼는데, 이게 점점 너무 어려워지고 벅차지는 거예요. 왜일까, 왜일까-문제는 다 돈이더라고요. (중략) 제 사람들을 위해서요. 자동차 한 대쯤 눈 감고 선물할 수 있을 때까지!


 

실현 불가능한 일을 노래하는 이유는 타인을 위해서다. 많은 돈을 벌어 가족들에게 마트와 백화점을 주고, 친구들에게 자동차를 선물한다. 물질을 원하는 이유는 타인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기 위함이다. '고강동'의 가사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서사가 아니다. 금반지 명품 차를 자랑하겠다는 몇몇 노래보다 이 컨트리 음악은 훨씬 크고 깊은 그릇이다.


'고강동'의 가사는 비장하다. 아름다운 청춘 같은 음악은 사실 현실적인 돈 이야기다. '고강동'의 상황은 부의 격차로 발생하지만, 노래는 돈이 많고 적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간접적으로 노래한다. 누군가 당연히 누리는 것을 가지고 싶다고 이야기하며 소박한 희망을 간절하게 노래한다. 컴퓨터와 카메라를 사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친구들과 따로 여행을 출발하고 싶다고 말한다.


'고강동'은 현실을 비극으로 노래하지 않는다. 오히려 돈을 아주 많이 벌어 가족과 친구를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다짐을 한다. 타인을 위한 거대한 약속인 '고강동'은 일종의 비장한 결심이다.


 

 

 

 

인생이 박살나던 순간



KakaoTalk_20200426_175916769_03.jpg



'인생이 박살 나던 순간'이라는 제목만 읽어보자. 아마 무대에서 불꽃이 타오르고 기타를 부수는 락, 메탈 음악이 떠오를 수도 있다. 그만큼 '박살'이라는 단어는 거칠고 강해 쉽게 쓰이지 않는 표현이다.


가사 또한 '불행이 내 목을 조를 때', '모든 것이 조각났을 때'라고 말한다. 그리고 '주머니에 돈이 없을 때', '사람이 무서워졌을 때'라는 비극적인 상황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자신에게 돌리며, '내가 제일 싫다'라고 말한다. '인생이 박살 나던 순간'은 비관의 감정을 담아냈다.


하지만 가사와 반대로 노래는 평화롭다. 잔잔한 통기타 소리와 차분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가사와 제목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무언가 박살 나는 음악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인생이 박살 나던 순간'은 사적인 비극을 섬세하게 담아낸 노래다. 비관으로 절망하기보다 차분함으로 흘려보내는 감정이다.

 


때로는 오늘이 미친 듯 즐겁다가도 당장 살아가야 할 내일이 지겹고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럴 때마다 저는 스스로 약을 처방하듯 노래를 만들곤 했습니다.



인생이 박살난 비극을 차분하게 노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소은에게 비극을 노래하는 방식은 일종의 '처방'이었다. 삶에서 느껴지는 일련의 감정들을 이겨내고, 지나가기 위해 스스로 약을 처방하듯 노래를 만들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비극을 극복한다. 외부의 에너지로 극복하는 사람도 있고, 마음속의 힘으로 극복하는 사람도 있다. '인생이 박살 나던 순간'은 박소은의 극복이다. 그녀만의 극복은 인생이 박살 나던 순간을 차분하게 노래했다. 그리고 그 노래는 무기력과 비관, 따뜻함과 차분함 사이에서 붕 뜬 감정을 만든다.


 

 

 

 

 

사적인 낭만



KakaoTalk_20200426_183052912.jpg



<고강동>은 삶의 어두운 면도 비추지만, 사적인 낭만도 가득하다. '눈을 맞춰 술잔을 채워'는 술기운과 설렘이 느껴지는 노래다. 세상의 우스꽝스러운 제약에 맞추지 않고, 순간에 집중해 눈을 맞추고 술잔을 채워야 한다고 노래한다. 바닥에 별들이 기어 다니기 때문이고, 천장에 파도가 일렁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문학작품도 빌려 노래한다. '너는 나의 문학'은 진부한 사랑 표현을 문학에 대입한다. 즐겨 읽었던 데미안, 노르웨이의 숲, 호밀밭의 파수꾼 등의 고전문학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닳아 없어질 때까지 계속 읽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보통의 연애', '너랑 있으면'까지 등장하는 사랑의 표현들은 솔직하다. 꾸밈이 없이 표현한 가사는 오히려 노래를 더욱 꾸며준다. 솔직하고 담백한 표현은 마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꺼낸 것 같다. 박소은의 사적인 낭만은 솔직하기에 더욱 아름답다.

 


첫 정규 앨범 <고강동>에서는 단편적인, 깊은, 꺼내고 싶지 않았던, 단순한 푸념부터 사랑의 시작과 끝, 비치기 싫은 삶의 어두운 부분까지 담을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살다 보면 타인의 사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종종 '이런 이야기까지 들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내면을 보여주는 때가 있다. <고강동>은 그런 앨범이다. 돈을 벌고 싶다는 이야기, 간절한 사랑, 어두움과 우울함까지 보여준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상대방과 가까워지고 친밀해진다. 그런 이야기 때문에 <고강동>은 특별한 앨범이다. 다른 음악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단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꺼낸 노래들은 <고강동>이 가진 특별함이다.


박소은의 첫 번째 정규앨범 <고강동>은 사적인 이야기다. 솔직하기 때문에 내면의 모든 감정을 보여주려 했다. 앨범이 어둡기만 하거나 사랑스럽기만 했다면, 박소은의 전부가 아닌 일부였을 것이다. <고강동>은 가사에 집중할 때 비로소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박소은의 모든 마음을 끄집어낸 일기장 같은 작품이다.

 

 


 

 

앨범커버_3000.jpg

 

 

아티스트명: 박소은

 

앨범명: 고강동

 

타이틀 곡: 06. 고강동

 

기획사: withHC, pondsound

 

유통사: 미러볼뮤직

 

발매일: 2020년 03월 26일 (목)

 

 

 

김용준.jpg

 


[김용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댓글1
  •  
  • ㅇㅇ
    • 너무 좋아요
    • 0 0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