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제야 던지는 질문 [영화]

글 입력 2020.04.1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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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편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 장르 중 ‘범죄’를 좋아한다. 내가 경험할 수 없는 이야기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물론 나는 영웅이 될 수도 없고, 찰리가 운영하는 초콜릿 공장에 갈 수도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 ‘범죄’ 영화는 현실에서 일어날 것 같아서 좋아한다. 모순되는 말이긴 하다. 경험할 수 없지만 일어날 것 같아서 좋아하는 말이, 하지만 이것이 범죄 영화를 좋아하는 가장 보편적인 감정이 아닐까. 범죄자가 판을 치는 세상에 자신의 사명을 다하여 잡는 경찰, 검사들이 현실에서도 있어 주길 바라는 희망 때문일 것이다.


영화를 보는 이유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를 행복을, 휴식을, 취미를, 업계 분석을 위해서 영화를 본다. 제각각의 이유로 영화를 보지만 동등한 관객으로서 영화를 마주한다. 범죄 영화는 사람들에게 경험할 수 없는 현실을 목격하게 해준다. 관객은 그 현장에서 목격자로서만 존재한다. 자신의 형상을 잘 감추고 있는 목격자로 말이다. 경찰에게 현장을 말할 수도, 범인이 누군지 말할 수도 없다. 그저 경찰에게 파이팅이라고 말하는 것이 전부이다. 참담한 현실에서 눈 돌려서 영화의 창에서 빛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주인공이 범인을 잡을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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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참담한 현실에서 빛을 보려는 영화가 아닌 오히려 그 참담한 속에 깊게 관여하는 영화가 있다. 바로 영화 ‘추격자’다. ‘추격자’는 범죄 영화다. 관객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증언할 수 없는 목격자로서만 존재한다. 영화로 빛을 보고자 한 관객들은 오히려 현실의 잔혹함보다 영화적 잔인함에 눈을 감고야 만다. 이것이 범죄 영화를 좋아하는 내가 범죄 영화 보는 것을 잠시 멈춘 이유다. 영화는 가상이라는 명분 아래에서 폭력을 재생산하고 있었다. 잔혹한 이야기를 그저 잔혹하게만 보여준다. 과연 칭찬받아야 하는 작품이 맞는가. 2008년에 제작된 영화를 2020년이 되어 다시 질문을 던진다. 이 영화는 과연 좋은 작품인가.


왜 이 영화가 사랑받을까. 영화는 너무나 처절하게 잔인한 현장을 담는다. 영화감독 박찬욱의 작품을 보면 복수극을 이야기하고,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처절하게 잔인함을 쫓아가지는 않는다. 그의 영화적 시각은 폭력을 두 눈으로 담지는 않는다. 그저 앞과 뒤를 연결하여 그런 상황이 있었겠다는 추측만을 남녀 놓는다. 하지만 관객은 영화를 이해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 충분히 관객은 그 안의 사건을 이해할 수 있다.

 

잔인함을 잔인함으로 묘사하는 작품은 그저 관객을 자극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관객을 자극하여 관객을 모으는 영화를 과연 우리는 작품성이 있는 영화라고 칭할 수 있는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영화 추격자를 보면 아이가 등장한다. 미연의 딸이다. 미연의 딸이 등장한 순간 다시 불편한 심리가 작동되었다.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은 범죄자를 잡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순간 피해자 딸의 등장은 관객이 이 이야기에서 객관성을 잃어버린다. 물론 이 이야기는 관객이 객관적이지 않아도 된다. 절대적인 악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해자의 가족을 등장함으로 이야기의 탄력성을 잃어버리고, 주인공의 행동에 계속해서 브레이크가 밟힌다. 이 이야기에서 상관없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등장하여 영화는 자신이 가야 하는 서사를 잃어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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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자극성이 다분하다. 계속된 여성 희생자만이 나온다. 그리고 그 현장을 암시 처리를 하는 것이 아닌 실제로 묘사를 한다.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연기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함만이 남는다. 영화적 자극은 영화의 흥행, 관객의 흥미의 선행 조건이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마치 자극이 흥행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도 되는 것 마냥,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자극성을 추구한다.

 

*


영화는 현실의 거울이기도 하다.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해리포터의 거울처럼 우리가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의 희망을 담는 그런 역할도 한다. 그렇기에 영웅 서사를 담은 영화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영화 ‘추격자’는 진정한 우리의 현실도 아니며 우리의 이상도 아니다. 잔인한 현장을 잔인하게만 묘사하는 영화를 우리는 환영하는 것이 과연 마땅하다고 볼 수 있을까.


이 불편함은 영화 ‘추격자’만 속하는 말은 아니다. 그저 오랜만에 본 범죄 영화가 한없이 불편하여서 대표적인 예시로 사용한 것일 뿐이다. 우리는 수많은 범죄 영화와 마주하면서 살아간다. 이런 영화를 보면, 예술을 추구할 자유와 사회적 옳음이 내 마음속에서 충돌해 버리고 만다. 이러한 자극성의 영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는 지속해서 이런 영화에 의문을 던져야 한다. 왜 이 영화를 폭력적으로 묘사를 했는가. 왜 한없이 잔인함을 추구하는가. 눈을 감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계속된 질문으로 감독 스스로 자신의 예술과 어느 정도의 사회적 심리와 부합하는 영화를 만들도록 만들어야 한다. 관객이 먼저 눈을 감는 영화가 아닌 감독 스스로 눈 감는 영화가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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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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