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동화를 써 볼까? [문학]

강아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그저 악몽이 내리는 빗소리를 잠자코 듣고 있었어요.
글 입력 2020.04.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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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고 싶은 악몽 이야기.jpg

 

기분이 꿀꿀한 채 악몽은 소풍을 갔어요.

강아지만이 악몽을 볼 수가 있었어요.

"이건 불공평해" 악몽은 말했어요.

"나도 따뜻하고 행복한 꿈을 꾸고 싶어."

강아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그저 악몽이 내리는 빗소리를 잠자코 듣고 있었어요.

 

- 행복해지고 싶은 악몽 이야기, 성채윤


 

울했던 어느 날 그림을 그렸다. 어떤 맑은 날을 배경으로 알록달록한 돗자리에 놓인 예쁜 바스켓, 그리고 아기자기한 물품들이 가득한 모습의 사진을 보고 나서였다. 나도 그 소풍에 끼어들고 싶었다. 신나는 음악을 틀고 누워서 햇빛을 받으며 낮잠을 자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침울한 존재였다.


그래서 슬픈 유령의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나니 악몽처럼 보였다. 내가 그린 악몽을 빤히 쳐다보았다. 두 눈이 슬퍼보였다. 악몽이라서 매일매일 슬프겠지,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악몽도 매일 달라지는 존재인데, 또 다른 슬픔을 가지는 날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악몽도 행복해지고 싶은 날이 있지 않을까?"


 

그런 날이면 악몽은 지금까지의 우울함과 또 다르게 우울해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에게 행복한 꿈을 줘서 자신도 행복해지고 싶은데,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은 무서운 꿈 밖에 없는 게 악몽이니까 말이다. 생각해보면 악몽은 행복한 꿈을 꿀 희망조차 없는 것이다.

 

대 그리스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는 마치 활시위가 당겨져야 그 반대 방향으로 화살이 나아가는 것처럼, 반대되는 성질의 것이 있어야 그것이 발현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의 철학에 따르면 악몽이 있기 때문에 행복한 꿈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그런 생각은 행복해지고 싶은 악몽에게 그닥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다. 자신 그 자체만으로 행복해지고 싶은데, 마치 자신이 필요에 의해 쓰여지고 그렇게 자신은 수단이 되어 행복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악몽은 수많은 생각을 한다. 이 세계관에서는 생각이 구름이 된다. 슬픈 생각은 먹구름이 된다. 그렇게 악몽은 비를 쏟아낸다. 울음을 참아냈지만 말이다.

 

진 속 옆에 있는 바스켓을 강아지로 변주해서 그렸다. 우리나라 설화에 따르면 강아지가 귀신을 본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악몽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강아지는 인간과 달라서, 쓸데없이 다른 이의 슬픔에 첨언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강아지가 묵묵히 악몽의 빗소리를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이 부분을 읽고 말씀하셨다. '원래 묵묵히 들어주는 게 가장 위로가 될 때도 있지.'

 

리면서 나만의 상상력을 펼쳤고, 그 과정에서 점차 우울함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친구들과 가족들이 내가 그린 동화를 좋아해줬다.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행운인 것 같다. 덕분에 나는 동화에 매력을 느꼈다. 전문적인 동화 작가가 아니더라도, 심심하거나 우울할 때 동화 그림을 그려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민의 작가 토베 얀손의 위인전 '토베 얀손, 일과 사랑'도 샀다. 책 치고는 가격이 꽤 나갔지만, 지금이 살 적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랫동안 사고 싶어하던 책이었는데, 드디어 나는 동화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렇게 내 손에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어디로 가는 지는 모르겠어서 무섭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험하는 기분이기도 하다.


이상한 세상에 들어온 것처럼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성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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