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좋은 문장을 찾다가 발견한 '그토록 가지고 싶은 문장들' [도서]

마음에 새기고, 삶의 이정표로 두고 싶은 문장들
글 입력 2020.04.1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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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끄는 좌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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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자리 옆에 두고 가르침으로 삼고 있는 말이나 문구를 좌우명이라고 한다. 누구나 각자의 마음에 항상 자리하고 삶을 살아가는데 방향으로 삼을 좌우명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수천 년 전에 존재했던 어느 성인의 말을, 어떤 사람은 평상시 쓸 일이 없을 단어로 가득한 문장을 또 누군가는 거창할 필요 없다며 그저 일상적인 표어를 각자의 좌우명으로 삼을 것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 같은 문장을 찾는 것도 작심하고 해보려면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런 문장은 정말 우연히,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등장하기 마련이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랬다. 좋은 책과 좋은 문장들을 어디서라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세상이고, 접해보려고 시도도 했지만, 마음에 와닿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문장이나 문구는 한동안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위안이 되어준 문장은 정말 우연히 눈앞에 나타났다.

 

 

물감을 으깨고 붓을 놀리고 하는 것이 나의 일상생활이니 노상 꿈을 파먹고 산다고 할만도 하다. 웬일인지 해가 갈수록 성미가 더 꼼꼼해져서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는 무던히도 맴돌고 헤매야 한다. 나의 타고나지 못한 비천재(非天才)의 탓을 한탄도 해 보지만 나일론 깔깔이 같이 기계에서 쉽게 다량으로 쏟아져 나온 것보다는 누에가 뽕을 먹고 자라 실오라기를 뿜어내어 누에고치가 되어 명주나 비단이 짜여 나오는 식으로 모체(母體)의 태반(胎盤) 냄새가 나는 것이라야 한다고 나는 늘 자위해보는 것이다.


- 천경자,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 中

 

 
내가 아트인사이트에 첫 기고로 소개하기도 했던, 서울시립미술관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 전시회의 천경자 화백의 작품과 수필집 중에서 소개된 문구이다. 자신의 작업에 완성도를 의심하는 것은 모든 예술가에게 당연한 과정일 것이다. 그것이 내 재능의 부족 때문이라 탓하는 것도 당연한 수속이지만 천경자 화백은 기계로부터 흠 없이 빠르게 대량 생산하는 식보다는 자신의 작품에 배어있는,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기에 시간을 들이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향취에 의의를 두려 한다. 위의 문구는 스스로 부족함만을 절감하는 매일을 살고 있었던 나에게 위안을 주고 다시 걸어가게 해주는 의미로 마음속에 남아 있다.
 
최근에도 책을 읽으며 기대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이런 우연한 만남이다. 다양한 책들을 눈앞에서 직접 마주하기 어려운 날들이지만, 그러한 독서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어느새 익숙해진 전자도서관 사이트에 접속하자 화면 속 여러 책 중 하나가 내 눈길을 끈다. <그토록 가지고 싶은 문장들> 제목이 내가 모르는 여러 작품에서의 문장이, 누군가의 삶에 크게 자리한 문장이 담겨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었다.
 
 
 
그토록 가지고 싶은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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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가지고 싶은 문장들>의 저자 신정일은 문화사학자이며 작가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노동판을 전전하며 수만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여러 인문학, 역사 프로그램 및 사업을 펼친 저자는 다양한 시, 소설, 인문서, 철학서 등의 책 속에서 중요한 문장을 뽑아 독자에게 전달한다. 서문에서 저자는 책 속의 문장들은 메마른 영혼의 자양분 같고, 문장을 적어낸 동서고금의 현인들은 시공을 뛰어넘어 사숙한 자신의 진정한 스승이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마음에 울림을 주고,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문장은 프란츠 카프카의 말처럼 ‘도끼로 두개골을 내려치듯’ 강한 충격을 동반하면서 우리 가슴속에 들어오기에, 저자는 책을 통해 자신의 마음에 깊이 담긴 문장들을 소개함으로써 자신이 인생의 해답을 그 문장들에서 찾았듯이 독자 역시 그렇길 바란다고 말한다. 책을 읽으며 내 마음에 닿았던 문장과 그에 담긴 저자의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착함과 악함이 모두 다 내 스승이다
 

 

"...착하면 따르고 악하면 고칠 것이니, 착함과 악함이 모두 다 내 스승이다. 만일 악에 휩쓸려 빠져 들어가기만 한다면, 학문은 무엇 때문에 한다는 말이냐” 하였다.

 

 

위의 문장은 퇴계집의 내용 중 일부이다. 퇴계 이황의 애제자인 이덕홍이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는 사귀면 안 되는 것이냐, 악한 사람과 사귀다가 휩쓸러 빠져버리게 되면 어찌하냐는 물음에 이황은 한사코 착한 사람만 가려서 벗하려고 함은 편벽된 일이며 착함과 악함에도 모두 배울 점이 있다고 답한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떠오르는 내용이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스친 인연 중에는 오래 이어가고 싶거나 놓치기 아쉬운 인연도 있었지만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인연도 있었다. 몰지각하거나 불쾌한 언행을 일삼는 사람들을 보며 언젠가부터 마냥 화내기보다는 위의 사자성어를 떠올리며 나는 절대 저런 모습을 갖추지 않기를 다짐하고 다짐했었다. 결론적으로 다른 이의 부족함도 내게 배움이 되는 것이다.

 
글은 인간 그 자체이다
 

 

잘 쓰인 작품은 후세에 전해지는 유일한 것이다. 광범위한 지식, 사실의 특이성, 발견의 새로움 등이 포함되어야 할 저술이 지엽말절(枝葉末節)에만 치우쳐 있다면 그것은 불멸의 것이 될 수 없다. 만약 취미나 고귀성(高貴性)이나 재능이 없는 문장으로 쓰인 것이라면 어떠한 저작이건 간에 소멸되어 버리리라.

 

지식이나 사실의 발견 등은 쉽사리 남의 손에 넘어가 먼 곳으로 옮겨져 아주 재치 있는 사람의 손으로 다시 고쳐 쓰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은 인간의 외부에 속하는 것이지만, 글은 인간 그 자체이다. 만약 글이 고상하고 고귀하고 숭고하다면 저자는 모든 시대를 통해서 한결같은 존경을 받을 것이다.

 

 
18세기 박물학자인 뷔퐁의 말인데, 저자는 뷔퐁이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으로 취임하던 날의 연설문인 문체론에 담긴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하고 있다. 문장의 질서를 중시했고, 평이하거나 밝은 표현을 자제하며 난삽하고 전문적인 용어를 피할 것을 주문했다는 뷔퐁의 문체론을 설명하며 저자는 자신을 온전히 담은 글을 찾는 것은 매력적인 한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고, 그렇기에 그 여정을 지속할 것이라고 독자에게 말한다.
 
내가 적어왔던 글을 읽고 다시 나를 들여다본다. 내가 적고 싶은 글과 문장은 어떤 것일까. 나 자신을 온전히 글에 담기가 어렵다 느껴지는 것은 글재주에 자신이 없어서일까,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일까. 내 글에 나를 담아낼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물음의 답을 언제쯤 얻게 될지,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길을 찾는 까닭입니다.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다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돌아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우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내가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길을 찾는 까닭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길을 소개하며 저자는 우리 모두 태어난 순간부터 길을 잃었기에 죽는 날까지 길을 찾아 헤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체 홀로 헤매는 과정은 참으로 외로운 것이기에 그 길을 함께 걸어갈 우리라는 이름을 가지고 싶다고, 가끔 서로 기대고 부축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다시 길 위에 서 있다는 저자의 말에 인생은 끝없는 여행이라고 한 누군가의 비유가 생각난다. 끝없는 여행이건, 길을 헤매는 과정이건, 정해진 방황의 걸음을 이어가야 하기에 푸른 하늘도 길가의 만개한 꽃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서러운 마음이 일기도 했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필연적으로 있을 서러움과 외로움이라면 자연스레 여기는 연습을 이어가자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어려운 이에게 손 내밀고, 주변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그 여정에서 외로움을 덜어보자고.

 

 

 

새로운 이정표, 새로운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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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좌우명을 얻고 싶어서, 좋은 문장을 쓰고 싶었던 시점에서 <그토록 가지고 싶은 문장들>은 눈길을 끄는 제목이었다. 책을 완독한 지금은 그 문장들이 세상에 남겨지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이에 따른 저자 자신의 삶에 대한 고찰이 담긴 부분이 마음에 남는다.

 
인생이라는 방황 속에서 이정표가 되어주는, 암흑 속에서 의지가 되는 등불 같은 문장과 글을 찾는 과정을 책을 통해 배운 것 같다. 저자가 그랬듯, 내가 나아가는 매일 인생의 해답을 찾는 과정을 이어가려 한다. 삶의 길을 찾아 나만의 문장을 적어낼 수 있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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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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