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 [도서]

클래식을 접하는 새로운 방법
글 입력 2020.04.12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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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기억을 꺼내 본다. 한 다 여섯 살쯤이었을까. 잠자리에 누우면 애자 씨가 클래식 음악을 틀어 주었다. 아이들 정신 건강에 좋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전해 듣고 카세트테이프를 사 왔더라지. 누구의 음악이었는지, 어떤 멜로디였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심신안정 기능에 충실했던 탓인가. 밤마다 듣던 클래식 음악은 영어로, 라디오로 대체되었다.


습관처럼 클래식을 들었으니 커서도 찾을 법한데 자연스레 멀어졌다. 음악, 특히 클래식 음악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끄러웠다. 현대 음악이면 몰라도 기악곡은 음계가 뚜렷이 들린다. 그래서 클래식을 들으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사람을 신기하다고 여겼다. 온갖 계이름이 뒤섞이는 복잡한 가운데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니. 다 자라고 보니, 내가 별종이었다. 대부분 클래식을 계이름이 아닌 음악으로 즐기고 있었다.

 

이런 내가 클래식 책을 선뜻 읽고자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성악을 공부하는 친구의 노래를 듣고, 음악이 궁금해졌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등 이름은 알고, 작곡한 노래도 들으면 아는, 그러나 여전히 잘 모르는 클래식의 세계는 형성되어 왔는지. 물론 클래식 전문 서적도 아닌 이 책으로 음악사를 공부하려던 것은 아니다. 책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QR코드로 노래를 바로 들어볼 수 있어서. 바로 들으며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끌렸다.

 

 

클래식이야기 표지 입체.jpg


지은이: 이채훈

발행일: 2020년 4월 10일

판형: 145 * 215 / 356p

펴낸곳: 혜다

 

 

책의 활용 방법은 이러했다. 텍스트는 먼저 읽지 않는다. 대신 QR코드로 노래부터 듣는다. 일정 부분 듣고 마음에 들면 해당 텍스트를 읽는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넘긴다. QR코드 덕분에 노래를 굳이 찾지 않고서도 들을 수 있지만, 단점이 있다. 텍스트보다 코드가 너무 많다. 노래가 길기도 하다. 즉, 모든 음악을 다 태그하며 듣고, 글을 읽고, 기다리기 꽤 지친다. 이 책은 클래식 공부를 위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즐기기 위해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이제 내가 선택한 몇 노래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웅장함과 비애, 그 간극


 

<백조의 호수>의 작곡가, 차이콥스키가 첫 주자이다. 클래식은 몰라도 '빠----바바바바밤--빠밤--빠밤--'이라고 멜로디를 읊으면 모두가 알 노래이다.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 영화 <블랙스완>이 떠오른다. 불안과 어둠, 환희와 광기의 경계를 넘나들던 영화의 분위기가 흔히 동화로 알려진 결말보다 잘 어울린다.


책에서 링크를 달아준 발레도 해피엔딩이었지만, 외부 압박으로 바뀐 결말이라는 각주가 공감 갔다. 차이콥스키가 겪은 상황을 보았을 때 해피엔딩은 이질적이다. 자신을 부정당하고, 부정해야 하고, 소중한 사람을 잃고, 비슷한 방식으로 또 잃은 삶. 불행과 고통의 무게를 견딘 그가 행복을 노래하고 싶을까?


 

 


그의 노래는 대체로 우중충하다. 깊고 구슬프다. 그러나 절박하거나 애처롭지 않다. 덤덤함과 간절함의 어느 중간 지점을 담았다. 이 점이 좋다. 여러 관현악이 한데 어우러진 교향곡이기에 웅장함은 비교적 쉽게 만들어질 수 있다. 다만 묵직하지 않은 소리도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음악의 분위기는 특별하다.




당신의 여름은


 

봄은 어떤 계절인가? 밝고, 생기가 넘치고, 따스한 계절이라는 말에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름은? 무성한 초록에 생명을 느끼는가? 혹은 무덥고 찝찝한 느낌에 불쾌감을 느끼는가? 비발디가 제시한 여름은 이 둘과 다르다. 폭풍우가 몰아치며 좌중을 압도한다. 평소 생각한 여름과 전혀 다른 모양새였다.


 

 


거칠고 투박한 빗소리를 하프시코드가 잘 표현해서일까. 영상 속 연주도 좋지만,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이 나왔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순환하는 계절에 절정을 고를 순 없지만, 적어도 비발디가 만든 계절에서는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여름을.




예나 지금이나 예술은


 

마지막 이야기는 모차르트다. 정확히는 클레멘티와 모차르트의 연주 대결. 황제와 관중들이 보는 앞에서 둘은 대결을 펼쳤다. 클레멘티는 자신의 뛰어난 테크닉을 선보일 수 있도록 현란한 곡을 선택했다. 관중의 환호에 보답하여, 당시 인기 있던 <토카타>도 들려주며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반면, 모차르트는 템포가 느린 곡을 선택하여 자신의 표현력과 정서에 집중했다. 두 번째 선곡이 특히 인상 깊었다. 누구나 알 법한 '반짝반짝 작은 별'을 편곡하여 음악을 듣는 사람 모두가 즐길 수 있게 했다. 황제는 무승부라고 결론지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므로 누가 더 대단한 연주를 보여줬는지 판단할 순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언제 더 편하다고 느꼈을까? 전 세대의 사람을 관객으로 둔 자리였다면 단연 모차르트였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의 음악적 천재성이나 자질을 칭송하지만, 나는 그의 위대함을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청중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가 자유 음악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경영자의 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과 상업성을 연결 지어 말하면 거부감을 가지는 이들이 많다. 그래도 지금은 '예술경영인'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관련 육성사업을 진행하는 만큼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순수한' 예술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예술가도 사람이고, 사람은 먹고살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자기 한 몸을 건사하는 것, 예술이라고 다르겠는가.


다만 모차르트가 살던 그 시대에는 반발이 심했다. 자본에 눈이 멀었다며 그를 비난했다. 예술의 본질을 더럽혔다는 오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모차르트가 전한 예술의 본질은 이 에피소드에서 드러난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경계를 없애고 소통하는 자세야말로 예술을 업으로 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자질 아닐까.

 

 

 

박윤혜.jpg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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