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에게 사랑을 주제로 한 문학이란 사랑에 대한 도전이다. [문학]

사회에서 규정한 사랑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글로 표현하기.
글 입력 2020.04.1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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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사랑을 주제로 한 문학이란 사랑에 대한 도전이다. 

사회에서 규정한 사랑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글로 표현하기


 


그날의 빨강

 

미팅을 나갔다. 어김없이 서로의 물건 고르기 시간이 되었다.

빨간 립스틱과 알이 큰 시계

나는 망설임 없이 립스틱을 골랐다.

새빨간 색깔이 마음에 들었을 뿐이야. 생각했다.

고르고 상대를 보았다.

상대방의 빨간 입술이 보였다.

혹시 내가 미쳐버린 것은 아닐까.

그 사람의 손을 잡고 물었다.

당신이 왜 빨간 립스틱의 주인이죠?

그 사람이 한동안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당신이 더 잘 알지 않나요?’

“몰라요. 저는 몰라요.” “..실수에요. 누구나 한 번씩은 하는 실수 말이에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새빨간 색깔이 눈에 띄었을 뿐이에요.

‘아니, 당신은 이미 잘 알고 있어요.’ 그 사람이 말했다.

그랬다. 나는 그이의 새빨간 입술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새빨갛게 번진 입술이 나에게는 지금 그 무엇보다 매력적인걸.

나는 너의 그 새빨간 입술을 내 입술의 온 힘을 다해 받아들이겠어.


 

오늘은 내가 직접 쓴 시를 가져왔다.


사실 내 컴퓨터에 있는 창작 파일에 들어있는 시들 가운데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아니다. 이 시를 쓸 때 내가 이 시를 쓰고 있는지도 모른 채 홀린 듯이 키보드 자판을 두드렸다.


이 시를 여러 관점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퀴어를 주제로 하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고 미팅의 어지러움을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이 외의 의도가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이 문학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며 합평할 때는 내 생각을 알려주기보다는 다양한 해석을 유도한다.


그런데 이 시는 유일하게 나조차도 무슨 생각으로 썼는지 모르겠다. 쓰는 그 순간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정으로 쌓여 내 머릿속에 있는 말들을 당장 쏟아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다면 이 시는 어떤가?

 


사람들은 럽스타그램

나는 이별준비스타그램

 

올린다. 손잡은 모습. 껴안는 모습. 입 맞추는 순간.

그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며 생각한다. ‘행복해’

나는 한 손을 내어 애인과 손잡으며 생각한다. ‘이 손도 언젠가는 놓아버리겠지’

사람들은 입 맞추며 느낀다. ‘사랑하고 있구나, 우린’

나는 애인의 고개를 당겨 입 맞추며 눈을 감은 애인을 보고 생각한다. ‘키스는커녕 입에 손도 갖다 대지 못하는 순간이 오겠지’

사람들은 온 힘을 다해 껴안으며 말한다. “사랑해”

나는 뒤에서 나를 안는 동시에 내 어깨에 고개를 파묻는 애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지금은, 적어도 지금은 사랑해”

애인은 내 몸을 꽉 잡고 내 배를 어루만지며 말한다. “왜. 나는 너 평생 사랑할 건데”

나는 대답한다. “그래그래. 알겠어. 나도 그럴 거야.”

속으로 속삭인다. ‘미안해.’

연애할 때 나는 끝을 생각한다.

‘평생을 같이할 수는 없어. 언젠가는 서로가 지겨워질 수밖에.’

서로가 멀어질 때 흔들리는 나를 잡고 생각한다.

‘이럴 줄 알았어. 이번에도.’

그때 누군가 말한다.

“그냥 좀 받아주면 안 되는 거야? 왜 이렇게 비싸게 굴어. 나랑 만나는 게 그렇게 싫어? 피하지 마. 나 좀 봐.”

나는 대답한다. “그래. 그러던가.”

오늘도 나는 인스타그램을 한다.

남들은 럽스타그램 나는 럽스타그램 같은 ‘이별준비’스타그램

 


나는 사랑 관련 시를 쓰지 않는다. 사랑으로 인한 어떠한 감정도 어리석어 보인다. 부모님, 친구 혹은 스승과 제자 간의 사랑을 제외한 사람 간의 사랑에 나는 어떠한 의미도 부여할 수 없다. 사랑을 논하는 노래는 의미 없는 말만 되풀이하고 자신이 받는 상처만 강조한다.


자신을 잃고 사랑에만 매달린다. 그런데도 내가 이 시를 쓴 것은 일종의 사랑에 대한 도전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의 잘못된 틀에 사로잡혀 상처받고 상처 주던 그 수많은 어리석은 날들에 대한 애도이며 작별이며 헤어짐이다.

 

내가 사랑을 주제로 한 시를 쓰지 않는 다른 이유는 사회가 규정한 사랑에 내가 맞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이성 간의 사랑, 서로 아껴주고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사랑 등 사회에서 은연중에 요구하는 사랑의 형태는 음악, 신문, 그리고 영상 등 다양한 매체에서 나타난다.


사회가 제공하는 사랑의 형식에 맞추지 않는 사람은 면전에서 거부당하진 않아도 수도 없이 자신이 모르는 타자에 의해 끌어 내려진다. 나는 이 상황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빠지고 지친다. 누군가를 노려보며 질문을 던진다. 사랑은 그래서 도대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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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각기 다른 사랑의 정의를 내리고 그 틀에 맞추어서 사랑한다. 그 틀을 어리석었다 시간이 지난 후에 후회할 수도 있고 그 틀에 지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날 수도 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누구는 사랑 없이는 인생을 논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에서 멈추어야 하고 어느 정도의 크기로 내게 틈을 만들어놓아야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사랑에 대한 도전으로 사랑을 주제로 글을 쓰고 지우고 찢어 버린다. 과거의 나를 바라보고 사랑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서 삭제하고 쓴 글들 위에 눈물 몇 방울 흘려주고는 이 세상에서 없애버린다.

   

사랑은 때로 나를 제대로 서 있을 수 없게 하고 걷다가 눈물 흘리게 하고 질서 없이 내 머릿속에 생각을 채운다. 사랑으로 배우는 것도 있겠지만 나는 나를 사랑하는 데에 집중할 것이다. 앞으로도 그리고 내가 세상에서 역할을 다하고 사라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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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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