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래에서 쳐다보는 위 [공연예술]

어디에서 쳐다봐도 다 같은 사람들이 아닐까
글 입력 2020.04.09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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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포스터.jpg

 


시장경제에서 사람들은 돈과 물건 또는 서비스를 교환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돈이 없으면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어려운 처지가 된다. 돈을 벌어 사회 속 한 구성원이 되는 것을 ‘사람 구실’이라고 인정해 주기도 한다.


돈이라는 수단은 돈이 존재하는 목적을 잊게 한다. 목적이 뭔지조차 잊은 채 주객전도된 상태에서 돈을 버는 생활을 한다.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무언가를 사고 소비하고 얻어내는가? 연극 아랫것들의 위는 2019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출된 작품으로, 시장경제사회를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음을 던진다.

 

쓰레기 산 아래 안경소년은 친구들과 돈가스를 먹기 위해 요리책을 찾으러 수집가를 찾아간다. 수집가는 온갖 물건을 다 가지고 있어 그와 물건을 교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극은 안경소년이 모험을 떠나는 중에 만나는 인물들과 수집가, 윗구멍에서 떨어진 여자를 통해 무언가를 말하고자 한다.

 

쓰레기는 버려진 것이라고 극중 인물에 의해 묘사되지만 안경소년에게 쓰레기 더미는 자신이 찾는 요리책이 있을 수도 있는 가능성이다. 그가 찾고자하는 것은 명확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비싼 물건을 원한다. 원하는 것을 알고 있어도 그 대상이 사람의 마음이면 교환할 수 없다.


루시앙 골드만에 따르면, 시장경제 세상에서는 대상들이 돈이라는 교환가치로 매개화되어 대상의 질적 가치인 사용가치를 쫓는 사람들은 소외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사용가치를 쉽게 얻지 못한다. 이 연극에서는 배우들은 객석을 가리키며 ‘사람들’을 언급하는데,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비싼 물건을 얻지 못해서 자꾸 쓰레기 더미만 뒤지고 서로 속고 속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말한다.

 

연극을 보기 전까지 사람들은 쓰레기를 이제까지 잘못 알고 있었을 것이다. 쓰레기는 쓸모 없는 것이 아니라 버려진 것이다. 쓰레기 더미에서 찾았지만 버려진 시계는 누군가의 약속이고 돈가스 만드는 방법이 나와 있는 버려진 요리책은 친구들과 돈가스를 먹는 행복한 시간이다. 그러나 같은 쓰레기 더미에서 찾았더라도 값 비싸 보이는 반짝이는 조각은 발에 걷어차여서 동그랗게 깎인 보석 같이 보이는 쓸모 없는 유리조각이다.


수집가에게 가져가 비싼 물건으로 바꿀 요량으로 쓰레기 더미를 뒤져 나온 것은 목적 없이 파헤쳐진 쓸모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수집가는 비싼 물건만을 원하는 사람들이 교환하여 두고 간 쓰레기들을 모두 창고 아래로 버렸다. 사람들이 쓰레기라고, 쓸모 없다고 생각했던 것 중에는 사람들이 잊은 목적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목적, 잊혀지고 버려진 삶의 가치가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들은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아무리 뒤져도 마음이 허전하고 자신의 만족감의 목적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안경소년이 드물게 똑똑했던 이유는 그가 쓰레기를 뒤지는 이유가 있어서였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그것만을 위해 쓰레기를 뒤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아랫것들은 쓰레기가 쏟아져 내려오는 윗구멍을 동경한다. 위쪽 사람들은 모든 결핍을 다 충족시킬 수 있고 또 산 정상이라는 높은 곳의 수집가도 그럴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두 같은 사람들이다. 쓰레기만 떨어지는 윗구멍에서 떨어진 여자도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다. 쓰레기가 버려진 이유는 있지만 사람의 가치는 버려질 수 없는 것이다.


안경소년은 윗구멍에서 떨어진 여자는 물건이라고 수집가에게 말함으로써 그의 정곡을 찌른다. 이 말이 그의 정곡을 찌른 이유는 그가 이때껏 해온 행실 떄문이다. 수집가가 사람들이 비싼 물건만을 찾자 모든 물건의 가치를 동등하게 만들어 ‘쓰레기’로 취급해서 버렸다. 또 자신 이외의 사람들을 비하하며 자신에게 쓸모 없을 것 같으면 ‘쓰레기’로 취급한다. 안경소년은 수집가가 그랬듯 사람에게 마저 ‘물건’의 가치로 일갈해 버린 것이다. 안경소년은 요리책을 찾으려는 목적이 있기에 다른 사람들처럼 수집가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하지 않는다.

 

안경소년이 수집가의 정곡을 찌른 것처럼 사람의 가치를 교환가치보다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예는 극중에서 자주 발견된다. 예를 들어, 강도가 나타났다는 말에 다음과 같이 말하는 극중 인물은 이미 세상이 사람의 가치를 교환가치보다 소중하게 여겨주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을 뼈아프게 일깨운다.

 


“그럼 원래 곤경에 빠진 사람이 나오면 가만히 보고만 있는 거야. 저기 봐.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니까 조용히 입 다물고 뚫어져라 바라만 보잖아.”


 

쓰레기 산에 사는 사람들이나 연극을 보는 현실의 사람들이나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모든 것에 동등한 기준의 가치를 매겨 편리하게 살든지 어렵지만 각각의 것과 나의 사용가치를 구분하는 일에 목적을 가지든지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아무도 선택은 대신 해주지 않는다. 선택과 그 결과는 쓰레기 더미를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는다. 연극은 이러한 선택지를 관객들에게 던져주면서 자본주의 사회 속 사람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아래에서 쳐다보면 위는 높아 보이겠지만 위에서의 사람의 가치는 바뀌지 않을 것 같다.



 

김수연이다.jpg

 


[김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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