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죽음은 삶의 부재 - 스틸라이프 STILL LIFE [영화]

글 입력 2020.04.08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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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STILL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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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베르토 파졸리니 감독의 영화 STILL LIFE (2013)

 


44세의 공무원 존 메이는 주로 혼자 있다. 존의 업무는 누군가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죽은 사람에게 연락할 친지나 지인이 없을 때 존에게 연락이 온다. 존 메이는 곁에 아무도 남지 않은 고인의 지인을 찾아주는 사람이다. 죽은 사람의 집에 찾아가 정보를 수집하고, 사진과 유품을 바탕으로 추도문을 써주고, 장례를 치러준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홀로 죽은 누군가의 소식을 들은 존은 뜻밖의 장소로 가게 된다. 이번 고인은 존 메이의 바로 맞은편 집에 살던 남자였다. 그리고 그날 오후 존은 해고 통보를 받는다. 존은 마지막 사건이 되어버린 맞은편 집의 고인 '빌리 스토크'를 위해 그의 지인을 찾아 나선다.

 


 

무채색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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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메이는 언제나 정돈되어 있고 깔끔하다. 그를 둘러싼 세상은 무채색이다. 존은 언제나 먹던 것을 먹고, 가던 곳을 가고, 입던 것을 입는다. 무채색 이외에 자신에게 허락된 색은 파란색뿐이라는 것처럼 푸른 스웨터, 파란 앨범 정도가 그가 소유한 색의 전부다. 존의 파란 앨범에는 자신이 맡았던 고인들의 사진으로 가득하다.


파란색은 존에게 있어 열정과 애정을 나타낸다. 믿음과 신뢰의 상징이기도 한 파란색은 기업의 대표 컬러로도 많이 쓰인다. 존 메이 역시 공무원으로서 자신의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파란색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22년의 공무원 생활을 하며 존은 느리지만 하나하나 착실하게 사건을 종결해 나갔다. 존의 인생은 느리고 일정해서 언뜻 보면 멈춰버린 것만 같다. 변화하는 것은 그의 파란 앨범에 꽂히는 사진뿐이다. 감독은 죽은 이들의 뒤를 따라가는 존의 시간을 무채색으로 표현함으로써 현재성을 배제한다. 존이 진실하고 선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는 어쨌든 과거를 보며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음을 기억하라 Memento m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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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메이의 정물화 같은 식사 장면

 


'Still life'는 영어로 정물화를 의미한다. 정물화의 사물들은 여러 상징을 담고 있다. 꺾어진 꽃이나 해골은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화가들은 사람들이 그림을 보며 삶의 덧없음을 느끼기 바랐다.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존은 언제나 자신의 죽음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언제나 정리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 주의 깊게 양쪽을 살폈다. 그랬던 그가 마지막 고인 '빌리 스토크'를 위해 부탁을 하고, 새로운 음료를 마시고, 기차를 타고, 사람들을 만났다. 존은 그렇게 조금씩 살아있는 사람들과 연결되며 생기를 찾는다. 죽은 사람의 흔적을 되짚어가며 그 속에서 삶을 발견한다.

 

영화는 삶과 죽음을 공간을 통해 보여준다. 어둠이 빛의 부재이듯 죽음은 삶의 부재이다. 빛이 비치던 공간에 조명을 끄는 순간을 보여주며 빛이 없는 순간이, 죽음이 오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정물화처럼 말이다. 존의 죽음 이후에 존이 부재한 그의 공간들을 보여주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생명의 빈자리를 보여주고, 빛의 빈자리를 보여준다. 죽음은 삶의 부재이다. 그렇다면 삶은 죽음의 부재라고 할 수 있을까?

 

 

 

죽음 역시 삶의 일부


 

장례식은 죽은 이를 위한 것일까?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일까? 존을 해고한 상사는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장례식이란 건

산 사람들을 위한 거예요.

사실 살아있는 사람들은 모르는 게 낫잖아요.

장례식도, 슬픔도, 눈물도 없는 게"

 

 

맞는 말이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사람을 그리워하고 싶지, 죽음을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정말 슬픔과 눈물이 없는 게 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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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은 사람들과 만나며 자신의 삶을 찾았다. 무채색이 아닌 다양한 색을 자신의 삶에 들인다. 행복이 시작되려 하는 그 순간에 죽음이 문을 두드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마지막 존의 표정은 죽음을 무서워하며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빌리 스토크는 다사다난하게 살아왔지만 그 끝은 혼자였다. 좁고 더러운 집에 거리를 전전하며 술을 마시는 거지였던 그의 무덤에는 존의 노력으로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빌리의 죽음만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의 무덤 앞에서 빌리의 삶을 다시 한번 기억한다.

 

존 역시 홀로 죽었고, 홀로 묻혔고 아무도 찾아주는 이가 없었지만, 22년간 그가 곁을 지켜주었던 영혼들은 그의 무덤을 찾아온다. 영화는 존의 노고를 덧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존을 기리는 이들은 이미 죽은 영혼 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존은 죽음 역시 삶의 중요한 단계 중 하나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누구보다 관에서의 모습을 많이 생각했을 존이다. 그 자신이 받아들인 죽음을 우리가 안타까워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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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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