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계화 시대의 패러독스: 도서 '장벽의 시대'

글 입력 2020.04.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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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이제는 이미 진부해진 단어다. 그러나 세계화는 그동안 우리 삶의 수많은 것들을 집약적으로 설명하는 개념이었다. 전 세계적인 분업구조로 국가간의 경제가 서로 연관이 되고, 기술의 발달로 해외에 있는 사람들과도 소통하기 쉬워지면서 문화적 교류의 폭까지 넓어진 현대사회는 이 전체의 세계가 마치 하나의 생활권처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 나라에서 발생한 어느 이슈가, 비단 그 나라에 국한되는 이슈가 아닌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만 보아도 그렇다. 바이러스의 급진적인 감염이 처음으로 감지된 것은 중국 우한이었으나 현 시점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사례들을 무수히 확인할 수 있다. 왜 그럴까. 사람들의 생활 반경이 한 국가 내에 국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시아권 국가 출신이라 하더라도 유럽에 사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쉽다. 그의 학업이나 직업 활동을 영위하는 곳이 반드시 출신 국가와 일치하지는 않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시점에서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본 도서 "장벽의 시대"는 그 타이틀부터 강렬했다. 인류 역사상 유래없이 각 나라가 긴밀하게 얽힌 이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세계 도처에서 수많은 장벽들을 본다. 멀리 갈 것 없이, 당장 우리나라만 보아도 반백년이 넘은 장벽이 존재한다. 그것이 철조망이건, 벽이건, 그 외의 어떤 형태건 우리는 장벽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그것들을 끊임없이 보며 살아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이 장벽의 시대라는 표현을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적으로 대유행이 되어버린 이 극악의 상황에선 더더욱 필요하다.

 

 


 

< 책 소개 >


《지리의 힘》에서 지정학을 바탕으로 세계사의 숨은 법칙을 풀어낸 국제 문제 전문 기자 팀 마샬. 30년 이상 세계의 분쟁지역을 누벼온 그가 여전히 세계 곳곳에 세워지고 있는 물리적 장벽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여러 사회적 현상을 탐사했다.


이 책은 세계 곳곳의 물리적 장벽의 역사와 현재뿐 아니라 국가와 도시, 사회와 공동체 내부의 심리적 장벽을 추적한다. '장벽'을 키워드로 인류의 역사 양상과 국제 사회의 역학 관계, 현대인의 사회심리학적 현상을 풀어낸다.


이 책에서 독자는 중국의 만리장성부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장벽, 북아일랜드-아일랜드공화국 장벽, 미국-멕시코 장벽까지 세계 곳곳의 물리적 장벽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종교, 언어, 민족, 국가, 소득, 세대 등 다양한 기준에 따른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과도 맞닥뜨린다. 분리와 배제, 고립과 차별의 정치학이 낳은 산물인 장벽을 넘어 타협과 공존으로 향하는 길을 모색해보자.

 


 

 

장벽은 앞서 언급했던 물리적인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가 팬데믹이 된 상황에서, 우리는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무수히 많은 차별과 혐오를 보았다. 최초에 중국에서 시작되어 수많은 아시아 국가에서 바이러스가 창궐하자, 유럽과 영미권에서는 아시안이면 국적에 상관없이 잠재적 코로나 바이러스 보균자로 취급하였고, 각처에서 출입에 제한을 두었으며 묻지마 폭행을 일삼기까지 했다. 비록 사는 곳이 같다 하더라도, 백인과 유색인종을 분리하여 차별하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내재화한 것이다. 이에 반해 트위터에서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다"라는 의미의 해시태그 운동이 불붙듯 타올랐던 것은 그만큼 차별이 극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현 상황까지 고려해 본다면, 장벽은 유형의 것이든 무형의 것이든 간에 무언가를 분리하고 이를 서로 배제시키는 역할을 하는 일련의 모든 것들이라 볼 수 있다. 저자인 팀 마샬이 가장 쉽게 설명하는 예시는 당연히 국경(의 역할처럼 보이는 장벽)이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를 가로지르는 그 장벽은, 분명 국경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단순한 국경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벽이 맞다. 이는 국경의 장벽이 미국 사회 내에서 히스패닉의 비율이 급증하고 이들의 영향력이 커질 것을 우려하며, 히스패닉 인구 증가율 둔화를 위한 해결책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물리적인 장벽이 사실은 사회계층적인 장벽에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슷한 사례들은 아시아에서도, 중동에서도, 유럽에서도 심지어 아프리카에서도 발견된다. 소수민족들을 억압하며 하나의 중국을 추구하는 중국이나 카스트 제도로 인해 사회 내부를 완전히 분리해버리는 인도는 아주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내부의 요인에 의해서 유무형의 장벽이 쳐진 아시아권과는 달리, 아프리카에는 식민주의의 잔재로 인한 장벽이 남아있다. 이와는 또 다른 예로, 유럽은 쉥겐조약으로 인해 물리적 장벽의 제한 없이 유럽연합 회원국 간의 교류는 사실상 자유롭지만, 난민 문제와 같은 일부 사회적 가치를 두고서는 회원국 내부에서도 서로 극명하게 다른 반응을 보인다. 마샬이 제시하는 일련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결국 유형의 장벽은 무형의 장벽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팀 마샬이 제시한 장벽의 사례들은 이 세계에 난무하는 차별의 정치학을 암시한다. 이 차별은 무엇에서 기인하는가. 바로 집단 정체성이다. 그 집단은 때로는 인종이 되고 혹은 민족이 되며, 계층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 종교나 문화와 같은 요인들을 더하면 차별의 정치학이 불거져 나오기 위한 자양분을 쌓아나가는 셈이다. 그러나 이 단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교양과 인도주의적 가치라는 명분 때문에 표면적으로 차별을 표출하기 어렵다. 여기서 어떤 형태로든 작은 빌미 하나가 제공되는 순간,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이제 차별의 정치는, 여기에 심정적으로 공감하는 동조자들 나름의 정당성을 가지고 표출되기 시작한다.


마샬이 보여주는 사례들을 보면, 지금은 기존에 설득력을 가진다고 판단되어 왔던 주류 이론 중 하나인 신자유제도주의로는 설명하기 힘든 시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 세계는 서로 긴밀해졌고, 각 국가는 합리적 행위자인 동시에 국제레짐을 준수하는 행위자로서 협력하며 공존하는 시대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국의 보호 무역주의 기세가 강해졌고,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브렉시트가 일어나는 모습도 우리는 분명 보았다. 어디 그뿐만인가. 사회주의 정당들이 득세하던 유럽연합 회원국들에서도 우파 성향의 정부들이 세워지는 것도 유심히 봐야 할 현상들이다. 이 정도면 현대는 오히려 다시금 고립주의로 돌아가는 시대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물론 마샬이 보여준 사례들 중에서는 국가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언급도 있어 국가를 행위자로 보는 차원의 이론적 접근은 모든 사례를 설명하기에는 다소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저자가 제시한 해결책이 결국 미시적 차원의 접근이 아닌 거시적 차원의 접근이었기 때문에 보다 거시적인 이론적 틀로 살펴보고자 한다.


국가와 현상을 설명하는 수많은 이론 중, 신자유제도주의적 관점에 우선 입각하여 마샬의 논지를 살펴보자. 과연 이전에 제대로 기능(한다고 생각)해왔던 제도와 레짐이 현 국제 체제에서 국가들을 합리적 판단을 내리는 행위자로서 작동하게 만들고 있는가. 만일 그 합리성이 자국 최선의 이익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합리적이라 볼 수도 있겠다. 미국과 영국의 고립주의적인 선택들은 그런 자국 이기주의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러나 제도와 레짐은 그런 편협한 의미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니다. 국제레짐은 협력과 질서를 항상 추구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레짐이 국제사회 행위자들에게 강력한 규범처럼 작용하지 못하는 듯하다. 세계 최대 강국인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들의 행보에서조차 국제레짐과 반대되는 요소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고립주의가 외교정책 차원의 고립을 의미했다면, 지금의 고립은 그보다 더 포괄적인 의미의 고립이 되어가고 있다. 피아를 명확하게 구분하여 나와는 다른 대상을 완전히 배제시키고 고립시킴으로써 나와의 분리를 추구하는, 그런 의미의 고립으로 그 개념의 외연이 확장되었다. 이 분리와 배제 그리고 고립의 흐름은 다시금 집단 정체성의 문제로 돌아가게 만든다. 피와 아를 규정짓는 무언가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것이 국가 간의 일이 아니라 국가 내부의 일이 되었을 때,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한 국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도, 그 내부에서 다시금 인종이나 민족, 종교, 사회적 계층으로 집단 정체성을 더 세부적으로 쪼개서 적용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집단 정체성을 더욱 더 세밀하게 잡기 시작하면, 더더욱 편협한 고립주의로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이미 세계화로 인해 서로 다른 인종적, 민족적,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도 같은 영토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불신과 차별을 가지게 된다. 종내에는 폭력만이 남는 형국에 이르고 말 것이다. 수많은 분쟁지역들이 증명하듯이 말이다.


*


저자인 마샬은 이렇듯 장벽이 만연한 현 세계에 대하여, 열린 국경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전 지구적인 부의 재분배를 통해 개발도상국 세계가 선진국들이 이룬 부를 활용하도록 하는 21세기 마셜 플랜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열린 국경이라는 가능성보다는 좀 더 구체화된 내용을 말하고 있지만, 여전히 추상적인 차원의 주장이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는 정말 타당하고 옳은 방향성의 대안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너무 현실감 없는 주장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마샬이 주장하는 21세기 마셜 플랜이라는 방안은, 사실 대공황 당시에 있었던 마셜 플랜과 같은 기조라기보다는 스웨덴에서 이뤘던 노사정협의의 전세계 확대판이라고 보아야 옳다. 미국에서 있었던 마셜 플랜은 미국 정부 주도 하에 이뤄졌다. 그런데 국제사회에서 과연 이를 주도할 수 있는 주체가 있는가?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근본적으로 국제사회의 무정부성 앞에 무력하게 설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무정부성을 고려한다면, 마샬의 방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선진국 그룹과 개발도상국 그룹이 각각의 행위자로서, 저자가 말하는 "전 지구적인 부의 재분배"에 동의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의까지 갈 필요도 없이, 과연 누가 이 "전 지구적인 부의 재분배"에 대한 합의를 위한 원탁회의를 소집할 것인가의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여기서 신자유제도주의자라면 국제기구를 떠올릴 법하다. 국제사회의 무정부성을 보완하고 국제 협력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국제기구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회원국들, 그것도 주로 선진국들의 지원금을 통해 운영되는 국제기구가 과연 이러한 회의를 소집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상황에서도 주요 지원금 기부처인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팬데믹 선언을 아주 느즈막히 했던 WHO만 떠올려봐도 그런 기대는 불식될 것임에 틀림없다. 국제기구는 강대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고, 타국에 자국의 부를 이전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선진국 그룹의 로비로 회의의 소집 자체를 무마시킬 것이다.


최선의 상황을 가정하여, 어느 특수한 행위자의 주도로 원탁회의가 소집되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너무나 당연하게, 이 '동의'라는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금 막힌다. 인도주의적 차원이라는 대의와 명분은 있을 지언정, 선진국들이 여기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개입할 유인은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축적한 부를, (설령 그것이 착취를 통해 얻어낸 산물이라 하더라도) 타인과 나누는 것이 즐거울 수 있는가. 개인은 그럴 수 있다. 기부를 하면 연말정산에서 세액공제라는 유인을 주기 때문에, 일정 부분의 부를 기부하는 것은 개인이나 법인 정도의 차원에서는 가능하다.


그런데 과연 국가도 그럴까? 국가는 합리적 행위자다. 국제레짐의 대의를 국가 행위자에 대한 유인으로 고려할 수는 있으나, 그 대의를 이룬 후의 명예만을 위해 자국의 부를 타국에 이전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 상황을 주도할 국가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자본주의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선진국의 부를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게 될 경우 선진국 내부에서 누군가는 또 다시 착취당하고 소외당하는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고 설령 정부에서 개도국에 대한 부의 이전을 추구하겠다 목표를 세우더라도, 국민 다수의 동의를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 이상주의적으로는 당연히 가능하겠지만, 현실주의적인 견지에서 본다면 이는 재고할 필요도 없이 기각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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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도서 "장벽의 시대"를 읽고 나니 씁쓸했다. 이상주의적인 뿌리에서 시작하여 신자유제도주의를 지지했던 혈기 넘치던 나는 어디로 갔나. 그런 마음이 먼저 들었다. 과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말을 듣더라도, 이상과 당위를 추구해야만 어려운 현실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이상에 가깝게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장벽의 시대"를 읽은 지금의 나는 너무도 현실적인 생각만을 우선시하고 있었다. 현실적인 것일까, 염세적인 것일까. 어느 쪽으로 생각해보아도 책을 덮으며 느낀 씁쓸한 뒷맛이 가시질 않았다.


어느새 철저히 현실주의적인 생각을 끊임없이 하며 마샬이 제시한 방안에 다소 실망감을 느꼈지만, 그가 말한 타협이 결국 최선의 방안이라는 데에 결국 나 역시 방점을 찍게 된다. 이기주의와 정체성의 정치 논리가 난무하는 상황이지만, 결국 인간 본성의 선함과 거기서 비롯되는 타협을 기대하는 것 외에는 현실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장벽을 없애기 위해 강제할 것인가? 강제하는 순간 이는 물리적 장벽은 없앨 지언정 무형의 장벽을 또다시 한 사회 내에, 국가와 국가 간에 만드는 꼴이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는, 그 선한 마음을 기대할 수밖에 없어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과연 이런 관용이 넘치는 사회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도 든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인간 본성은 설령 처음에는 선했을 지 몰라도 악한 것에 쉽게 물들고 젖어든다는 것을 이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런 회의감이 생길 수 있더라도, 팀 마샬은 이렇게 "장벽의 시대"를 읽는 사람들에게는 가슴 한 켠에 다시금 이상적인 가치를 불어넣어주는 것 같다. 지고지난한 역사 속에서도 인류가 항상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을 찾아왔듯이, 이 수없이 오래된 장벽의 문제 역시도 언젠가는 해소되기를.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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