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웨스 앤더슨이 구축한 환상적인 결핍의 세계 [영화]

글 입력 2020.04.03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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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감각 있다’ 자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좋아하는 감독으로 주로 꼽히는 인물들이 있다. 그레타 거윅, 노아 바움백.... 그리고 웨스 앤더슨. 제각각의 매력을 뽐내는 이채로운 색감들은 그 생생함을 유지하는 동시에 관객이 불편하지 않도록 조화의 경계를 지키고 있으며, 편집증을 의심하게 만드는 칼 같은 대칭은 비대칭으로 수두룩한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 묘한 안정감을 선사한다.


앤더슨 감독 특유의 영상미를 일컫는 ‘앤더슨 터치’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웨스 앤더슨은 독보적인 미학으로 대변되는 하나의 장르로 거듭났다. 국내에서는 턱없이 적은 상영관으로 말미암아, 일부 영화 애호가들만 찾아보는 비주류 감독에 속했지만 2014년에 개봉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웨스 앤더슨의 독특한 미학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그의 환상적인 영화 세계는 더욱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웨스 앤더슨의 영화가 마음을 이끄는 이유는 단순히 화면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다. 웨스 앤더슨은 누구보다도 ‘인간의 결핍’을 유쾌하고도 진정성 있게 풀어낸다.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Rushmore,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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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맥스 피셔(Max Fischer)는 명문 사립학교 러쉬모어의 졸업반 학생이다. 교내 신문의 편집장이며 프랑스 클럽, 체스 클럽, 천문학 클럽의 회장이자 펜싱과 토론회의 팀장이다. 직접 쓴 희곡으로 입학한 만큼 그는 맥스 피셔 연극단의 설립자이며, 경찰의 부패나 도시의 폭력, 전쟁 등을 소재로 극본을 쓰고 연출을 맡아 연극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생활기록부 30장은 족히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화려한 과외활동 이면에는 낙제로 점철된 교과 성적이 있었다. 게다가 그가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꼬맹이 더크뿐이다.

 

그가 이처럼 소박한 교우 관계를 갖게 된 이유는 학우들과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등록금이 비싼 명문 학교에 다니는 부잣집 아이들 사이에서 맥스는 이발사인 홀아버지를 둔 지극히 평범한 집안의 아들일 뿐이다. 언제나 행동력 있고 자신만만해 보이는 맥스지만, 똑같은 교복을 입은 부잣집 아이들의 존재는 그에게 어머니의 부재와 수수한 집안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박탈감을 자아낸다. 맥스가 늘 자기 아버지의 직업을 외과 의사라고 소개하는 장면은 맥스가 가진 결핍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 결핍이 심화하고 고독해질수록, 명문 러쉬모어는 맥스에게 결핍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자부심이 된다. 그가 성적을 뒤로하고 교외 활동에 흠뻑 빠져든 이유도 이 때문이다.

 

어느 날, 맥스가 러쉬모어를 더욱더 사랑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긴다. 바로 초등부의 크로스 선생님.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신분 차로 짐작할 수 있듯 크로스 선생님은 이미 남편을 잃은 경험이 있으며 맥스를 그저 붙임성 좋은 특이한 학생쯤으로 여긴다. 그러나 맥스가 사랑하는 러쉬모어를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많은 활동을 소화해냈듯이 맥스는 새로운 사랑, 크로스 선생님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그다운 독특한 계획을 세우고 무서운 속도로 추진한다.


크로스 선생님이 라틴어 과목을 맡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뛰어난 언변으로 PT를 진행해 직접 폐지를 도모했던 라틴어 과목을 다시 커리큘럼에 포함시키기 위해 서명까지 받는다. 곧이어 그녀의 이름을 딴 수족관을 건립하겠다고 나선다. 혹자는 맥스의 일방적인 노력이 보기 좋지 않다고는 하나, 사춘기 소년다운 열정은 꽤 귀엽게 비춰 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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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을 건립하기 위해서 맥스는 학부모이자 철강 재벌인 블룸을 찾아간다. 풍족한 집안과 부모를 믿고 건성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쌍둥이 아들이 못마땅했던 블룸은 러쉬모어에서 ‘평범한 집안의 아이들이 노력만 한다면 얼마든지 부잣집 아이들을 이겨낼 수 있다’는 논조의 연설을 한 바 있다. 그 연설이 끝난 뒤 기립 박수를 친 유일한 학생은 맥스뿐이었다. 그렇게 블룸은 맥스가 희곡 작품으로 입학하여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는 똑똑한 학생임을 알게 되었고, 선뜻 수족관 건립을 위해 얼마간의 돈을 내준다. 이를 시작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던 블룸과 맥스는 친구 사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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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랑을 성사시켜주리라 믿었던 수족관은 오히려 맥스의 발목을 잡았다. 크로스 선생님은 전혀 감동하지 않았으며 학교의 허가를 제대로 받지 않고 무단으로 공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여기서 맥스가 똑똑해 보이지만 아직은 미숙한 소년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퇴학당할 위기에 놓인다. 휘청하는 맥스에게 더 큰 충격을 안겨주는 일이 또다시 발생한다. 맥스를 연결고리로 서로 알게 된 블룸과 크로스 선생님이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수족관 사건으로 러쉬모어에서 퇴학당해, 아무도 연극이나 신문이나 펜싱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평범한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 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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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으로 공허하던 그의 내면을 채우던 러쉬모어와 크로스 선생님을 한순간 잃은 상황에서 맥스는 폭주하기 시작한다. 블룸이 맥스의 자전거를 망가뜨리자 맥스는 블룸의 차를 훼손하고, 블름은 맥스를 고소하고 맥스는 블룸의 부인에게 외도를 일러바친다. 이 일련의 소동들은 맥스의 상실감을 여실히 드러내지만, 묘하게 웃음을 자아낸다. 그는 영화에서 처음으로 그의 현실적인 상황을 인정하고 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모습들이, 자신의 결핍을 부정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평온한 척했던 지난 시간보다 훨씬 후련하고 개운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놓인 맥스는 무척 혼란스러웠겠지만.

 

그러나 맥스의 심통이 무색할 정도로 크로스 선생님과 블룸의 관계는 쉽게 끝나버린다. 크로스 선생님은 아직 죽은 남편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맥스는 분노와 상실감의 화살을 어디로 돌려야 할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울고 난 뒤 갑작스레 찾아오는 고요처럼 맥스는 차츰차츰 자기의 것을 다시 구축해나가기 시작한다. 이는 결핍을 보완하기 위해 맞지 않는 조각을 욱여넣었던 지난날과는 다르다.


전학 간 학교에 수족관 건축을 완성하여 학우들의 환호를 받고, 다시 연극반을 꾸려 죽은 자신의 엄마와 크로스 선생님의 남편을 기리는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 그리고 블룸과의 우정을 회복한다. 즉 결핍을 그대로 직시하며 모자람이 아닌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과정인 것이다. 결핍의 조각이 작은 대신 새롭게 마음을 채울 수 있는 부분은 더 많았다. 이를테면 그가 좋아하고 재능을 보이는 연극, 친구 블룸과의 관계, 항상 맥스를 믿어주는 그의 아버지, 다방면에 대한 호기심과 이를 충족시킬 만한 강한 실천력 등이 있었다. 아래의 맥스의 대사는 이 태도를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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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후 맥스의 엄마는 살아 돌아오지 않으며, 이발사인 아버지의 수입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바뀐 것은 결핍을 대하는 맥스의 태도이다. 연극이 상연되던 날 맥스는 블룸과 크로스 선생님, 블룸, 아버지를 초대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동행한 크로스 선생님의 친구에게 아버지를 소개한다. 러쉬모어의 학생에게 걸맞은 '의사'라는 직업으로 거짓말을 치는 대신 늘 맥스를 지지해주는 든든한 아버지의 직업인 '이발사'로 말이다. 결핍을 인정하고 직시하는 순간 더 이상 부끄러울 것은 없었다.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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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여름의 끝, 뉴 펜잔스 섬에서 12살 소년과 소녀 각각 한 명이 실종되었다. 카키 스카우트의 대원인 ‘샘’과 부모님, 두 남동생과 사는 ‘수지’가 그 소동의 주인공이다. 스카우트 야영지와 수지의 집, 연고 없을 법한 두 공간이 교차로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비밀 장소에서 접선해, 오직 둘을 위한, 둘에 의한, 둘만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하는 귀여운 행각은 철없는 아이들이 벌인 소동으로 비춰지지만은 않는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샘과 수지가 내집단에서 받아왔던 취급들, 어떻게 보면 사는 동안 누구나 겪기에 의연하게 견뎌내야 하는 것들이지만, 아직 12살 소년 소녀에게는 버거웠을 홀대와 푸대접, 무관심들이 등장한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누구나 그런 대접을 받은 경험은 있지만 아직도 크고 작은 상처로 우리 맘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그런 대우를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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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은 스카우트에서 늘 말썽을 피운다. 가장 빈번한 말썽이 스카우트 대원들과 몸으로 싸우는 것이다. 사실 샘이 문제아로 낙인 찍힌 것은 이미 벌어진 싸움의 결과만을 보게 되는 어른들의 오해이다. 늘 먼저 시비를 거는 것은 사고로 가족을 잃고 위탁 가정에서 사는 샘의 가정사를 들먹이며 조롱하는 스카우트 대원들이다. 자꾸만 샘의 상처를 헤집는 주변 환경으로 인해 샘은 새 살을 돋울 새도 없이,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거친 행동을 하게 된다. 지속적인 문제 행동은 결국 위탁 가정이 샘을 포기하는 결과를 낳게 하고, 이는 샘에게 또 다른 상처와 조롱거리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악순환은 반복되었다.

 

수지 역시 그다지 원만한 가족 관계를 형성해가고 있지 못하다. 동생의 레코드를 빌려 음악을 듣고, 고양이를 보살피는 수지는 언뜻 보기에 듬뿍 사랑을 받고 자라난 조용한 소녀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가 마음을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들뿐이다. 한 가지를 더하자면 도서관에서 빌린 판타지 소설들. 그녀는 이미 부모님이 자신을 집안의 골칫거리, 문제아라고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다. 엄마가 <문제아를 다루는 법>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수지는 그 책 제목에서의 ‘문제아’가 자신이라고 단정짓고 상심에 빠진다. 이윽고 엄마가 경찰서장과 바람을 피우는 것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 후로 수지는 가정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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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로 연극을 관람하러 간 날, 샘은 관객석에서 이탈하여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분장실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처음 맞닥뜨린 수지. 샘은 첫눈에 반해 수지에게 분장한 새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수지를 향한 샘의 한 마디 "바로, 너." 이 직관적인 말처럼 수지와 샘의 관계는 성냥에 불이 붙은 것처럼 아주 쉽게 피어올랐다. 쉽게 맺어질수록 쉽게 분열되리란 게 우리의 직관적인 생각이고, 또 12살의 마음은 가볍다고 단정짓는 것이 우리의 착각이다.


그러나 이들이 편지를 통해 서로의 이야기와 결핍을 고백하고 공유하게 된 순간, 이들의 만남과 이어지는 도피는 보호자를 속 썩이는 일탈로 규정 짓기 힘들 정도로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의 간절한 진심이 담겨 있다. 각자의 결핍이 있었기에 그들은 소울메이트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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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성장영화처럼만 비춰지는 이 영화에서 웨스 앤더슨 감독은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아이들의 금지된 사랑에 관하여 이야기를 건네고자 했다. 이때의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들이 어른보다 상심에 더 민감하기 때문은 아닐는지. 그 민감도로 따져봤을 때 수지와 샘이 가지고 있는 상처의 아픔은 더 오랜 시간 살아온 어른들의 상처 양이나 크기와도 견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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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서 프렌치 팝 '사랑의 시간'을 틀어 놓고 마음 가는 대로 춤을 추는 샘과 수지. 한여름의 해방은 슬픔을 자극하던 지루한 일상을 말끔히 잊고, 샘은 수지에게 수지는 샘에게 또 샘은 샘에게 수지는 수지에게 오롯이 마음을 줄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그들의 귀여운 춤사위와 그 와중에도 엿보이는, 서로를 배려하는 몸짓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풍요로움과 기분 좋은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결핍으로부터 도망쳐 나와 그들이 원하던 비밀스럽고도 마법 같은 곳,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문라이즈 킹덤” 달이 뜨는 왕국이라는 이름을 머물던 해변에 지은 이유가 이들의 해방감을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주변 보호자들에 의해 이들의 도피는 얼마 안 가 붙잡히게 된다. 업무에, 돈에, 집안일에, 육아에 치여 진심과는 다르게 무관심했던 어른들은 샘의 가정사와 수지의 상처 받은 마음을 알게 되고 뒤늦게나마 그들의 진심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고자 한다. 게다가 샘을 괴롭혔던 스카우트 대원들은 그들의 삐뚤어진 마음과 잘못된 행동들을 인정하고 어른들을 피해 도망치려는 샘과 수지를 도와주려 한다.


물론 샘과 수지가 지금까지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은, 그래서 그 자리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제 결핍으로 맺어진 새로운 관계는 이를 견뎌낼 원동력을 부여하며 역설적으로 충족감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결핍을 제공했던 주변인의 반성이 더해져 조금이나마 더 안정된 기류를 타게 되지 않을까.

 

*

 

'결핍'은 사회와 우리 마음속에 흔한 존재이듯, 웨스 앤더슨의 영화 세계를 대변해줄 고유의 키워드는 아니다. 그러나 우울감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웨스 앤더슨 영화 특유의 미학과 결핍의 서사가 만나, 유쾌하게 풀어지는 동안 스며드는 복합적인 위로는 다른 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유의 것이다.

 

문득문득 외로움을 느낄 때, 그 외로움으로 서러움까지 느낄 때가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귀소 본능이라도 발현되듯 기분에 어울릴 법한 책이나 영화, 음악 등을 찾곤 하는데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꽤 많은 사람이 이런 식으로 감정을 정리한다고들 한다. 그런 이유에서 혹시 원인 모를 감정의 궤도를 통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러나 생각할 힘이 나지 않는 이들에게 이 글이 하나의 손쉬운 선택지로 작용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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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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