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광'이 아닌, '영화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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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 앞에서 당당해지기
내게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는 스냅사진과 같았다. '이 모습을 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셔터가 눌리겠지', '누군가는 이 멋진 모습을 바라봐 주겠지'라는 생각으로 찍히지 않는 카메라 앞에서 부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했다.
타인의 인생은 하이라이트만 보였고 그 앞에 서면 나는 구겨진 인생 같았다. 평범한 얼굴과 지방대, 문과, 부실한 스펙과 취준생. 그래서인지 나는 항상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자신이 없었고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게 맞을까, 이게 시간 낭비는 아닐까?'라는 불안이 있었다.
좋아하는 영화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영화 잡지사에 들어갔을 때, 나는 일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이 일이 물경력이 되는 것은 아닐지, 계약직인데 앞으로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회사의 수익은 괜찮은지에 더 집중했다. 유명 영화 잡지사(생각하는 그 곳이다)의 자회사였는데 나는 굳이 자회사라는 말을 따로 안 하고 그냥 온라인 팀이라고 말했다. 자유로운 삶이 가장 예술적인 삶이라고 말하면서, 삶에서 가장 자유롭지 못했다.
영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 역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였다. 원래는 만화 보는 걸 더 좋아했지만, 예술영화를 조용히 감상하고 있는 친구가 멋져 보여서 따라 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본 영화는 <패왕별희>였다. 이해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어딘가 있어 보이는 블로그 평을 대충 내 말로 바꿔서 말하면 다들 나를 영화광이라고 불러줬다.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기보단 영화광이길 바랐다. 그래서 알지도 못하는 예술영화만 보며 대중영화를 폄하했다. 당연히 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다. 한 편 소화하기도 벅찼기 때문에 몇 번이나 돌려봐야만 했다. 처음부터 영화는 영화광이 되기 위한 하나의 의무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 깨나 본다는 이야길 들었지만 실제로 본 편수는 몇 편 되지 않는다.
대학에 와서 진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다. 도대체 어떻게 영화를 그렇게 많이 보냐는 질문에 그는 '재밌잖아'라고 답했다. 그는 모든 장르를 다 봤다. 어려운 예술영화의 비중은 크지 않았다. 잔인하거나, 자극적이거나, 이상해도 자신의 취향이면 장르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에겐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도 그처럼 되고 싶었다. 영화를 본 이후 처음으로 남 신경 안쓰고 내가 보고싶었던 영화를 봤다.
그 날 이후, 나는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아도 괜찮았다. 영화를 보고 있는 순간 만큼은 즐거웠으니까. 나는 이제 나를 영화광이라고 소개하진 않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는 소개할 수 있다.
여전히 나는 눌리지 않는 셔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씨네필이라면 필수로 봐야 할 1001편'리스트에 내가 본 영화가 몇 편 없다면 초조한 느낌이 들고 다른 영화 비평을 보며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동진 평론가와 의견이 다르면 슬그머니 그쪽을 따를 때도 있다.
예술인이 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건 아닐까 의구심이 불쑥 튀어나오는 순간도 있다. 스스로를 의심하다보면 결국 '이 시간에 영화나 보자'는 걸로 결론이 났다. 영화 대신 만화를 하루 종일 볼 때도 있고 일주일 넘게 영화를 안 볼 때도 있다.
그래도 괜찮았다. '광'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된다.
[김명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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