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누구의 삶도 구한 적이 없어”라는 친구의 핀잔에, 그가 준비한 대답은 그래도 ‘문학은 내 삶을 구했다’는 것이다. 비록 ‘가까스로’란 말이 덧붙여져야 할지라도.’
‘그런 걸 왜 하세요’라는 악마 같은 질문 앞에 자주 발목을 잡힌다. 우리를 허무감으로 밀어 넣는 온갖 힘들, 발버둥 쳐도 소용없을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 그럴 땐 ‘죽음 충동(Thanatos)’이 일며 평화롭고 안온한 삶으로 가고 싶어진다.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 고로 이야기가 없는 삶으로 가고 싶은 충동이 든다.
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존재다. 그리고 ‘호모 나랜스(Homonarrans)’ 그 이전엔 ‘호모 센티엔스(Homosentience)’가 있다. 자기 삶의 무의미를 견딜 수 없는 인간. 그리하여 인간은 무의미한 일상을 의미 있게 구축하기 위해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죽음 속에서도 결국 삶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정확히는 ‘삶의 충동(Eros)’이 실리는 순간들은 분명 찾아온다. 과제로 읽은 책 한 권에 ‘살아보자’라는 문장이 무심코 터져 나왔을 때, 유투브 알고리즘 덕에 듣게 된 팝송 한 곡으로부터 나의 새로운 취향을 발견했을 때, 잠이 오지 않아 재생한 우연한 영화 한 편이 인생영화가 되었을 때.
그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시간을, 곁에 두었던 사물을, 그날의 조명을 기억하고, 어제보다 오늘을 조금, 아주 조금 더 잘 살아내고 싶어진다. 그렇게 문학과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살다’라는 동사로 귀결된다.
이 책은 ‘이현우’라는 본명보다 인터넷 서평꾼 ‘로쟈’로 더 유명한 저자의 세계문학 서평집이다. 저자는 2012년부터 2020년 2월까지 8년간 쓴 칼럼과 해설을 선별하여 이 책으로 묶었다. 이 책엔 저자가 99편의 작품을 읽어냈던 시간들과 부단한 고민들이 소중하게 담겨있다.
이 책을 저자의 8년간의 삶이 담긴 책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일이란 누군가의 하루를 살게 한 이야기들을 만나는 일이면서, 동시에 당신의 또 다른 하루를 살게 할 작품을 만날 수도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비극을 이해하는 건 곧 문학을 이해하는 것. 셰익스피어가 옹호했던 고전적인 ‘비극’이라는 개념의 토대를 마련해준 아리스토텔레스는 슬프고 극적인 작품이 더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비극적 행위를 통한 극적인 이야기를 구축하는 것이 왜, 어떻게 관객을 움직이는지 그 원리와 테크닉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 인상적인 다른 대목. “소설 쓰기란 세상 또는 삶에 우리가 찾을 수 없는 어떤 중심부를 설정하고, 그것을 풍경 속에 숨겨두는 것입니다. 소설 읽기는 같은 작업을 반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소설 읽기란 세상에 중심부가 있다는 것을 믿는 노력입니다.”’
우리는 문학으로부터, 삶의 의미란 그런 걸 왜 하냐는 질문에 답할 힘을 구하는 것, 즉 굴복하지 않고 내일을 ‘한 번 더’ 사는 것이라는 점을 배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작가 몇몇과 작품 몇 개를 메모했고, 4월 23일 세계 책의 날은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의 서거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며, 저자의 말처럼 돌아오는 4월엔 모셔두기만 했던 두 문호의 걸작을 한번 일독해봐야지 생각했다. 그걸로 이 책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일을 한 번 더 살게 할 작품을 만나는 일은 쉽게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