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는 왜 비극에 반응할까 -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 [도서]

글 입력 2020.03.30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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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누구의 삶도 구한 적이 없어”라는 친구의 핀잔에, 그가 준비한 대답은 그래도 ‘문학은 내 삶을 구했다’는 것이다. 비록 ‘가까스로’란 말이 덧붙여져야 할지라도.’

 


‘그런 걸 왜 하세요’라는 악마 같은 질문 앞에 자주 발목을 잡힌다. 우리를 허무감으로 밀어 넣는 온갖 힘들, 발버둥 쳐도 소용없을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 그럴 땐 ‘죽음 충동(Thanatos)’이 일며 평화롭고 안온한 삶으로 가고 싶어진다.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 고로 이야기가 없는 삶으로 가고 싶은 충동이 든다.


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존재다. 그리고 ‘호모 나랜스(Homonarrans)’ 그 이전엔 ‘호모 센티엔스(Homosentience)’가 있다. 자기 삶의 무의미를 견딜 수 없는 인간. 그리하여 인간은 무의미한 일상을 의미 있게 구축하기 위해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죽음 속에서도 결국 삶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정확히는 ‘삶의 충동(Eros)’이 실리는 순간들은 분명 찾아온다. 과제로 읽은 책 한 권에 ‘살아보자’라는 문장이 무심코 터져 나왔을 때, 유투브 알고리즘 덕에 듣게 된 팝송 한 곡으로부터 나의 새로운 취향을 발견했을 때, 잠이 오지 않아 재생한 우연한 영화 한 편이 인생영화가 되었을 때.


그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시간을, 곁에 두었던 사물을, 그날의 조명을 기억하고, 어제보다 오늘을 조금, 아주 조금 더 잘 살아내고 싶어진다. 그렇게 문학과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살다’라는 동사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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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현우’라는 본명보다 인터넷 서평꾼 ‘로쟈’로 더 유명한 저자의 세계문학 서평집이다. 저자는 2012년부터 2020년 2월까지 8년간 쓴 칼럼과 해설을 선별하여 이 책으로 묶었다. 이 책엔 저자가 99편의 작품을 읽어냈던 시간들과 부단한 고민들이 소중하게 담겨있다.


이 책을 저자의 8년간의 삶이 담긴 책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일이란 누군가의 하루를 살게 한 이야기들을 만나는 일이면서, 동시에 당신의 또 다른 하루를 살게 할 작품을 만날 수도 있는 일이 될 것이다.


 

‘현재진행형’ 셰익스피어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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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진행형 셰익스피어 패러다임’이라는 소제목에 눈길이 갔다.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의 체계’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라는 뜻의 단어 ‘패러다임’.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서거한 지는 400년인데, 셰익스피어 패러다임 앞에 붙은 ‘현재진행형’이라는 단어는 어딘가 역설적으로 들렸다.
 
셰익스피어의 문학은 고대 그리스 비극,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러시아 소설과 함께 세계문학사의 정점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는 희극, 사극, 상당 분량의 소네트를 남겼지만, 그중에서도 비극 작가로서의 위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책의 저자는 셰익스피어 비극의 의의를 ‘비극의 새로운 갈래 창조’로 설명한다. 그이전의 그리스 비극은 신탁(운명)에 맞서려는 인간의 오만한 시도가 결국은 파국에 이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는 주인공에게 비극을 초래하는 원인이 정해진 운명이 아닌 각 인물의 성격에 두어진다. 성격적 결함이나 헛된 욕망이 비극을 불러왔다는 이러한 서사는, 곧 인간이란 운명의 꼭두각시가 아닌 내면과 개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성격비극’의 의의가 있다.
 
 

우리는 왜 비극에 반응할까


비극을 이해하는 건 곧 문학을 이해하는 것. 셰익스피어가 옹호했던 고전적인 ‘비극’이라는 개념의 토대를 마련해준 아리스토텔레스는 슬프고 극적인 작품이 더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비극적 행위를 통한 극적인 이야기를 구축하는 것이 왜, 어떻게 관객을 움직이는지 그 원리와 테크닉에 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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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극적인 이야기에 반응할까. 드라마의 주인공은 매순간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선택하지만 결국 파멸에 다다른다. 가령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의 주인공 오이디푸스가 그렇다. 오이디푸스는 어머니와 동침하고 또 아버지를 죽인다. 그리고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손으로 두 눈을 찌르고 방랑길을 떠난다.

스스로 불러온 잘못된 결론과 불행, 독자는 이에 근원적인 자기동일시를 한다. 그 이유인즉 모든 인간은 ‘선택’이라는 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사람의 우연한 불행, 이에 우린 연민과 공포라는 감정을 동시에 갖는다.

그리고 여기에 ‘문학이 필요한 이유’가 있다. 연민과 공포에서 나아가, 주인공의 파멸엔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꿈을 꾸고 낭만적인 시도를 하면서 돈과 밥의 세계에 대항하는 주인공, 그 끝은 결국 파멸이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낭만적 시도의 고귀함이라는 교훈을 얻는다.


‘또 인상적인 다른 대목. “소설 쓰기란 세상 또는 삶에 우리가 찾을 수 없는 어떤 중심부를 설정하고, 그것을 풍경 속에 숨겨두는 것입니다. 소설 읽기는 같은 작업을 반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소설 읽기란 세상에 중심부가 있다는 것을 믿는 노력입니다.”’

 


우리는 문학으로부터, 삶의 의미란 그런 걸 왜 하냐는 질문에 답할 힘을 구하는 것, 즉 굴복하지 않고 내일을 ‘한 번 더’ 사는 것이라는 점을 배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작가 몇몇과 작품 몇 개를 메모했고, 4월 23일 세계 책의 날은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의 서거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며, 저자의 말처럼 돌아오는 4월엔 모셔두기만 했던 두 문호의 걸작을 한번 일독해봐야지 생각했다. 그걸로 이 책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일을 한 번 더 살게 할 작품을 만나는 일은 쉽게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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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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