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문학 탐독의 여정을 이어가기 위해 -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 [도서]

문학에 빠져 죽고 싶었던 나
글 입력 2020.03.2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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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사십 년 전쯤, 문학에 처음 눈을 뜨고 책의 세계로 뛰어들던 무렵에 느낀 경탄과 흥분을 나는 아직 잃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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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서문을 읽다가 위의 문장을 본 후, 다시 책장을 넘기기 전 잠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문학 작품, 아니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내 마음에 흥분과 감탄이 스쳤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는지. 누군가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독서라고 대답했고, 학생 때는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 틀어박혔던 나였건만, 그런 기억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흥분과 감탄의 순간이 매번, 또렷이 자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책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어렸을 때는 주위 어른들의 권유로 고전 문학을 많이 읽으려고 했고 그때의 영향으로 나는 지금도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어설 때면 바로 문학 코너로 발걸음을 옮긴다.
 
내가 닿을 수 없는 시간과 장소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을 읽는, 책의 첫 장을 넘기고 닫는 것을 반복하던 과정이 어릴 때의 나에게는 그 자체로 행복이었다. 독서는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가만히 파도에 몸을 맡기고 떠다니는 것 같은 나만의 조용하면서도 마음을 채우는 여행과 같다고 여겼으며,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그 여정을 즐겼다. 그때 나는 진실로, 문학에 빠져 죽고 싶었다.
 
지금의 나는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자연스레 이전에 읽었던 책에 손이 먼저 간다. 새로운 책을 읽어보고픈 흥미보다는, 문학에 감탄과 즐거움으로 마음이 가득했던 과거의 내 모습을 다시 떠올리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물론, 같은 책도 시간이 흘러 다시 읽으면 전에는 몰랐던 부분을, 또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즐거움도 있지만.
 
나와 같은 경험이 있거나 문학을 즐기는 이들에게 책의 제목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할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 또 어떤 방법으로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인지 살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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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좋아하고, 러시아 문학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은 내게 저자가 노어노문학 전공자라는 점은 자연스레 이 책에서 러시아 문학에 대한 설명이 세세히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주었다. 또한 죄와 벌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던지라, 저자의 필명이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애칭 로쟈라는 점도 공연히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로쟈”의 문학 작품의 리뷰 즉 서평으로 구성된 책은 총 10부로 이루어져 있다. 문학에 대한 고찰이 담긴 1부에서 시작해 셰익스피어와 영미, 유럽 문학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러시아와 남미 문학 작품들을 지나 일본, 중국 그리고 한국 문학을 책의 마지막으로 다루고 있다.
 
책에 소개된 문학 작품들은 내가 읽은 것보다 읽지 않은 작품이 더 많기에 서평으로 미리 접하는 문학 작품들은 자연스레 차후 완독을 해보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어진다. 이미 읽은, 심지어 몇 번이고 읽었던 작품들도 저자의 서평을 읽다 보면 독자로서 알지 못했던 당대의 상황 및 작가의 철학 등을 배울 수 있어 온전히 새로운 작품에 대한 소개를 읽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은 후 기억에 남는 것은 번역을 주제로 하는 서평 또는 작품을 설명할 때 부가적으로 번역본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다. 세계 문학이라는 것은 세계에서 널리 쓰이는, 즉 주류 언어로 번역이 되어야만 다수의 독자와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을 토대로 번역 문학과 같은 것이라는 설명과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스인 조르바에서의 오역 및 어떤 번역이 자연스러운지에 대한 설명은 독자에게 번역의 중요성 및 그 작업 과정에 대한 고찰을 하게 한다.
 
근대 한국 문학에 대한 소개에는 무진기행, 윤동주 시인의 작품 등이 소개된다. 김승옥 작가와 윤동주 시인, 책을 즐겨 읽지 않더라도 한국인이라면 익숙한 이름이다. 스스로 익숙한 작품이요, 작가라고 생각했건만, 『무진기행』의 내용이 곧 우리 사회가 전근대에서 근대로 흘러가는 것을 상징한다는 점과 윤동주 시인의 다른 작품에 비해 주목하지 않았던 시 『간』에 대한 설명은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과 관점을 내게 전해준다.
 
 
 
주인공의 여정은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이행을 압축하며 이는 사회학의 용어를 빌리면 공동사회에서 이익사회로의 이행에 대응한다. 그와 함께 우리는 불가피하게도 고향을 상실하여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무진기행』의 결말이 그러한데, 이 부끄러움이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선택을 정당화한다. 『무진기행』은 이 진부함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그려냈다. -413쪽
 
지드의 프로메테우스가 양심의 투사였던 독수리를 죽임으로써 일종의 카니발적 결말을 유도하는 것과는 달리, 윤동주의 프로메테우스는 독수리의 부리처럼 예리한 자아의식과의 긴장을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음으로써 내면으로의 끝없는 침잠을 감내한다. 윤동주만의 새로운 프로메테우스가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윤동주 읽기는 거기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4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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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을 넘기면서 기대했던 대로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는 문학 및 러시아 문학과 영미 문학, 한국 문학 등에 대한 서평으로 구성되어 있어 문학 작품을 즐겨 읽는 독자에게 새로이 고찰할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한다. 개인적으로는 중국 문학에 대한 소개가 더 담겼으면 하는 아쉬움이 조금 있다.
 
책에 담긴 문학 작품들에 대해 몰랐던 사실 및 비평을 읽은 후, 내가 익숙하다 여긴 작품들을 떠올려보자 전과 다른 감상으로 내 마음에 자리한다.  스스로에게 익숙하다 여긴 장소도 타인의 손짓에 따라 다른 길을 걷다 보면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곳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른 이의 고찰과 지식의 흔적은 내게 새로운 길을 안내하고, 그렇게 나의 문학 탐독 여정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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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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